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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바이오허브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다!

서울바이오허브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다!>
2018.02

문화

서울 인문학 살롱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①_서울의 산업변천사

서울바이오허브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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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산업의 핵심 기관에서 4차 산업혁명의 컨트롤 타워로 변신한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의 산업 변천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특히 해방 후 지난 반세기 동안 서울은 사회·정치·문화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와 물가, 소득 등에서
한국 경제의 변화를 선도해왔다. 서울의 산업 변천사를 시대별로 훑어본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핵심 기술로는 인공지능·사물인터넷·자율 주행 자동차 등이 꼽힌다.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4차 산업혁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까?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으로, 인공지능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1년 뒤 구글은 알파고를 능가하는 알파제로(AlphaZero)를 개발했다. 알파제로는 게임 룰을 습득한 지2시간 만에 장기를, 4시간 만에 체스를, 하루 만에 바둑을 정복해버렸다. 각각의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인공지능들을 최신 버전의 인공지능이 꺾은 것이다. 최승진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AI(인공지능)가 궁극적 목적인 의료·환경 등의 분야에서 난제를 해결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알파제로의 성장은 앞으로 AI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 무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알파제로에서 보듯이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과 초지능을 앞세워 기존 산업혁명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IT 강국인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잘 생겼다! 서울20'의 한 곳인 서울바이오허브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들어선 바이오·의료 창업의 컨트롤 타워로, 1차 산업의 중심지에서 4차 산업의 전진기지로 변화한 서울의 산업구조 변천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갑오개혁 이후 방직·담배 제조·정미업 등의 공장 등장

그럼 과연 서울에서는 어떤 산업이 유행했고, 서울 시민의 배를 든든하게 만들어주었을까? 잘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농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한양에서도 농사가 주를 이뤘고, 따라서 한양 사람들도 농사가 주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는 실학의 영향으로 시전·난전·공인 등 상인들이 점차 늘어났고, 그중 공인은 도매상으로 성장하면서 상업 자본을 형성해갔다.
공업은 개항 이후 서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880년대 초 정부가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한 연화연무국, 전 환국, 잠상공사, 직조국, 조폐 공장 등 관영 공장들이 그것. 물론 이 공장들은 별 성과 없이 수년 만에 중단되었다. 민간 에 의한 근대적 공장은 갑오개혁 이후 설립되었는데, 방직·담배 제조·정미업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가발 공장의 여공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재건의 기치가 불타올랐고, 원조 물품인 밀가루·설탕·면직물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1970년대부터는 수출품 위주의 산업이 발달했으며, 그 주역은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었다.

일명 벌집에서 생활하는 여공들 모습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3백 산업의 국가 재건

일제강점기 동안 서울은 경인공업지역의 중핵 지역으로 1930년대 이후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구가 지속적 으로 유입되어 노동력이 풍부했고, 철도와 도로 등 육상 교 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한강을 끼고 있어 풍부한 양 질의 물과 지하수를 공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 다. 이 당시에는 식음료업이 전체의 30%를 차지했고, 섬유· 피혁·기계 공장이 그 뒤를 이었다. 공장은 주로 영등포 지 역에 밀집했다. 경성방직,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소화기린 맥주(OB맥주), 조선제분, 조선공작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1948년 해방 후 우리나라는 극심한 경제적 혼란을 겪었다. 일본인 기술자들이 철수해 공장 가동이 어렵게 되었고, 설 상가상으로 북측의 5·14 단전 조치로 전기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공급도 중단되었다. 미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자를 이용한 소비재 공장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나라가 살길은 자립적이고 근대적인 경제구조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공업. 서둘러 공장 을 복구하고 기계에 기름칠을 했다. 이 당시엔 미국의 원조 물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3백(三白) 산업으로 불리는 제분(밀가루)·제당(설탕)·면방직(면직물)이 주류를 이뤘고, 서울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을 대 표하는 공업이던 면방직은 섬유·봉제 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우리나라와 서울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수출만이 살길이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새마 을 노래'와 함께 국민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우 리 국민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진 이 노래를 귀에 못 이 박이도록 들으며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는 길이 열린 다는 집단 최면에 걸렸고, 실제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한 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 기적의 중심지는 바로 서울의 구 로공단이고 주인공은 구로공단의 여공들이었다. 저렴한 노 동력이 큰 무기였던 우리나라는 수출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 다는 경제정책을 세우고 경공업 육성 전략을 추진했다. 그 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산업 단지인 한국수출국가산업 단지를 구로동 일대에 건설했다. 일명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이곳은 노동집약적인 섬유·봉제·전자·잡화 산업 중심으 로 조성되었다. 구로공단은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먹 고살기 어려운 농촌의 젊은이들이 서울로 밀려들었다. 월차 도, 생리휴가도 없이 야간작업을 해가며 받은 월급으로 동 생들을 공부시키고 시골집에 흑백 TV를 사 보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G밸리 쉼터'에 세운 '수출의 여인상'. 구로공단의 주역이던 여성 근로자들의 위업을 기리는 상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G밸리 쉼터'에 세운 '수출의 여인상'. 구로공단의 주역이던 여성 근로자들의 위업을 기리는 상이다.

