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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바리에서 석유·태양광까지  문화비축기지에 담긴 국민 연료 이야기

기획 ·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②
장작바리에서 석유·태양광까지
문화비축기지에 담긴 국민 연료 이야기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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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30년.

경제성장과 산업화 성장 동력으로 최고의 에너지이던 석유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산업화 시대 유산인 석유 저장 탱크에서 문화 탱크로 재탄생한 문화비축기지에 담긴 국민 연료 이야기.

1883년에 조선을 다녀간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 웰(Percival Lowell)은 서울의 어느 광장에서 신기한 모습 을 목격했다. 그는 그 목격담을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 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거리들과 연결된 넓고 큰 광장 에는 사람이 많이 모인다. 광장은 나무를 사고파는 시장으 로도 이용되는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황소는 나이 든 사람을 대하듯 유순한 태도로 주인이 일을 마칠 때까지 끈기 있게 서 있다.”

아마도 로웰이 본 광장은 시탄장(柴炭場)이라 불리던 나무 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탄장에서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이 나 숯 등을 팔았는데, 한양으로 들어오는 땔나무는 뗏목을 이용해 한강으로 들어오는 ‘뚝섬 나무’와 구파발·무악재를 거쳐 서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는 ‘고양 나무’가 있었 다. 뚝섬 나무는 소달구지를 이용하고, 고양 나무는 지게꾼 이 짊어지고 운반해서 좀 더 저렴했다.

매일경제 ‘재계산맥 근세 100년 산업과 인물 536’(1983년 3 월 30일 자) 기사에 따르면 구한말 한양에는 종로, 남대문 시장, 동대문시장, 그리고 나무 시장이 있었는데, 나무 시장 은 돈의동·효서대문·효자동 등 서울 장안 동서남북에 일곱 곳이 있었고, 모두 최순영이라는 상인이 독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장작왕’ 최순영의 코앞에 나 무 시장을 열면서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 닌 프랑스에서 온 플래상(Plaisant)이었다. 선교나 외교가 목적이 아닌 먹고살 것을 궁리하기 위해 조선에 온 플래상 은 땔감 사업이 대박 아이템임을 직감하고 지금의 태평로 부 근에 나무 시장을 열었다. 자본이 없었던 플래상은 고양 나 무를 샀는데, 나무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커피를 이용했 다. 이름까지 한국 이름인 부래상(富來祥)으로 개명한 그는 “나는 고양 부씨요. 우리 집에 나무 많이 짊어지고 오는 사 람 커피 대접하오”라며 나무꾼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씁 쓸하면서 달착지근하고 속이 훈훈해지는 커피는 순식간에 나무꾼 사이에 입소문이 났고, 부래상 시장이라고 부르던 나무 시장은 성황을 이루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최순영이 막걸리로 대항을 해봤지만, 녹용보다 좋다고 소문난 커피 를 이길 수는 없었다고 한다.

장작바리에서 석유 태양광까지,문화비축기지에 담긴 국민 연료 이야기

김장하고 연탄광 채우면 월동 준비 끝!

한국전쟁 후에도 나무를 팔러 다니는 나무장수를 흔히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나무는 가정의 주 연료였다. 그러다 보니 도시와 시골 마을의 주변 산은 민둥산이 되어 홍수나 가뭄 의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연료원을 바꾸기 위해 석탄 증산에 총력을 기울였고, 1955년 53.1%이던 석탄 자급률은 1966년 99%로 거의 자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김치 담가 김장독에 묻어두고 연탄광에 연탄 한가득 채워두 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시절, 연탄은 두세 장이면 하루 종일 방 안을 따뜻하게 해주고 밥도 짓고 세숫물도 데워주는 훌 륭한 국민 연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아픔을 주기도 했다. 금이 간 구들장 사이로 스며든 연탄가스 때문에 목숨 을 잃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다. 필자도 어릴 때 연 탄가스를 마신 기억이 있다. 마당으로 끌려 나와 동치미 국 물을 마셨는데, 당시에는 동치미 국물이 최고의 민간요법 이었고, 그래서 집집마다 연탄가스 중독에 대비해 동치미를 담가놓기도 했다.

연탄가스 덕분에 생사를 오락가락했지만 결코 연탄이 밉지 않았다. 달콤한 달고나(설탕 뽑기) 때문이었다. 연탄불에 올린 국자에서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던 달콤한 달고나. 엄 마의 수없는 ‘등짝 스매싱’-태워먹은 국자 때문에-에도 불 구하고 달고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간식이자 신 나는 놀이였다.

서울시 에너지 변천사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정부는 절약과 내핍을 강조했다.

