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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기획 · 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

서울의 관문, 서울역의 117년을 돌아보다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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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 경제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1960∼1970년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상경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발을 들이는 첫 관문으로,
앞으로는 유라시아 철도망의 교통 허브로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서울역.
117년 동안 서울역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한때 ‘그릴’은 최고의 양식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먼저 나온 수프를 다 먹어야 하는지, 놔두었다가 국물처럼 떠먹어야 하는지 몰라 웨이터 눈치를 보며 홀짝거리던 시절, 그릴에서 즐기는 외식은 최고의 만찬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에 있던 그릴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곳이 바로 서울역사 2층에 있던 ‘그릴’이었다. 1925년 경성역사에 들어선 ‘그릴’은 드넓은 홀과 높고 웅장한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창, 화려한 샹들리에, 은그릇과 은 촛대, 요리사 40명 등 실로 놀라운 규모의 식당이었다. 당시 쌀 한 말에 70전, 설렁탕 한 그릇이 15전이었는데, 양식 코스가 20전이나 했으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고 조선총독부 관리나 기업가, 지주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광복 후에도 ‘서울역그릴’이란 이름으로 변함없이 운영했다. 다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이 찾는 고급 식당이 됐고, 1988년 민자 역사가 들어서면서 역사 4층으로 이전, 아직도 성업 중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한 역사, 유료 변소는 3전

서울역의 역사는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대문역으로 개장했다가 1925년 역사가 준공되면서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한 르네상스 양식의 경성역은 동양에서는 일본 도쿄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철도역이었다. 원래 공사비로 약 420만 원이 책정되었지만 1923년 도쿄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절반 이상 삭감되어 최종 건축비는 약 195만 원이었다. 만약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웅장하고 화려한 경성역으로 탄생했을지 모른다. 경성역은 도쿄 제국대학 건축과 교수인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했고, 조선호텔을 지은 합자회사 시미즈 건설이 시공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경성역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특히 수세식에 화장대까지 갖춘 유료 변소를 가장 신기해했다. 물론 3전이라는 입장료에 먼저 기함을 했고. 이 외에도 경성역은 해외의 첨단 유행 상품이 수입되고 진열되고 소비되는 쇼윈도였다. 경성의 모던 걸들에게 ‘코티분’, ‘레이스’ 등의 수입 화장품과 의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1924년 10월 건설 중인 모습. 일본은 도쿄-부산-경성-만주-유럽을 잇는 국제 역으로 경성역을 기획했다.

식민지 수탈 경제와 대륙 침략의 발판

경성역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이기도 했다. 일제는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을 잇달아 놓으면서 명실공히 ‘시모노세키-부산-서울-신의주’를 잇는 한반도 종단 철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1926년에는 부산발 모스크바행 ‘구아(歐亞)열차’도 운행을 개시했다. 이 열차를 이용해 북쪽으로는 군대와 군수품, 남쪽으로는 조선에서 수탈한 곡식을 수송했다. 철도와 역사 건설을 위해 1억 명이 넘는 조선인을 동원했고, 집과 토지를 몰수하기 일쑤였다. 조선의 경제 발전과 교통의 편리성이라는 허울 뒤에 식민지 수탈 경제와 대륙 침략의 야망이 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식민 체제에 맞섰던 사람들은 경성역에서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기도 하고, 은밀하게 불온 전단을 뿌리기도 하며,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역은 명절마다 귀성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38568

3·1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19년 9월 2일, 독립운동가 강우규 선생이 당시 남대문역이던 이곳에서 새로 부임해온 제3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당시 나이 예순네 살의 노인이 직접 폭탄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폭탄이 빗나가 총독 암살은 실패했고, 보름 뒤에 붙잡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을 당했다. 정부는 강우규 선생을 기리기 위해 폭탄을 투척한 자리에 동상을 세웠다. 구 서울역인 문화역서울 284 앞 광장이다. 경성역 직원들도 독립운동 대열에 가담했다. 경성역 출납계원 박인환과 전신계원 김갑부는 공금 1만8,353원 55전을 빼내서 잠적,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9,000원을 기부했다. 1926년 6월에는 ‘만주대동단선언서’의 격문 약 1만 장을 기차에 싣고 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은 고래 배 속, 서울역은 고래 아가리

광복이 된 뒤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개명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역사의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이후 수도 서울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늘어나는 수송량을 감당하기 위해 1960년대에 남부·서부 역사를 신설, 본역사와 구분해 사용했다. 1960∼1970년대 서울역은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는 사람들이 서울에 발을 들이는 첫 관문이었다. 이들에게 서울역은 두려움과 호기심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더불어 서울역은 지난 45년간 한국 근현대 개발의 역사를 함께한 동반자였다.