'기적'만 남고 '노동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시골에서는 서울에 가서 출세했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났지 만, 여공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아침 8시에 시작 한 일은 밤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김준희 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라인은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자기가 맡은 공정에서 일이 밀리 지 않게 흐름을 유지하라는 것인데, 그 말인즉 잠시도 쉬지 말고 계속 기계를 돌리라는 뜻이이에요”라고 당시 현장 분 위기를 전했다. 그 원칙을 지키느라 휴식 시간도 없이 재봉 틀 앞에 앉아 있다 보니 방광염이 생기고 신장염도 생겼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고였다고. 잔업과 철야에 지친 몸으로 속도전에 내몰리다 보니 재봉틀 바늘이 박히는 것은 다반사요, 손톱이 부서지기도 했다. 바늘을 빼고 피투 성이 손가락을 미싱 기름에 푹 담가 피를 뺀 뒤 다시 일을 하 곤 했다. 라인은 돌아가야 하니까.

고되게 야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도 편히 누울 곳이 없 었다. 일명 벌집이라고 불리는 쪽방에 3~4명이 함께 생활했 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칼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침은 더 힘들었다. 50여 명이 함께 쓰는 공동 세면장이라 연탄불에 데운 물로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세수를 해야 했다. 단 2개밖에 없는 공용 화장실에는 늘 긴 줄이 이어졌다. 구로공단 여공들은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더러는 ‘야 학’을 하며 공부에 대한 한을 풀기도 했고, 사무직으로 이직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훗날 야학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의 중추 세력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에서 인권침해까지 당하며 일한 여공을 두고 대통령의 업적 치하에 혈안이 된 정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들 이 서울로 올라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집에도 보내주고 수출 역군의 역할까지 하는 장한 딸”이라고 추켜세웠다. 신 문과 방송에 미담의 주인공으로 수시로 등장시켰다.

구로공단 근로자와 함께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 바 로 평화시장 노동자들이다. 1961년에 건설된 평화시장 2~3 층에 봉제 공장이 들어섰고, 역시 농촌에서 상경한 처녀들 은 ‘시다’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싱사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 지만 그들의 생활은 구로공단 노동자보다 더 열악했고, 결 국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공장에서 청춘을 불사른 노동자 덕분에 1967년 3억2,000만 달러이던 수출액은 10년 후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노동자 들의 희생과 노력이 일궈낸 위대한 성과였으며, 해외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기적'만 남고 '노동자' 는 잊혀갔다.

가전제품이 수출 효자 품목으로 등장

한편 1967년, 탱크 빼고는 다 만들 수 있다는 세운상가가 건설되면서 1980년대까지 전기·전자 산업이 호황을 맞았 다. 특히 컬러 TV의 보급과 함께 VTR·오디오·냉장고·전 자레인지 등 가전제품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고, 섬유업 종에 이어 수출 주력 업종이 되었다. 이즈음 용산에 전자 제 품 유통 상가인 용산전자상가단지가 조성되면서 세운상가 의 상인들이 대거 용산으로 이전했고, 세운상가는 차츰 쇠 락의 길을 걸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1990년 초 부터 움트던 IT 산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정보 통신 산 업, 기술 산업, 부품·소재 산업, 지식 서비스 산업이 산업 정 책 전면을 장식했고, 벤처기업 성공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했 다. 이 무렵 노후화로 외면당하던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국 가산업단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강남권에 있던 벤처기업 이 이전해오면서 국내 최대의 벤처 산업 집적지로 변모한 것 이다.

잘 생겼다 서울 인문학 살롱

4차 산업혁명의 선도적 역할을 할 서울바이오허브(위)와 양재R&CD혁신허브(아래)는 다양한 혁신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적 역할을 할 서울바이오허브(위)와 양재R&CD혁신허브(아래)는 다양한 혁신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 서울

200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산업에 IT가 융합하는 지능 기반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선진국들은 이미 IT를 중심으로 산업 간 융합을 발전시켜오고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최근 주요 국가들은 정보 통신 기술(ICT)과 제조업 간 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오토바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은 고글을 끼고 구매자가 직접 원하는 차량을 만들면 그것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스마트 공장 시스템을 도입해 오토바이 한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21일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로봇 강국인 일본은 고난도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첨단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두고 4차 산업혁명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서울시도 다양한 혁신 성장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후한 제조 산업 단지이던 구로공단이 짧은 기간에 지식 기반 산업형 첨단 산업 단지로 탈바꿈한 것을 두고 이런 사례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그 성공 요인을 서울 중심에 소재한 유일한 산업 단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경제 발전의 중심축이 서울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울은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개발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주목받는 유망 직업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연구팀과 영국 컨설팅업체 미래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해 분석한 '2025년에 각광받을 직업'을 소개한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서울바이오허브

가상 공간 디자이너

가상현실 세계를 실제처럼 설계하는 일을 한다. 가령 가상 회의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가상 갤러리를 만든다. 연구팀은 “2020년에는 전 세계 VR 기술 시장 규모가 400억 달러(44조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6년 뒤인 2026년에는 전 세계인의 상당수가 매일 가상현실 환경에서 근무하고 학습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윤리 기술 변호사

쉽게 설명하면 로봇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인공지능이 갈수록 강력해지면서 인공지능에게 통제당할까 봐 두려워하는데, 그 두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윤리 기술 변호사라는 것. 이들은 로봇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결정하거나,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을 로봇에게 교육하는 일을 맡는다.

