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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100년의 발자취, 정동길

인터뷰 · 탐방 · 문화 명소
근현대사 100년의 발자취
정동길
2017.02

정동길은 서울 시민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든 공통의 기억이자 감성이 녹아 있다. 근대 외교사 100년의 흔적과 현재, 그리고 미래 100년이 교차하는 정동길을 걷는다.

성공회성당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의 처마장식, 기와지붕 등을 적용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197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성당 뒤편에는 전통적인 한옥 양식 건물이자 왕족과 귀족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양이재가 있다.
주소 중구 세종대로19길 16

서울특별시의회(옛 부민관)

 서울특별시의회는 원래 근대사의 굴곡을 함께한 경성부 부립 부민관이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전쟁을 독려하는 정치 집회 장소였고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령부, 한국전쟁 중에는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 등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시의회 의사당과 사무처, 기자실 등이 들어서 있다.
주소 중구 세종대로 125

환구단

 고종의 황제 선포식이 열리고 명성황후의 장례식이 열린 환구단의 부속 건물 황궁우.
중국, 일본과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고종은 왕이 아닌 황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선도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함으로써 자주독립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로 했다. 그 황제 즉위식을 위해 만든 제단이 환구단이다.
주소 중구 소공로 106

덕수궁

 덕수궁은 조선 시대의 궁궐로 원래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지만,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명칭을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다. 덕수궁 주변의 정동길은 서울 미래 유산이 대거 몰려 있는 문화 역사의 보고(寶庫)이자 근대 열강들의 외교 각축장이었다.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은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기에 맞춤인 공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제의 경성법원 건물이나 구한말 신식 교육의 산실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그리고 러시아공사관 첨탑과 프랑스공사관 유구 등 덕수궁 돌담길 곳곳에는 지난 시대 이 땅에서 벌어진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도로원표

 도로원표는 전국 시·군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서울시 도로원표는 1914년설치 당시 광화문광장 중앙에 위치했다. 이후 1937년 교보빌딩 앞 칭경기념비전(고종 즉위 40년 기념비) 안으로 옮겨 왔다. 도로원표는 2013년 지정된 미래 유산이다.

러시아공사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고종이 세자 순종과 함께 거처를 옮겨 이듬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피신했던 곳이다. 이곳은 근대 개화기의 외국 공관으로는 드물게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금은 옛 공사관 건물의 일부인 3층짜리 전망탑만 겨우 남았지만, 이곳은 근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한 핵심 공간이다.
주소 중구 정동길 21-18

중화기독교 한성교회

 중화기독교 한성교회는 중국 저장성에서 출생한 여선교사 더밍이 남편을 따라 1911년 한국으로 오면서 비롯했다. 한국 화교들의 모교회이자 중국 선교를 위한 구심체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 교회로, 종교사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미래 유산이다.
주소 중구 정동길 8

서울시립미술관
르네상스식 건물인 본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가 있던 자리로, 일제가 1928년 경성재판소를 지었고 광복 후 대법원으로 사용한 곳이다.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옛 건물의 아치형 본관으로 일부만 남기고 새로 탄생한 미술관은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신축해 정동길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한다.
주소 중구 덕수궁길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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