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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둣국의 기원과 북한의 설날 만둣국 문화

만둣국의 기원과 북한의 설날 만둣국 문화>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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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야기

만둣국의 기원과 북한의 설날 만둣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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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둣국의 기원과
북한의 설날 만둣국 문화

우리는 설날 떡국을 먹고 북한은 만둣국을 즐겨 먹는다.
지역마다 다른 소를 넣고 다른 재료로 국물을 내지만 큼지막한 만두를 먹는 것은 똑같다.
우리와 같은 듯 다른 만두에서 남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음식은 사뭇 다르다. 기후와 자연환경이 다르고, 사람들의 식성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물리적 구분은 1945년 해방 이후 분단에 의한 것이지만, 조선 시대에도 한강을 중심으로 북선(北鮮)과 남선(南鮮)으로 나뉘었다. 산악 지대가 많은 함경도나 평안도 지역은 조나 수수·감자를 주식으로 먹었고,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는 밀과 메밀을 많이 먹었다. 남쪽 지방은 쌀과 보리가 주식이었다. 기온이 다른 탓에 재배하는 작물도 다르고 조리법 역시 달라지면서 설날 음식에도 차이가 생겼다. 쌀이 주식인 남쪽에서는 쌀로 만든 가래떡을 썰어 끓인 떡국을 먹는다. 북쪽에서는 만둣국을, 중부지방에서는 두 가지를 섞은 떡만둣국을 먹었다. 북녘에서 만둣국을 즐긴 데는 인접한 중국, 특히 만둣국을 즐기던 동북 3성(만주)의 음식 풍속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만둣국은 중국의 혼돈탕(??湯)이 기원이다. 혼돈은 삼국 시기 위나라 때 장읍(張揖)이 쓴 <광아(廣雅)>에 “혼돈은 병이다(??餠也)”라고 나올 정도로 오래된 음식이다. 이때 혼돈을 ‘국[湯]’ 형태로 먹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남송 시인 육유(陸游)가 쓴 <세수서사(歲首書事)>에 “세일(歲日: 설날)에는 탕병(湯餠: 떡국)을 먹는데 이것은 ‘동혼돈연박탁(冬??年??: 동지에는 만둣국을 먹고 신년에는 떡국을 먹는다)’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나온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서는 만둣국을 설날에 반드시 먹었고, 지금도 만주 일대의 설날 식습관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만두는 중국의 만터우(饅頭)와 이름은 같지만 생김새는 조금 다르다. 중국의 만터우는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빵이다. 한국의 만두와 같은 것은 우리가 흔히 교자라 부르는 자오쯔(餃子)다. 자오쯔는 중국 돈 원보(元寶)를 닮았다. 중국 사람은 자오쯔를 먹으면 돈을 많이 벌고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또 발음이 자오쯔(交子)와 같아 자손의 번성을 의미하기도한다. 만주 일대의 중국인은 음력 마지막 날 자오쯔를 빚어 가족이 함께 먹는다. 자오쯔는 ‘자시(子時: 밤 11시~1시)가되다(交在子時)’와 발음이 비슷하다. 자오쯔를 먹는다는 것은 ‘해가 바뀌고 자시가 되다(更歲交子)’라는 의미, 즉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뜻한다.



쌀이 주식인 남쪽에서는 쌀로 만든 가래떡을
설날 음식으로 먹었지만,산악 지대가 많은 북쪽에서는 만둣국을 주로 먹었다.
특히 중국과 인접해 만둣국을 즐겨 먹는
중국 동북 3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부터 떡국과 만둣국은 설날에 먹는 의례 음식이었다. 이식(李植)은 <택당집(澤堂集)>에서 “정조(正朝: 설날)에는 각 자리마다 병탕(餠湯, 떡국)과 만두탕(曼頭湯)을 한 그릇씩 놓는다”고 적고 있다. 고상안(高尙顔)이 쓴 <태촌집(泰村集)>에 “정조가 1년의 첫날이니 면(麵)은 만두를 쓰고,떡은 떡국에 사용한다”는 말이 기록된 걸로 보아 조선 중기 에는 설날에 만둣국을 먹었음을 알 수 있지만 일상적인 음식은 아니었다. 제례(祭禮)와 시제(時祭)와 사시제(四時祭)에도 만두는 빠지지 않는 중요한 제수 음식이었다. 조선 최고의 예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친구 신의경(申義慶)이 지은<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수정·첨삭·보완해 완성한 상례(喪禮)에 관한 실천적 예서인 <상례비요(喪禮備要)>에는 만두가 빠지지 않는다. 이는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주자(朱子)의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만두가 등장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조선 말기가 되면서 만두는 서민도 외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한다. 중인 출신 지규식(池圭植)이 1891~1911년에 쓴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밤에 큰 눈이 내렸다. 춘헌(春軒)에 가서 만두(饅頭)를 먹고 돌아왔다” (1892년 1월 9일)라고 나오고, 1897년 10월 27일 자 일기에는 “청나라 사람 다사(茶肆: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곳)에 들어가 이영균(李永均)과 만두 한 주발을 먹었다(喫饅頭一椀)”라고 나온다. 1882년 발생한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서울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를 따라 중국식 만두 식당이 서울 에서도 영업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대한제국,일제강점기에 만두는 중국인에 의해 외식으로 정착하지만,1960년대에 본격화된 분식 장려 운동 이후에 만둣국은 대중적인 외식으로 자리 잡는다.

북한에서는 설날에 주로 만둣국을 먹는다. 지역마다 만둣국 형태나 소가 다르지만, 모두 남한에 비해 크기가 큰 것 이 공통점이다. 북한에서 가장 물산이 풍부한 황해도에서는 소금에 절인 호박 소를 넣어 만든 만두를 멸치나 북어 같은 해산물 육수에 끓여 먹는 호박만둣국과 소금에 절인 배추를 볏짚에 발효시킨 강짠지와 숙주, 돼지고기, 소고기를 소로 넣은 강짠지만둣국 그리고 어른 손만 한 왕만두를 설이나 겨울에 즐겨 먹는다. 평안도에서는 메밀이나 밀로 만든 피에 숙주, 돼지고기 등을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은 만두를 만들어 얼려두었다가 양지·사태 같은 소고기 국물에 달걀을 풀어 먹는 만둣국이나 만두피를 싸는 대신 밀가루나 감자 전분에 뭉친 소를 굴려 묻혀 먹는 굴린만둣국도 유명하다. 겨울철 조류인 꿩이 많이 잡히는 함경도에서는 꿩 국물에 꿩고기를 소로 넣은 만두로 끓인 꿩만둣국을 즐겨 먹는다.

박정배 박정배는 음식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에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쿠켄>과 <주간동아>에 오랫동안 음식 칼럼을 연재했다. 대한민국의 음식 문화를 소개한 <음식강산> 시리즈를 세 권 냈고,현재도 진행 중이다.

박정배(음식 칼럼니스트)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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