디지털 문화 해설가

대중에게 문화를 시각적으로 해설하는 새로운 직업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디지털 문화 해설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된 예술 작품을 인터넷 공간에서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문화 해설가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춰야 하므로 예술사, 문화 연구, 큐레이션(curation)을 공부해야 한다.

사물인터넷 데이터 분석가

연구소는 “빅데이터 분석학과 사물인터넷은 2020년 영국에서만 18만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까지 모든 생활 공간은 정보 통신 네크워크로 연결된다.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 속에서 가치 있는 데이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인터넷 데이터 분석가는 매일 생산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걸러내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섬세한 인지능력, 날카로운 분석력, 그리고 천부적인 스토리텔링 자질이 필요하다.

우주여행 안내자

연구팀은 2025년 이후 우주여행 안내자가 각광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민간 우주여행업체인 버진갤럭틱 덕분에 우주여행은 이미 현실이 됐으며, 2026년이면 지구 궤도를 도는 새로운 여행이 등장할 것이다. 이때 해박한 우주 지식으로 여행객을 안내할 여행 가이드가 필요한데, 이들이 바로 우주여행 안내자라는 것이다.

인체 디자이너

인체 디자이너는 2025년 이후에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에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인체 디자이너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피부색이나 얼굴 모양은 물론, 팔다리 구조와 기능까지 최적의 상태로 향상시키는 일을 돕는다.

퍼스널 콘텐츠 큐레이터

연구팀은 2020년 후반이 되면 신경과학자들의 주도로 소프트웨어-브레인 인터페이스 (software-brain interfaces)가 산업의 주류로 떠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프트웨어-브레인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생각, 기억, 꿈을 읽고 포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퍼스널 콘텐츠 큐레이터는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개인의 콘텐츠를 조합해 가치를 재창출하는 직업이다.

생태 복원 전략가

2025년 무렵 90억 명의 인구가 대도시에 몰려 살 것으로 예상하므로 자연 생태계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생태 복원 전략가는 이렇게 위기에 봉착한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을 맡는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을 더욱 야생 상태로 만들거나, 포획 동물을 자연 서식지로 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멸종된 생물을 복원해 기후변화에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혁신가

향후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로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체제에서 벗어나는 일이 인류 사회의 급선무가 될 것이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는 재생에너지가 가장 유력하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혁신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 기술을 연구하며 실행에 옮기는 일을 맡는다.

서울을 발전시킨 산업

나란히 엿을 팔고 있는 엿장수와 소년

1920 나란히 엿을 팔고 있는 엿장수와 소년

일제강점기 방직공장 여공들. 영등포 부근에 면방직, 식음료 제조 공장이 많았다.

1930 일제강점기 방직공장 여공들. 영등포 부근에 면방직, 식음료 제조 공장이 많았다.

한국전쟁 후에는 미국 원조 물자를 기반으로 3백(三白)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사진은 대한제분 전경

1957 한국전쟁 후에는 미국 원조 물자를 기반으로 3백(三白)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사진은 대한제분 전경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 중인 서울. 시민들이 도로포장을 하고 있다.

1961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 중인 서울. 시민들이 도로포장을 하고 있다.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1단지 준공식 모습

1967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1단지 준공식 모습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세운상가. 전기·전자 산업의 메카로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1968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세운상가. 전기·전자 산업의 메카로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수출의날 기념식

1977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수출의날 기념식

컬러 TV가 등장하면서 안방극장 문화가 형성됐다. 컬러 TV는 수출 효자 상품이기도 했다.

1980 컬러 TV가 등장하면서 안방극장 문화가 형성됐다. 컬러 TV는 수출 효자 상품이기도 했다.

서울의 모든 전기·전자 제품을 모아놓은 용산전자상가. 세운상가 상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1987 서울의 모든 전기·전자 제품을 모아놓은 용산전자상가. 세운상가 상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벤처기업, IT 산업 거점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

1990 벤처기업, IT 산업 거점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를 기반으로 한 정보 통신, 신기술, 벤처 산업 등이 각광받았다.

2000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T를 기반으로 한 정보 통신, 신기술, 벤처 산업 등이 각광받았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서울바이오허브

2017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서울바이오허브

이정은 일러스트 조성흠 사진 홍하얀

참고 도서 <서울 2천년사 34권>(서울역사편찬원), <한국현대생활사>(창비)

자료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영등포공장지대 25시>(서울역사편찬원), 한국산업단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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