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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숲길

기획 ·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③
사람과 길을 잇다
경춘선 숲길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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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7월에 운행을 시작한 경춘선은 누구에게는 애환이, 누구에는 사랑이,
누구에게는 낭만이 담겨 있는 길이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제 몫을 다하고 기차가 멈춰 선 서울 구간이 경춘선숲길로 다시 태어났다.



“경인철도회사에서는 9월 18일 내외 하객을 불러 모아 개업 예식을 거행했다. 오전 9시 영등포를 떠나 인천으로 출발한 화륜거(기차)의 우레와 같은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기관차의 굴뚝 연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기차는 각기 방 한 칸 씩을 만들어 연결했으며 상, 중, 하 3등으로 나누었다. 열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했다. 80리(약 32km)의 인천에 순식간에 도착했으며, 일제히 내려서 각기 유람하다 가 정거장에 들어가서 다과례를 성대하게 펼쳤다.”

1899년 9월 19일 자 <독립신문>에 실린 한국 최초의 열차 개통식과 시승식 기사다. 화륜거라고 부른 이 기차는 영등포와 인천을 왕복하는 모갈(Mogul) 1호. 시속 20km로 달려 목적지인 인천까지 1시간 40분가량 걸렸는데, 기자는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는 속도로 느낀 모양이다. 하긴 서울에서 인천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서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1시간 40분 만이면 빛의 속도로 느꼈을 법도 하다. 하루가 1시간 40분으로 단축됐어도 대부분의 서민은 다리 품을 팔아야 했다. 모갈 1호의 찻삯은 1등칸이 외국인 전용으로 1원 50전, 2등칸은 일반 내국인용으로 80전, 3등칸은 여성용으로 40전이었다. 당시 80전이면 달걀 100개, 40전이면 닭 두 마리를 살 수 있었고, 5전이면 국밥으로 뜨끈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기차를 타는 것은 관료나 부유층, 혹은 지방 유학생이나 가능했다.


경인철도 개통식과 기념식

1899년 9월18일에 열린 경인철도 개통식과 기념식

“양귀는 화륜선을 타고 오고, 왜귀는 철차를 타고 몰려든다”

화륜거, 철차, 쇠당나귀 등으로 부르던 19세기 첨단 문물 기 차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유학생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통해 “증기차의 속도는 화 륜선에 비할 바 없이 빠르며, 신기하고 큰 규모와 편리함이 놀랍다. 한번 타기만 하면 바람을 타거나 구름에 솟은 듯한 황홀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고 기차를 소개했다.

다양한 통로로 서양 문물을 접한 대한제국은 철도의 중요성 을 인식하고 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1896년 미국인 모 스에게 서울~인천 철도 부설권을 주고, 7월에는 프랑스 피 브릴 회사에 서울~의주 철도 부설권을 주었다. 그러나 모스 가 진행하던 경인선은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했고, 피브릴 회사도 자금 확보 어려움과 국제 정세 변화로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반환했다. 이에 대한제국은 1898년 대한철도 회사를 설립하고 경의선 부설권을 획득한 후 경원선, 호남선 부설을 검토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대 한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해 한국인의 주관 아 래 공사를 추진하려고 노력했지만, 식민지 지배 야욕을 앞세 운 일제의 방해와 위협으로 철도 부설권을 뺏기고 말았다. 경인선과 경부선 부설권을 거머쥔 일제는 청일전쟁을 계기 로 군용 철도를 개설하기 위해 정부와 상의 없이 경의선까 지 부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경원선·호남선·함경선 부설 권마저 장악하고, ‘조선 철도 12년 계획’에 따라 1938년까지 5대 간선 철도에서 요충지로 다시 갈라져 나오는 주요 철도 를 건설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철도를 지배한 것이나 다 름없었다.

그리고 그 철도를 이용해 남쪽으로는 곡창 지대와 광산 지 대에서 수탈한 곡식과 광물을, 북쪽으로는 군대와 군수품 을 수송했다. 명목은 대한제국의 경제와 교통의 발전이었지 만 실상은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수많은 조선인의 희생이 있었다. 철도와 역 사를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됐고, 철도 부근의 집과 토지는 몰수되었다. 공사 현장에서 많은 조선인 부역자가 일본인 관리자의 학대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서 양 귀신은 화륜선을 타고 오고, 왜놈 귀신은 철차를 타고 몰 려든다”고 할 정도로 그 횡포는 심각했다.

