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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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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

여행

서울 둘레길

둘레길 문화읽기 ⑤ 고덕·일자산 3-2·3코스

삶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서울 둘레길 고덕ㆍ일자산 3-2ㆍ3 코스(고덕역~수서역)


이 길에서 가장 높은 산은 불과 해발 134m다. 야트막한 구릉 위에는 정상이라고 부를 만한 변변한 꼭짓점도 없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지형 때문에 이름도 일자(一字)산이다. 산이라고 칭하기에는 스스로도 조금 부족하다 싶었는지 그저 길게 뻗어 있다는 의미다. 일자산을 향해 걷다보면 모두들 피라미드의 정점만 바라보며 질주하는 세상에서, 낮지만 넓고 평평한 정상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위안이 된다.

송파구 오금동을 지나는 둘레길 구간은 마을 깊숙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천변으로 걷는다.




가을이 오는 숲을 따라 강동그린웨이와 나란히 걷다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고 고덕산을 지나온 둘레길 3코스는 명일근린공원에서부터 ‘강동그린웨이’를 따라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자치구마다 조성한 각양각색의 걷기 코스들이 때로는 겹쳐지고 엇갈린다. 고덕산에서부터 일자산까지 이어지는 강동그린웨이는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로 먼저 알려진 길이다. 걷기 열풍과 함께 온 나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숱한 길들을 보면, “희망이 땅 위의 길과 같아서,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저절로 길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했던 노신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때로는 먼저 길을 만들고 이정표를 세워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도 세상에는 적지 않다. 서울둘레길은 기존의 크고 작은 길들을 하나로 이어 옛길을 새로 보게 한 것이다. 새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위에 전에 없던 희망도 돋아나면 좋겠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편안하다. 길 위에 덜 익은 밤송이와 도토리 열매들이 이따금씩 떨어져 있다. 진달래 필 무렵 처음 걷기 시작한 둘레길에 가을 기별이 살며시 도달해 있는 것이다. 숲은 여름내 산짐승들을 위해 묵묵히 열매를 기르고 있었구나. 그런 숲에서 만나는 갈림길에는 여러 개의 이정표가 겹쳐져 때로는 번잡한 느낌마저 주지만, 일자산까지는 계속 성내천 방향만 따라가면 된다. 둘레길 위로는 야자수 줄기로 짠 매트가 흙길을 덮고 있어 어지간하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숲을 빠져나온 길은 명일동 화훼 단지를 따라 도로변으로 이어진다. 꽃집들 앞에 내어놓은 화분들 위로 아직 팔려나가지 못한 여름 꽃들이 지나가는 계절을 붙들고 있다. 꽃과 눈 맞추며 걸음을 멈추는 일이 잠시 즐겁다. 꽃길이 끝나는 곳에서 상일IC로 이어지는 천호대로를 건너면 비로소 일자산으로 올라선다.

일자산까지 이어지는 강동그린웨이와 겹쳐지는 둘레길은 평탄한 숲길이다. 일자산 정상 해맞이 공원에 있는 둔촌 이 집의 훈계비




일자산,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는 곳


일자산은 강동구 둔촌동과 하남시 초이동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뻗어 있는 서울의 동쪽 울타리다. 누구나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정상이지만 강동구에서는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라 자랑스럽게 여긴다. 둘레길에서 산마루를 통과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걷는 동안 숨을 헐떡이게 할 만큼 가파른 구간은 없다. 널찍한 정상부에 있는 해맞이 공원에는 ‘둔촌선생께서 후손에게 이르기를’이라는 제목의 둥근 해 모양의 비석이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 해도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고. 흔한 잔소리라도 약이 된다면 거듭 되풀이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가보다.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너희들을 위하여 간곡히 일러두네.”라고 적은 마지막 구절이 오히려 독서와 면학을 권하는 글귀보다 가슴에 남는다.

둔촌(遁村)은 고려 말 학자 이집의 호인데, 당시 권력자였던 신돈의 박해를 피해 일자산 서남쪽 아래 바위굴에 잠시 숨어 지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훗날 그의 뜻을 기리며 마을 이름도 둔촌동이 되었다. 이집은 다시 벼슬길로 불려나갔지만 이내 낙향해 여생을 학문에 정진한 때문인지, 앞서 지나온 고덕산과 고덕동이 기리던 고려수절신 이양중과 함께 구암서원에 모셔졌다. 일자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이집이 은거했다는 둔굴이 있다. 한두 사람이 비바람을 겨우 피할 정도의낮고 좁은 바위굴이라 실제로 오래도록 머물며 생활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 정도다. 굴 입구에는 목재 데크를 깔고 난간을 둘러놓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간밤에 심하게 비바람이 분 탓에 주위에는 도토리 열매들이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다. 여물기도 전에 떨어진 참나무 열매 때문인지 일자산에서는 유독 다람쥐, 청솔모와 많이 마주치며 걸었다.


둔춘동이란 마을 이름을 만든 일자산의 둔굴, 방아동생태경관보전지구의 습지. 둘레길은 이곳 울타리를 따라 성내천으로 나아간다.




