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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3·1운동 100주년 ①
다시 보는 3·1운동
2·1 독립선언과 2·8 독립선언을 이야기하다
20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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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독립선언과 2·8 독립선언을 이야기하다

3·1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낸 성과가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지도자와 학생 등
너나없이 내 나라를 위해 앞장선 이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큰 꿈이다.



서울도서관

2·8 독립선언서 결의문

2·8 독립선언서 결의문

우리는 일본의 한국 합병이 한민족의 자유의사에 반하고 한민족의 생존 발전을 위협하며 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독립을 주장한다.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한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일본에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최후의 1인까지 일본과 싸울 것이며 영원한 혈전에 임할 것을 선포한다.

재일본 도쿄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최팔용, 이종근, 김도연, 송계백, 이광수, 최근우, 김철수, 김상덕, 백관수, 서춘, 윤창석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사이에 자리 잡은 서울도서관 외벽에는 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꿈새김판이 있다. 지난 2월 7일에는 특별한 내용이 새로이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3·1운동을 일으킨 한 의미 있는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대한독립운동의 초석이 된 2·1 독립선언과 2·8 독립선언에 관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1월 31일 10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된 2·1 독립선언서는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이 육필로 초고를 작성했고, 중국에서 국한문 혼용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를 ‘조선’이 아닌 ‘대한’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 강령과 광복군 포고문, 대일본 선전포고문 등 우리 역사 속 중요한 문서들의 기초가 되어 더욱 의미있다.
이에 영향을 받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조선 청년들이 모여 대한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라는 민족자결주의에 자극을 받은 용감한 조선 청년 약 600명은 이 자리에서 조선청년독립단 창설을 선언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일제로부 터 고통받는 조국의 비참한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다’라는 뜻을 모아 이들은 대한제국 독립의 필요성을 담은 서한을 작성해 전 세계 외교관과 외국 언론, 학자, 심지어 일본 정부와 정치인에게도 발송했다. 적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결의는 마침내 3월 1일,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인 종로 탑골공원에서 3·1 독립선언서 낭독을 통해 대한제국 독립운동의 본격적인 마중물이 되었다.

Event #손글씨릴레이 캠페인

독립을 간절히 원했던 #100년전그날처럼 #손글씨독립선언서 릴레이에 친구들을 태그해서 함께 기념하자. 손글씨로 쓴 ‘독립선언서 첫 문장’을 적고 인증샷을 올린 후 해시태그를 달아 업로드하면 참여 완료.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 공식 인스타그램(@seoul_official)을 참고하자.

김시웅

자료 제공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 2·8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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