경춘선 무궁화호

1984년에 첫 운행을 개시한 경춘선 무궁화호

우리 민족자본으로 놓은 최초의 사설 철도, 경춘선

일제의 식민지 지배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되던 철도는 1948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하자원 수송의 주 역이 되었다. 남북 분단으로 에너지원이 부족해진 남한은 석 탄 등 지하자원 채굴과 수송을 위해 산업 철도라고 부르던 영암선, 문경선, 함백선을 건설했다. 증기관차들은 이 철도 를 따라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동과 서로 지하자원을 힘차 게 실어 날랐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과 균형 있는 국토 개발의 동맥이 되 기도 했다. 이때 주요한 역할을 한 철도가 경춘선이다. 서울 에서 춘천까지 이어진 경춘선은 단순히 승객 이동 수단에 그 치지 않고 정보와 문화, 경제의 소통을 촉진해 삶의 가치를 향상시켰다. 아울러 서울과 위성도시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 록 만드는 매개체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경춘선과 함께 춘천, 청평, 가평, 강촌이 유명 관광지로 부상한 것이다. 또 경춘선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철도 시설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일 제강점기에 놓인 철도는 대부분 일제의 자본으로 부설되었 다. 그런데 경춘선은 예외였다. 1939년 조선총독부가 강원 도청을 춘천에서 철도가 놓인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 상인들과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경춘선 철도를 놓았다. 도 청 소재지 이전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그 후 경춘선은 지금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초창기에 는 농산물과 임산물 수송로였다가 산업화 시기에는 국토 개발의 균형을 이루는 중간 지점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여행 열차로 변신한 것이다.

추억의 경춘선

1970년대 추억 속의 경춘선 열차

젊음의 열기와 낭만이 넘치던 ‘청춘열차’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태백선, 정선선, 영동선, 중앙선, 장 항선…. 그많은 철도 노선 중 경춘선만큼 애틋한 추억을 간 직한 열차가 있을까 싶다. 40~50대 중·장년층에게 춘천과 경춘선은 아직도 가슴 설레는 이름이다. 친구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연인과 짧은 여행을 하고 싶을 때, MT 갈 때 경춘선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1989년에 발표된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로 로맨스의 대 명사가 된 경춘선. 하지만 기차의 로맨스는 그 이전부터 있 었다. 일제강점기에 기차는 향학열에 불타는 학생들의 유 일한 통학 수단이었다. 학생들은 기차 안에서 항일운동의 싹을 틔웠고 친목을 도모했으며, 심심치 않게 남학생과 여 학생 사이에 열애가 일기도 했다. 일제는 학생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막기 위해 ‘풍기문란’이라는 명목으로 단속했다. 1920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남녀 학생이 타는 열차 칸을 분리해 남학생은 앞 칸으로, 여학생은 뒤 칸으로 승차하게 했다. 만일 이를 위반하는 학생이 있다면, 소속 학교와 이름 을 적어 철도국 수사과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60여 년이 지난 후 청춘들의 로맨스는 다시 경춘선을 타고 달렸다. 옆구리를 따라 흐르는 풍광 좋은 북한강 덕분에 경 춘선이 정차하는 춘천·청평·가평·강촌은 유명 관광지로 급부상했고, 최고의 데이트 명소가 되었다. 서울과 가까운 강촌과 대성리는 MT의 성지가 되어 통기타를 둘러메고 버 너와 코펠을 들고 쌀·김치·라면 등 먹을 것을 잔뜩 넣은 배 낭을 멘 대학생으로 북적였고, 춘천역과 청평역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온통 핑크 모드였다.
2010년 폐선되기 전까지 운행한 비둘기호는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당시 비둘기호가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 보여주는 사건 하나. 1988년 차표를 전산 발매하 기 전까지는 입석 표를 무제한으로 팔았는데, 72석짜리 기 차 한 량에 학생이 300명 넘게 타서 열차와 바퀴 사이의 스 프링이 주저앉아 연착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청춘열차

