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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사업은 서울 지도를 바꾸고 인류는 달에 첫발을 내딛다

토목 사업은 서울 지도를 바꾸고 인류는 달에 첫발을 내딛다>
2017.12

문화

역사 속 평행이론

토목 사업은 서울 지도를 바꾸고 인류는 달에 첫발을 내딛다

서울

서울특별시 도시 건설 착수

해방과 함께 서울은 특별시가 되었지만,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해방 이후 조금씩 발전해가는가 싶더니 한국전쟁으로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전쟁 동안 150만 서울 시민 중 110만 명 이상이 피난을 갔다가 되돌아왔다. 머물 곳조차 변변치 않았던 서울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도시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더불어 미국의 원조 물자를 이용한 제분·제당·방적 등 제조업이 재생되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수도였다.1960년대 들어서며 서울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66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김현옥은 전격적으로 토목 사업을 벌였다. 이러한 개발은 서울의 폭발적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1960년 244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딱 10년 만에 543만 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의 교통난과 주택난은 폭발 직전이었고, 정부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김현옥 시장의 서울 개발은 ‘세종로 지하도’부터 시작되었다. 서울 시내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한 공사는 서울의 교통을 꽉 막아버리며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태평로 지하도와 명동 지하도, 광화문 지하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고가도로를 만든 것도 김현옥 시장이었다. 지금도 하루에 수만 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남산터널도 이때 만들었다.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아파트 공사는 도로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컸다. 김현옥은 1969년부터 3년 동안 서울에 10만 호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1970년 와우아파트가 부실 공사로 무너진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그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시장이 나타나 서울의 지도를 바꾸었다.



미국

우주에 다다르는 여정 시작

김현옥 시장의 아파트 건설이 첫 삽을 뜨던 해, 인류는 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제일 먼저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는 말을 남겼다.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달 착륙 계획 ‘아폴로 프로그램(Apollo Program)’을 발표한 것은 1961년. 당시만 해도 인류가 달에 간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실제 당시만 해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기술도 턱없이 부족했다. 발표 한 달 전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 아닌 소련이었다. 우주 경쟁에서 뒤진 미국이 무리한 계획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있었다. 하지만 아폴로 1호부터 시작한 달 착륙 계획은 8년 뒤 아폴로 11호에서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TV를 통해 인류의 달 착륙 장면을 지켜본 서울 시민을 포함한 세계인은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구완회(작가)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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