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이든 전통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일은
기계를 사용해 일률적으로 생산해내는 것보다 훨씬 수고스럽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정도는 감히 비교할 수 없기에,
오래가게들은 여전히 옛것을 지키며 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애쓴다.
납청놋전
황금빛 유기의 은은하고 따스한 아름다움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사동 골목에 별다른 꾸밈도 없는 소박한 흰색 간판을 내건 ‘납청(納淸)놋전’.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자체만으로 기품이 남다른 황금빛 유기가 손님을 맞는다. 전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그릇들은 이봉주, 이형근 방짜유기장 부자의 손에서 탄생했다. 70여 년의 세월, 꼿꼿한 집념으로 방짜유기의 맥을 잇는 이봉주 옹의 뒤를 이어 첫째 아들이 방짜유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버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아들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납청놋전에는 다양한 놋그릇과 수저, 조리 도구뿐 아니라 징, 꽹과리 등의 악기도 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든 것이니 저마다 소리와 울림이 다르다. 전통악기가 생소한 내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의 소리를 처음 경험한 외국인은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인사동 한복판에서 은은하고 따스한 유기의 아름다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국선옻칠
영롱한 빛을 품은 나전칠기 공예품
나전칠기의 영롱한 빛을 품은 각종 수납함이 반짝이며 눈길을 사로잡는 ‘국선옻칠’. 한국의 전통 공예품 나전칠기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회사로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아버지 오세운 대표가 열아홉 살 때 홀로 상경해 옻칠 공방에서 일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옻칠 기술과 제작 과정, 유통 전반에 경험을 쌓은 그는 광장시장에 ‘신일공예사’를 차렸다. 아들 오명호 씨가 이어받으면서 이름을 국선옻칠로 바꾸고 인터넷 몰(www.gs5701.com)도 만들었다. 오 씨는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내세우면서 전통 기술도 철저히 배웠다. 아버지와 여러 명장에게 가르침을 받아 서울공예상 공모전, 대한민국 문화미술대전, 대한민국 공예품대전 등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화재기능인 자격도 얻었다. 정교한 문양의 얇은 자개 조각을 손으로 하나하나 목제품에 붙이고 붓으로 색을 입히는 나전칠기는 지극한 정성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작업이다. 오직 전통의 명맥을 잇는다는 사명감만이 더디고 힘든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동림매듭공방
한국의 매듭을 총망라한 매듭 박물관
북촌의 한옥에 둥지를 튼 ‘동림매듭공방’은 매듭기능전승자 심영미 관장이 이끌고 있다. 심 관장은 열여덟 살 때 이웃 주민(지금의 시아버지)에게 처음 매듭을 배웠다. 시아버지는 조선 궁중에서 매듭 일을 한 시왕고모에게서 그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50여 년째 매듭에 몰두해 끊임없이 한국 전통 매듭을 연구하며 창작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새의 다회(여러 가지 모양으로 짠 끈목)를 제작하고 전주 경기전 태조 어진 유소(기나 가마 등에 다는 술)를 재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동림매듭공방은 일종의 매듭 박물관이다. 노리개,허리띠, 주머니, 선추(부채고리에 매다는 장식품), 유소 등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장식용 매듭은 물론 실, 끈, 장신구 등 매듭 재료까지 총망라해 전시한다. 옛 유물 또는 유물을 재현한 매듭이 전통 가옥의 고즈넉함과 어우러져 공간에 색다른 분위기를 더한다. 심영미 관장은 새로운 복식 문화와 현대적 감각에 걸맞게 매듭의 생김새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매듭을 보급하기 위해 일일 체험, 초보자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작품 창작의 원동력이 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도 진행한다.
금박연
금박으로 수놓은 5대 장인의 명맥
김기호 대표는 1856년부터 시작한 금박장 가업을 잇는 5대손. 조선 철종 때부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에는 김가(家)의 금박 장인이 있었다. 김 대표의 아버지 김덕환 옹은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이다. 김 대표는 20여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물려받았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건축물과 가구에 금박을 새기는 것과 달리 한국 전통 금박은 주로 비단 등 원단 위에 올리는데, 더욱 섬세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금박판에 문양을 새기고 풀을 발라 원단에 찍은 후 금박을 올리고 또다시 뒷손질하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김 대표는 왕실 예복의 옛 문양은 그대로 둔채 새로운 문양을 얹는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한다. 금박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도록 넥타이, 명함 지갑, 필통 등 다양한 제품도 개발했다. 일반인이 직접 금박 작업을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역사와 전통의 이해, 가업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전통의 현대화라는 포부를 지닌 김대표는 5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글안송연사진홍하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