서울시 에너지 변천사

연탄광에 한가득 연탄을 쟁여놓으면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130여 년 전에 처음 들어온 서양 기름

그러나 너도나도 연탄을 때면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겨울만 되면 연탄 파동을 겪었다. 이에 정부는 무연탄 위주 의 난방 연료와 발전소를 유류(벙커시유)로 대체하는 등 석 유 시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가정에서도 석유곤로와 석 유 보일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석유곤로는 부엌의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성냥불을 몇 번 씩 그어대야 했고 매캐한 그을음으로 눈이 따가웠지만, 성냥 한 개비면 간편하게 취사를 할 수 있었으니 연탄에 비하 면 4차 산업혁명 수준이라고나 할까? 연탄불 꺼뜨리기 일쑤 인 자취생에게는 더욱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럼 석유는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을까? <매천야록>에 승려 이동인이 개화파 인사들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 문물을 구경하다가 석유와 석유램프, 성냥 등을 가지고 귀 국한 것으로 나와 있으니 1880년대로 추정한다. 석유는 처 음에 ‘서양 기름’이라고 불렀다.

솔표 석유와 조개표 석유

상류 가정에서나 사용하던 석유는 한미 수교 2년 뒤인 1884 년부터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정식 무역이 이루어지고, 미 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석유를 수입하면서 보급이 활발해져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석유는 아주까리나 송 진 기름보다 2배나 더 오래 타고 값은 그보다 훨씬 싸서 아 주까리기름이나 송진 기름 등잔 대신 석유 등잔이 등장했 다. 그리고 석유는 약으로도 둔갑했다. “회충에는 석유가 명 약”이라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먹고 배가 아프다고 뒹굴면 석유를 한 숟가락씩 먹이는 웃지 못 할 풍경도 벌어졌다.

석유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인천에 자 리 잡은 미국계 회사인 타운젠트 상회가 미국 뉴욕 스탠더 드 석유 회사의 석유를 독점 판매하면서부터다. 스탠더드사 는 인천 월미도와 부산 절영도에 저유 창고를 건립했는데, ‘남산만 한 서양 기름통’과 ‘서양 기름선’을 구경하기 위해 인 파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스탠더드사는 ‘솔표 석유’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하면서 신 문이나 잡지에 광고도 냈다. 경술국치 뒤에는 자동차가 늘 어 서울역에 ‘역전주유소’가 문을 열었다. 차량, 선박, 공장 등의 석유 사용이 늘어나면서 영국의 쉘이 들어와 스탠더드 오일과 경쟁했는데, 쉘은 ‘조개표 석유’`라는 이름으로 `솔표 석유`와 함께 개화 문명의 등불이 되었다.

석탄에서 석유로, 1·2차 석유파동으로 어두웠던 서울

한국전쟁 후 정부는 전후 복구와 경제 개발을 위해 석유류 제품의 국내 생산을 추진했다. 이에 1962년 7월 대한석유공 사법을 제정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64 년 울산 정유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석 유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석유 소비가 늘어나면서 민간투자 도 활발해져 호남정유, 경인에너지 등 3개의 정유사가 생겨 났으며, 석유류 제품 생산이 늘어 자급자족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1973년에 발생한 제1차 석유파동과 1978년 말에 시 작된 제2차 석유파동으로 석유 시대에 제동이 걸렸다. 1차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는 1974년 한 해 물가가 무려 24.5% 나 올랐고, 경제성장률은 12.3%에서 7.4%로 곤두박질쳤다. 물가는 급등해 짜장면은 1976년 200원으로 5년 만에 3배 이상 뛰었다. 한 모에 15원 하던 두부는 같은 값에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석유집 앞에는 석유를 사러 온 사람들로 언제나 긴 줄이 이어졌다.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 비축 정책’에 눈뜨기 시작한 정 부는 비상시를 대비한 석유 저장 시설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마포석유비축기지다. 개발 시대의 대표적 산업 유산인 마포석유비축기지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을 이유 로 폐쇄했다가 2014년 진행한 국제 설계 공모를 계기로 재 생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화력발전소에서 연간 500 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는 문화 공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변모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나 가스 저장고를 주거와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시설로 재생한 오스트리아 빈 의 가소메터시티처럼 원형을 그대로 살려 석유가 아닌 문화 를 비축하는 문화 공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서울시 에너지 변천사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다시 태어났다. 석유 대신 문화를 가득 채웠다.

탈원전·탈석유 시대, ‘태양의 도시, 서울’

석탄과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쓰긴 했지만 석유파동을 거 치면서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이 거론되었다. 그리하여 정부 는 1971년, 1977년, 1978년 각각 고리 1·2·3호기를 착공했 다. 그러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에서 대규모 방사능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고, 에너지 시설에 대한 안전 문제와 산업화에 따른 대기오염과 환경문제가 불거지기 시 작하면서 신재생에너지가 대두되었다.

전력 소비량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지만, 전력 자립도가 2.95%밖에 되지 않는 서울시는 2012년에 서울 시민 스스로 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직접 생 산하자는 ‘원전하나줄이기’를 추진했다. 목표는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양만큼의 에너지(연간 200만TOE)를 대체하자는 것. 학교와 사업장의 태양광발전, 에너지 자립마을 등 다양 한 활동을 펼쳤다.

