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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미진의 서울, 익숙한 것들의 낯선 조화

인터뷰 · 탐방 · 서울 예술가
작가 정미진의 서울
익숙한 것들의 낯선 조화
2017.02

정미진 작가는 서울의 대표적 건축물을 해체하고 결합해 생경한 도시 풍경으로 재구성했다.
그 덕에 익숙하기만 하던 서울을 잠시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익숙한 공간이 문득 낯설어질 때가 있다. 평소 잘 안다고 생각한 곳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의식을 덮쳐 오는 것은 두려움이다. 작가 정미진에게는 서울이 그런 곳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서울은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가 갑자기 이상하고 낯설어지는’ 도시다.
부산이 고향인 정 작가는 직장 때문에 2년 정도 서울과 분당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그는 다세대주택에 불이 다 꺼져 어두컴컴한 골목에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 있는 연휴의 밤, 익숙한 동네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후에도 서울은 다양한 방법으로 정 작가가 여기, 이곳의 ‘이방인’임을 상기시켰다.
“예를 들면, 지하철 환승할 때 갈아타야 할 노선이헷갈리기 시작하면 정말 블랙홀이 따로 없어요. 많은 사람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엉뚱한 노선을 타기도 하고요. 끊임 없이 카오스 상태에 빠지죠.”

“이방인으로 서울에 살면서 느낀 이질감, 불안함 등을 달랠 방법이 필요했고, 끊임없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엉뚱한 위치에 올려놓거나, 원래 상태의 것을 해체해 다른 것과 합체했다. 나란히 서 있는 건물들을 흐트러뜨려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안정과 조화를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의식과 행위가 내 모든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방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낯선 서울

2015년 서울시청 하늘광장갤러리 전시 공모는 정 작가가 이방인으로서 서울에서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기는 계기가 됐다. 작품 속에는 서울스퀘어, 국회의사당, 63스퀘어, 서울역사, 남산서울타워, 광화문 등 서울의 근현대 건축물이 담겼다.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익은 건축물을 원래 상태에서 해체하고 왜곡하면서 로봇, 불도저, 선인장 화분 같은 새로운 사물로 재구성했다. 이렇게 작업한 작품 30여 점은 <도시 괴물>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정 작가가 사용한 기법인 콜라그래피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일상 재료를 자유롭게 변형하고 새로운 질서에 따라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생경한 인상을 더한다. 콜라그래피는 원래 판판한 하드보드에 종이, 테이프, 박스 등 다양한 질감의 사물을 여러 형태로 붙여 표현한 후 그 위에 잉크를 칠해 찍어내는 판화의 한 종류다. 정 작가는 잉크를 찍어내기 전 판의 상태를 발전시켜 지금의 작품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 덕에 프레임 안은 훨씬 풍성해지고 보는 재미도 더해졌다.

새롭게 재조합된 서울의 건축물

<도시 괴물>전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서울에 대한 다소 기괴한 인상은 작가의 어린 시절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다.“외가인 파주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경의선으로 환승해야 했어요. 잠시 시간이 나서 역사 밖을 나왔는데 그때 처음 눈에 들어온 게 ‘대우빌딩(지금의 서울스퀘어)’이었어요. 갈색의 엄청 큰 네모난 건물이 금방이라도 저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에 아빠 다리를 꽉 잡고 서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즉 작가가 의도한 ‘괴물’이란 흉측한 생물체가 아니라 ‘태어나 처음 마주한 것’이다. 성인이 된 작가가 다시 서울을 찾았을 때도 ‘서울은 위압적인 곳’이라는 기저의 인식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서울을 바라보는 시각은 좀 더 입체적으로 변모해갔다. 크고 높은 빌딩, 그것들로 도심 가득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 더불어 그 안에서 생존 게임이라도 벌이는 듯 버티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상상하게 됐다. 차디찬 콘크리트 정글에서 정말 다들 괜찮은지. 그렇게 안부를 물어야 할 사람 중에는 작가 본인도 포함됐다. 서울 안에서 타향살이를 하던 그에게 서울은 멋지지만 가까이하기 힘든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어려서 처음 마주한 ‘위압적인’ 대우빌딩처럼 크고 높은 건물을 볼 때면 긴장감을 놓기 힘들었다.
 
결국 이 시리즈는 작가 자신의 성장과 함께 쌓인 서울의 이미지가 발현된 결과물이다. 정 작가는 <도시 괴물>전을 통해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됐음을 고백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낯선 서울. 그 안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스스로의 모습을 괴물에 투영한 것인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 서울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제 능력 부족 탓에 작품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아쉬웠어요. 언젠가 저도 ‘따뜻한 서울’을 그려보려고요. 고즈넉하고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서울을 재미있게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의 손끝에서 변주될 색다른 서울을 기대해본다.

정미진 작가가 공개하는 작가 노트

“서울의 비싼 집값 때문에 좌절한 경험이 있다. 그때 ‘건물도 이동이 가능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바탕으로 서울의 상징적 건물과 집 등을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담아봤다. 일종의 ‘서울의 집약체’다.”

‘Take out’, 하드보드 위에 혼합 재료, 41.5 x 53.3cm, 2015

“<도시 괴물>전을 시작하게 만든 첫 작품이다. 어린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괴물체를 표현한 것으로 대우빌딩(지금의 서울스퀘어)이 몸통, 서울역사의 일부가 팔이 됐다. 이것이 내가 느낀 서울의 무게감과 위압감이다.”

‘도시 괴물’, 하드보드 위에 혼합 재료, 409 x 530mm, 2014

“선인장은 가시 돋친 차가운 식물이지만 애써 돌보지 않아도 혼자 잘 자라는 존재다. 그런 묘한 느낌이 내가 바라보는 서울 같기도, 서울 안에 있는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도시 선인장’, 하드보드 위에 혼합 재료, 65.5 x 80.6cm, 2015

“어릴 때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대우빌딩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숭례문, 서울역사 일부를 블록처럼 쌓아 올려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처럼 표현했다.”

프랑켄슈타인’, 하드보드 위에 혼합 재료, 61 x 80.6cm, 2015

정미진 작가는 2015년 부산국제아트페어 초대전, 광복 70주년 <가슴을 뛰게 하는 태극기展>, 아트 캠페인 <바람난 미술전>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말 서울시청 8층 하늘광장갤러리에서는 서울을 주제로 한 콜라그래피 작품 30여 점으로 <도시 괴물>전을 선보였다. 2015년 말부터 시작한 전시는 관람객의 호응으로 1개월 연장됐으며, 정미진 작가의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였다.

글 안송연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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