기차는 멈췄지만 추억의 기적 소리는 여전

젊은 날의 낭만이 가득한 경춘선은 2010년 경춘선 복선 구 간 개통에 따라 일부 구간이 폐선되었다. 폐선 구간을 그대 로 방치하면서 무허가 건물이 들어서는가 하면 쓰레기 무 단 투기, 청소년 탈선 장소로 바뀌어갔다. 서울시가 이 폐선 에 눈길을 돌린 건 지난 2013년. 광운대역에서 화랑대역을 지나 서울시계에 이르는 총 6.3km 구간을 시민의 휴식 공 간으로 재생하기로 하고 지난 2015년 1단계 구간(1.9km) 을 정비해 시민에게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2016년 11월엔 2단계 구간(1.2km)을, 2017년 11월엔 마지막 3단계 구간 (2.5km)을 추가로 개방하면서 ‘경춘선숲길’을 완성했다. 기 차는 멈췄지만 경춘선은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시는 과거 경춘선 모습과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녹슨 철길 일 부를 원형 그대로 보존했고, 등록문화재 제300호인 구 화 랑대역도 보수를 거쳐 시민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6.3km 숲길은 구간마다 색다른 매력이 넘친다. 녹슨 철길 을 그대로 보존한 곳에서는 옛 시절이 떠오르고, 주택이 밀 집한 지역에서는 예쁘게 치장한 카페며 문화 공간이 생겨나 마을에 활력이 느껴진다. 소나무가 무성한 구간에서는 한 적한 숲길의 정취가 물씬 나고, 구 화랑대역에는 증기기관 차와 협궤열차, 노면전차 등이 전시되어 있어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월계역에서 시작한 경춘선숲길은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 의 경계 부근에서 끝난다. 비록 길은 끝났지만 경춘선에 얽 힌 애틋한 추억은 끝나지 않는다. 경제성장으로 살림살이 는 나아졌지만 정치적으로는 숨죽여야 했던 시절, 달리는 기차처럼 덜컹거리고 흔들리던 청춘들의 이야기가 6.3km 의 철로를 따라 계속 흐르고 있다.

경춘선 숲길

경춘선의 변천사

변천사 1939년

1939 민족 자본으로 개통한 첫 철도인 경춘선

변천사 1955년

1955 1955년 당시 증기기관차 형태의 통일호. 1939년부터 1955년까지 운행했다.

변천사 1960년

1960 사람과 화물을 활발하게 실어 날랐다.

변천사 1969년

1969 1969년부터 2010년까지 운행한 비둘기호.

변천사 1970년

1970 '청춘열차'의 대명사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변천사 1977년

1977 1977년부터 2004년까지 운행한 통일호.

변천사 2010년

2010 경춘선의 마지막 무궁화 열차 '무궁화호 1838호'.

변천사 2015년

2015 2구간 '행복주택공릉지구~공릉동 육사삼거리' 개통

변천사 2016년

2016 1구간 '월계동 녹천중학교 ~ 공릉동 과기대 입수 철교' 개통

변천사 2017년

2017 3구간 '옛화랑대역 ~ 서울시계' 개통과 함께 완전 개통

이곳 저곳 볼거리 가득한 경춘선숲길

경춘선숲길 6.3km에는 감성과 낭만이 가득한 명물이 많다. 숲길을 따라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보자.

옛날기관차

옛날 기관차

구 화랑대역 철로에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달렸다는 미카 증기기관차, 황실 노면전차, 일본 히로시마 트램, 체코 트램, 1973년까지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 구간에서 운행한 협궤열차 등 다양한 기차가 전시돼 있다.

경춘철교

경춘철교

1939년에 완공해 2010년까지 72년간 중랑천을 연결하는 철길로 사용한 경춘철교가 보행교로 재탄생했다. 철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철교 양쪽 끝에 계단과 승강기를 설치해 경춘선 숲길과 중랑천을 연결했다.

구 화랑대역

구 화랑대역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던 구 화랑대역은 경춘선 당시 태릉역이었다. 1958년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하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2006년 12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했다.

공릉동 도깨비시장

공릉동 도깨비시장

오래 전 철길 옆에 하나 둘씩 생겨난 노점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했다는 공릉동 도깨비시장. 노원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족발,닭강정,꽈배기 등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손칼국숫집도 이곳의 명물이다.

레일 바이크, 레일 핸드카

레일 바이크 & 레일 핸드카

1구간 방문자센터 부근에서는 레일 바이크와 레일 핸드카를 직접 타볼 수 있다. 레일 바이크는 페달을 밟아 자전거 바퀴를 굴리듯 앞으로 움직이는 원리이고, 선로를 보수하기 위해 사용한 핸드카는 양쪽에서 펌프질하듯 핸들을 저어 이동하는 무동력 장비다.

이정은일러스트 조성흠

사진홍하얀, 문화콘텐츠닷컴, 연합포토, 서울시 공원조성과, 서울신문

참고 자료 <간이역과 사람들>(문화콘텐츠닷컴), <이상설전>(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