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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서 재생으로 시간 여행

개발에서 재생으로 시간 여행>
2017.10

문화

문화 산책

문화비축기지

개발에서 재생으로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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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는 석유와 건설로 대표되는

산업화 시대부터 친환경과 재생이 화두인 현재까지 시공간으로 이어져 있다.
41년의 응축된 시간과 흔적이 그곳에 있다.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 출입 통제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지난 1970년대에 두 차례 일어난 석유파동으로 국내 경기가 흔들리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1976년 공사를 시작해 3년에 걸쳐 건설했다. 건설 당시부터 1급 보안 시설로 지정돼 시민의 접근을 통제했다. 2002 FIFA 한일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상암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인근 500m 이내에 위치한 석유비축기지가 위험 시설로 분류되자, 이곳에 저장된 석유를 경기도의 다른 기지로 옮긴 후 2000년 12월에 폐쇄했다. 이후 일부 부지를 임시 주차장으로 사용했지만 사실상 10년 넘게 버려진 땅이었다.

석유 대신 문화를 채우는 프로젝트 설계

석유비축기지의 변신과 문화비축기지의 태동은 2013년 3월에 시작되었다. 서울광장의 10배가 넘는 공간의 잠재적 가치를 주목해 활용 방안을 연구했다. 서울시는 2014년 1월 기본 구상을 발표한 데 이어 그해 8월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땅(石)으로부터 읽어낸 시간’ 을 선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 유산 재생과 석유 비축 탱크의 독특한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살린 ‘친환경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2015년 12월에 첫 삽을 뜬 이후 2017년 9월 1일에 시민에게 개방했고, 10월 14일에 개원을 기념하는 시민 축제가 열린다.

2017
2017년 상공에서 바라본 문화비축기지

1976
1976년 상공에서 바라본 석유비축기지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문화비축기지

문화비축기지가 완공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존 형태를 유지·보존하려면 1976년 준공 당시 설계도가 필요한데, 착공 전에 찾지 못해 탱크 주변 옹벽과 흙을 조금씩 파내 땅속에 묻혀 있는 원형을 추측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간 지 5개월 후인 2015년 1월, 경북 청도에 위치한 서울시 기록물 보관소에서 어렵게 설계도를 찾아냈다. 원형 설계도가 없는 상황에서 공사를 하다 보니 중간에 설계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다. 탱크 5 주변을 공사하다가 20톤이 넘는 낙반이 발생하면서 경량 철골을 콘크리트 구조로 바꾸기도 했다. 탱크 4 바닥을 철거할 때 지하에 가득했던 커다란 돌들은 탱크 3으로 오르는 계단이 됐다. 문화비축기지에 있는 돌 하나에도 생생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친환경 공법으로 지은 미래 자원

장시간 휘발유, 디젤, 벙커시유 같은 유류를 보관해온 만큼 토양오염 검사, 시설물 안전 검사도 철저히 실시했다. 또 기지 내 모든 건축물은 지열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냉난방을 해결한다. 화장실 대·소변기와 조경 용수는 각각 중수 처리 시설(30톤)과 빗물 저류조(300톤)를 통해 생활하수와 빗물을 재활용한다. 설계 단계부터 녹색건축인증(한국산업기술인증원) 우수 등급과 에너지효율등급(한국건물에너지기술원) 최우수 등급으로 예비 인증을 받았으며, 준공 이후 본인증을 받는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비축기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친환경인 것이다.