원전하나줄이기의 핵심 포인트인 태양광 미니발전소는 공 동주택 및 단독주택의 서울시 거주자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서울시 햇빛지도 홈페이지에 제품을 선택한 후 보급 업체에 신청하면 된다. 설치비의 최대 75%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궁금한 사항은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또는 각 국청 에 너지 부서에 문의하면 된다.

윤순진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실행위원장은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태양광 미니발전소 보급은 일반 시민이 에너지 를 생산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또 함께 하는 활동을 통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 다. 집 안 온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까지 높이 는 에너지. 오늘따라 햇살이 유난히 따스하고 눈부시게 느 껴지는 건 봄기운으로 부푼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장작바리에서 석유·태양광까지, 문화비축기지에 담긴 국민 연료 이야기

서울시 에너지 변천사

1800 구한말, 땔감을 파는 땔감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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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서 석유를 구입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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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아주까리기름과 송진 기름으로 밝히던 등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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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디젤 자동차 등장으로 경유를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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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스탠더드 석유 회사의 솔표 석유 광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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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연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겨울이면 연탄 파동이 일어났다

1966 연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겨울이면 연탄 파동이 일어났다

1973 1·2차 석유파동으로 석유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1973 1·2차 석유파동으로 석유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1976 상공에서 바라본 석유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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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부엌의 혁명을 일으킨 석유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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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대두된 신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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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시작한 원전하나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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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태양의 도시, 서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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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에선 어떤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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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공간으로 점프! 보이스 요가

울림이 가득한 공간에서 소리의 형체를 느끼고, 온몸으로 소리를 감각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발성을 위해 몸을 이완한 후 다양한 발성으로 소리를 낸다. 또 타인이 내는 소리를 듣고 그에 반응하는 소리를 내며 나와 타인의 소리가 같은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것을 경험한다. 자기표현에 소심한 사람, 다양한 발성을 원하는 사람에게 좋다.

일정
3월 3·10·14·24일(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장소
문화비축기지 T6 원형회의실
비용
무료
신청
서울시공공예약서비스 yeyak.seoul.go.kr
문의문의
02-376-8732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상

2017년 ‘비전화공방서울’의 삶의 기술을 전수한 12명의 제작자와 함께 지난 1년간 배운 기술과 사유의 시간을 나누는 자리다. 3월 3일부터 4월 21일까지 7회에 걸쳐 진행하며 ‘적게 일하고 더 행복할 수 있는 비법’ 강의부터 정수기, 인도 화덕 만들기 체험 등을 해볼 수 있다.

일정
3월 3·17·24·31일, 4월 7·14·21일 오후 2시부터
장소
문화비축기지 T6 강의실, T0 문화마당
비용
회차마다 다름
신청
비전화공방서울 noplug.kr
문의문의
02-376-8732

문화비축기지 속 신나고 재미있는 공간

데이트는 문화비축기지 산책로에서

데이트는 문화비축기지 산책로에서

매봉산 산책로와 이어진 산책로는 30분 코스. 매봉산 정상에 이르면 월드컵경기장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시계처럼 보이지만 유류 계측기

시계처럼 보이지만 유류 계측기

탱크 안 석유의 양을 재는 유류 계측기. 5대의 탱크 가운데 T4에만 남아 있다. 석유 계측은 석유비축기지의 중요한 업무였다니 꼭 들러보자.

모래놀이 온몸으로 즐기기

모래놀이 온몸으로 즐기기

기지 입구의 T1 문화마당은 아이들에게 더 신나는 공간. 고운 모래로 마음껏 모래놀이를 할 수 있고,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킥보드도 탈 수 있다.

시멘트 외벽에 뿌리 내린 오동나무

시멘트 외벽에 뿌리 내린 오동나무

T4의 시멘트 외벽 미세한 틈새에 뿌리를 내린 오동나무가 있다. 근로자들 말에 따르면 2000년 석유비축기지 폐쇄 당시에는 없었다고 하니 나무의 나이는 최대 열일곱 살.

벌레도 즐기는 문화생활, 벌레호텔

벌레도 즐기는 문화생활, 벌레호텔

인공 새집처럼 벌레를 위한 둥지를 만들었다. 나뭇가지와 솔방울, 억새 등을 이용해 벌레가 알을 낳고 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일명 벌레호텔은 아이들의 자연 학습 체험에 제격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나야 나, T1 포토 존

사진 속 주인공은 나야 나, T1 포토 존

문화비축기지는 어우러진 각 탱크마다 사진 찍기에 좋은 포토 존이 많은데, T1 입구 앞에 있는 포토 존도 인기 높은 곳. 커다란 콘크리트 프레임 속으로 T2의 전경도 들어온다.




* 출처: <비축생활> 창간호, 2017년 겨울호

이정은 사진 홍하얀 일러스트 조성흠

참고 도서 <서울 2천년사>(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대한석유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