한성 백제 유구한 물길, 성내천에는 아직 벼들이 자라고


길은 낮고 평탄한 산을 내려와서 방이동생태경관보전지구 울타리를 따라 성내천으로 길게 이어진다. 3코스에는 한강 둔치에 있던 암사지구처럼 방이동과 탄천에도 생태경관보전지구를 품고 있다. 방이동지구에는 물총새, 오색 딱따구리, 흰눈썹황금새, 꾀꼬리, 박새, 제비 등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야생 조류들의 보금자리인 인공 습지가 있다. 갈대와 부들, 버드나무가 울창한 습지를 지키기 위해 주위에 둘러쳐 놓은 것은 키가 낮은 대나무 울뿐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아지면서 습지의 원주민인 동식물들이 또다시 어디론가 쫓겨나지나 않을까, 성긴 대나무 울타리가 겨우 지탱하고 있는 생태경관보전지구마저 어쩐지 걱정스러워 자꾸 돌아보게 된다.

성내천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송파구의 마천동, 오금동, 풍납동을 거쳐 한강에 다다른다. 물길은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몽촌토성을 에돌아 흐르는데, 이 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한강 이남에 남은 백제시대 궁성의 유적지다. ‘도성 안에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불린 성내리에 흐르던 물길이 성내천이었다. 한강 북쪽에 조선 500년과 함께한 한양 도성의 청계천이 있다면, 한강의 남동쪽에는 그보다 훨씬 앞서 한성 백제 500여 년 역사를 꽃피운 성내천이 흘렀다. 청계천이나 성내천 모두이제는 스스로 물길을 흘려보낼 기력을 잃고 동력의 힘으로 물을 보태야 하지만, 그래도 물이 흐르면 물고기와 새들이 찾아오고 물길 따라 사람도 몰려나와 기지개를 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성내천 천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양산을 쓰고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는 아주머니,물 위의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는 아이들, 다리 위에서 물고기 밥을 주며 무료함을 달래는 노인들 그리고 물놀이장 주변에 돗자리와 텐트를 치고 늦은 휴가를 즐기는 가족들까지 천변 풍경은 한가롭다. 강둑위 둔치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직접 수확한 고추, 애호박, 옥수수, 가지 등을 내다파는 노점도 여럿 판을 벌이고 있다. 그 길 아래쪽 논에서는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강남 금싸라기 땅에서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펼쳐진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반갑고 또 고맙다. 오래도록 이곳에 농경이 이어질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짬을 내 숨을 들이쉬고 오금을 펴면서 위안을 얻을 텐데 싶어졌다.




장지천에서 탄천으로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달린다


내천을 거슬러 올라온 둘레길은 다시 장지천 물길을 만나기 전까지 장지동 마을 숲으로 이어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높다란 담장 바깥쪽으로 방음벽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벽보다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들이 호위 부대처럼 도열해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걸을 수 있는 나무 그늘은 송파글마루도서관이 있는 언덕까지가 마지막이다. 송파 파인타운 아파트 단지 사이로 빠져나온 둘레길은 장지천을 따라 탄천까지 이어지는데, 더 이상 한 점 그늘도 드리워져 있지 않아 고스란히 땡볕을 견뎌야 하는 천변이다.

성내천에서 장지천을 거쳐 탄천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은 송파소리길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장지천은 성내천과 비교하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흐르고, 천변 둘레길도 물이 흐르는 쪽으로 나아간다. 성내천과 장지천은 모두 청량산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길로 굽이돌아 한강에서 만난다. 장지천은 문정동에서 탄천에 합류한다.

한낮에 햇볕이 뜨거운 천변을 따라 멀리 걷는 사람들은 잠시 사막을 홀로 걷기라도 하는 것처럼 볕을 가리고 물을 넉넉히 마셔두어야 한다. 대신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이들은 낙타를 탄 카라반처럼 여유로워 보인다. 탄천부터는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나란히 뻗어 있다. 길 위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어떤 목적이든 바쁘게 움직이는데, 물가의 청둥오리나 백로는 물 밖 풍경에는 무심한 듯 미동도 않는다. 같은 하늘 아래한 풍경 속에서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 물 위를떼 지어 나는 잠자리 여린 날개 너머로 서울공항을 향해 낮게 비행하는 군용기의 검은 그림자가 이따금씩 천변의 적요를 깨뜨린다. 걷는 사람과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사람, 그들 머리 위로 지나는 고가의 자동차와 전동차. 그 모두를 묵묵히 바라보며 들판을 굽이쳐온 탄천이 한강을 향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탄천은 용인 법화산에서부터 성남을 거쳐 서울로 흐른다. 저승명부에서 누락돼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이, 이곳 탄천에서 숯을 물로 씻는 저승사자를 보고서 “내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씻어 하얗게 만든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한 입방정 때문에 결국 꼼짝없이 저승길로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광평교 아래에서 오래전 숯내로 불리던 탄천의 물길을 건너면, 비로소 둘레길 3코스의 긴 여정도 마침표를 찍는다.

장지천 천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 자전거와 보행자 도로가 나란히 이어지는 탄천의 둘레길.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외롭거든 산으로가라><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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