문화비축기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성장

문화비축기지의 면적은 축구장 22개 크기인 14만㎡다. 높이 15m, 지름 15~38m의 기존 탱크 5개 모두 석유 저장고를 그대로 활용했다. 저장고 자체는 물론 내·외장재와 옹벽, 현장에서 나온 돌덩이까지 문화비축기지를 꾸미는 자원이 됐다. 석유를 품었던 철판은 공연장의 안전 손잡이로, 현장에서 얻은 돌은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저장고 하나는 주변 송유관이나 안전 점검을 위해 드나들던 철사다리 등 석유비축기지를 조성할 당시 모습을 그대로 남겨 미래 자원으로 활용한다. 공간의 쓰임새를 한정 짓지 않고 강연회나 대담,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 문화비축기지의 특징이다. 10월 14일과 15일에 열리는 축제는 시민과 함께 만드는 행사다. 다양한 공연과 예술 프로그램, 시민 참여 축제와 행사, 전시와 이벤트 등이 이어질 문화비축기지는 주변의 월드컵공원 등 과 연계해 녹색 도시, 지속 가능한 도시를 상징하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2000년, 석유비축기지 폐쇄 후 10년 이상 임시 주차장으로 방치됐다.

2016년 7월 18일 문화비축기지 공사 현장

석유비축기지 당시의 철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재활용했다.

부식된 철골 등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안전한 시설물로 변신했다.

“폐쇄 후 17년 만에 찾은 산업 현장의 변신이 놀랍네요” -윤여경(1983~2000년 석유비축기지 관리팀 근무)

1983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석유공사(전 석유개발공사) 직원으로 석유비축기지에서 근무했습니다. 2000년 폐쇄 이후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억이 또렷합니다. 석유비축기지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예전 변전실과 정비동이 각각 문화마당 야외무대와 설비동이 됐네요. 문화마당 한가운데에는 석유를 실어 나르던 입출하대가 있었습니다. 정문 옆에는 소방 저수조 300톤도 있었고요. 1980년대 초 이곳은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난지도의 쓰레기 산과 쓰레기를 실어 나르던 차량, 쓰레기를 분류하는 인부 몇 명이 다였죠. 기지 안에서는 직원 20여 명이 석유의 안정적 공급과 설비 점검, 유지·관리를 담당했습니다. 탱크 5 이야기관을 둘러볼 때는 감개무량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석유비축기지 당시부터 오늘날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석유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를 비축하는 공간으로 변모해 기쁩니다. 또 서울월드컵경기장, 노을공원, 하늘공원 등과 연결된 관광 명소로 더 많은 시민이 찾을 거라 생각하니 참 뿌듯하네요.

“문화비축기지 개원 기념 시민 축제에서 만나요” -안재현(봉앤줄 대표)

지난 8월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거리예술마켓에서 공연 <나, 봉앤줄>을 선보인 데 이어 10월 14일과 15일에 열릴 개원 기념 시민 축제에도 참여합니다. <나, 봉앤줄>은 차이니스 폴을 중심으로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컨템퍼러리 서커스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커스 워크숍 1기로도 참여했습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문화비축기지에서 선보이게 돼 영광입니다. 이번 시민 축제에서는 대금, 가야금, 민요 등을 접목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문화비축기지, 전통과 현대 기예가 어우러진 <나, 봉앤줄>은 같은 가치를 공유해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문화비축기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젊고 생동감 넘치는 문화” -김소희(타블로 대표)

10월 14일과 15일에 열리는 시민 축제에서 공연을 펼칩니다. 올해 구성한 버티컬 시어터 ‘타블로’와 국내 최초로 공중 퍼포먼스를 소개한 ‘프로젝트날다’가 손잡고 색다른 공연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탱크 6 앞 벽면에 꽃을 프린트한 천을 드리우고 그 위에서 배우 2명이 로프에 몸을 맡긴 채 뛰고 날고 걷는 등 연극적 행위를 펼칩니다. 이 공연의 주제는 ‘개화’입니다. 문화비축기지의 시작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죠. 문화비축기지는 젊은 예술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다양성을 펼칠 공간이 되고 시민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문화마당이 될 거라고 봐요. 앞으로도 ‘타블로’와 ‘프로젝트날다’는 문화비축기지에서 젊고 독창적인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계속 만날 생각이에요.

양인실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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