대낮같이 밝았다 ( …)
서울역전/사람들 빠져나갔다/지퍼가 고장난 가방 든 채
호남선에서 내린 한 소년이 서 있다/
올데갈데없이/바야흐로 네 인생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네 눈에 서울은 고래 뱃속/그 고래 아가리에/
서슴지 말고 들어가거라/
나와보거라 무작정 상경 아닌 놈 그 누구더냐
- 고은, <만인보> 13권 ‘서울역’ 중에서

고은 시인은 ‘만인보’라는 시를 통해 서울을 ‘고래 뱃속’, 서울역을 ‘고래 아가리’로 표현했다. 1960~1970년대 무작정 상경한 수많은 사람이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고래 아가리를 통해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갔고, 공사장 인부나 공돌이, 구로공단 공순이나 버스 차장 등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밤낮없는 노동과 땀의 대가로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경제를 성장시켰다.하루 평균 9만여 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은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 노선인 경부선과 경의선의 시발역·종착역으로, 경부선 서울역은 종착역인 부산역까지 거리가 441.7km이며, 경부고속철도(KTX)는 408.5km, 경의선은 도라산까지 55.6km이다. 과거에는 경부선 외에도 호남선·전라선·장항선 등 모든 장거리 열차를 운행했으나, 2004년 4월 KTX가 개통된 뒤부터 호남선·전라선·장항선은 용산역에서 출발한다.

2003년에 신축한 현 서울역 내부. 경성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선생의 동상

산업화 상징에서 건강한 서울의 상징으로

2003년 12월 신역사가 민자 역사로 완공되었고, 백화점이 입점하고 주변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는 등 여행과 쇼핑을 겸하는 복합 역으로 조성되었다. 구 역사는 폐쇄했다가 2011년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친 후, 복합 문화 공간 문화역서울 284라는 명칭으로 재탄생했다. 80년 기차 역사(驛舍)의 역사(歷史)를 마감하고 시민을 위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현재 ‘시간 여행자의 시계’라는 테마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전시, 공연이 5월 17일부터 7월 23일까지 열린다. 전 연령 관람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다(자세한 사항은 문화역서울 284 홈페이지 참조 www.seoul284.org). 문화역서울 284와 함께 시민의 곁으로 돌아온 공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역 고가도로는 철도도 횡단하고 신호 없이 서울역의 동서를 연결해주는 구실도 했다. 오랫동안 만리동, 청파동, 서계동 일대 소규모 봉제공장과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을 연결하면서 우리나라 봉제 산업을 이끌었다.

2014년 9월, 서울시는 1970년 첫 구간을 개방한 이후 44년동안 이용해온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녹지 및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17년 5월 20일, 드디어 서울로 7017로 개장하면서 ‘건강한 서울’의 서막을 열었다. 아울러 서울로 7017에서는 서울 시민을 위한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상시로 열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서울로 7017 홈페이지 참조 seoullo7017.seoul.go.kr).

통일 시대의 유라시아망 교통 허브로 개발

서울역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 철도망의 교통 허브로 거듭난다.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은 기존 7개 철도 노선에 5개 노선을 추가하고, 철도 시설을 모두 지하화하며 지상은 주변과 묶어 복합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일에 대비, 유라시아 철도의 아시아 출발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울역을 업그레이드해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다.1900년 이후부터 1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역은 하루도 쉬지 않고 수많은 사람과 사연을 실어 나르고 있다. 지난 2015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한 원로 화가 곽훈 화백의 말이 서울역을 묘사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사람의 애환과 희망, 욕망과 좌절, 사랑과 이별, 즐거움과 고통을 껴안고 출렁이는 바다 위에 등대처럼 홀로 서있는 서울역만큼 진실한 건축물이 우리 곁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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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달리다 이제는 쉼과 추억의 길로 단장한 폐선로

개성 넘치는 도심 공원 경의선숲길

용산구 원효로에서 마포구 가좌역까지 경의선 폐선로 6.3km가 10만2,800m² 규모의 공원으로 거듭났다. 1906년 개설해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수단이자 광복 후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를 견인한 산업 유산인 경의선을 2009년 복선 전철로 개통하면서 2012년부터 공원으로 조성해 2016년 5월 전 구간을 개장했다. 대흥동 구간, 연남동 구간 등 구간별로 개성이 넘친다.

경춘선의 낭만이 가득 경춘선숲길

경춘선숲길은 과거 경춘선이 지나가던 길 중 서울시 구간인 6.3km에 숲길을 조성한 곳이다. 이 중 현재 육사삼거리부터 하계동 경춘철교까지 총 3km의 구간을 이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구간인 태릉 일대는 조성 중이다. 폐역이 된 구 화랑대역은 다른 역과는 달리 비대칭 삼각형을 강조한 박공지붕 구조가 특이한 곳으로,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구 화랑대역은 현재 철도공원으로 조성 중이다.

한적한 시간 여행 항동철길과 푸른수목원

지난 1959년에 놓인 항동철길은 구로구 오류동과 부천시 옥길동을 잇는 연장 11.8km의 단선 철로다. 과거 화물 운반 철도로 이용하던 이 철길은 군수용품을 수송하는 용도로 지금도 가끔 이용하고 있다. 철길 따라 주택가를 빠져나오면 이곳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즈넉한 길이 나타난다. 철길 옆으로는 서울시 최초의 시립 수목원인 푸른수목원도 있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정은 사진 홍하얀, 우리만화연대, 국가기록원 참조 자료 <철도저널> ‘경성역 잡감’(박천홍),<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권기봉,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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