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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한여름의 오래된 스팀 속에서
일광세탁소
2015.8

한여름의 오래된 스팀 속에서 일광세탁소 종로구 충신동

아래내용 참조

밖에 있는 것은 탈수기와 건조기 오래된 나무 문짝이 정겹다. 근처 파출소부터 여러 회사들의 제복들이 가지런히 다림질 되어 걸려 있다. 세탁물은 맡긴 이후 한 달 후 폐기처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에 찾아와 생때를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관에 있어 골칫거리다. 심지어는 이를 앙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탁협회에서 동네 으뜸세탁소로 추천받기도 했다. 25년 여름 사용한 드라이클리닝 기계 세탁을 위해 물을 사용하지 않고 기름 성분을 사용하기에 드라이클리닝이라고 부른다. 이제 물빨래는 주로 가정에서 하고 드라이클리닝은 세톡사롤 찾는 분담화가 확실해졌다. 드라이클리닝의 유기용체는 기름 성분의 때를 없애주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쪽 공간을 숙식을 위해 막고 사용하다가 일이 많아지며 지금처럼 전체가 세탁소가 되었다.



낙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감싸는 4개의 산 가운데 동쪽을 지켜주던 좌청룡 자리의 산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무성한 푸른 숲과 아름다운 계곡이 볼만한 곳이었던지 도성 안 5대 경승지로 많은 조정 관원들이 정원을 꾸미고 산책을 즐겼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낙산의 풍류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빈민촌이 형성되며 파괴되어갔다. 급기야 6·25 전쟁 후에는 서울로 밀려든 수많은피란민이 판잣집을 짓고 눌러앉으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하나가 되고 말았다. 1970년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대규모 개발로 본래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는데, 최근에는 아파트를 철거하고 공원도 생기고, 성곽도 복원돼 일부나마 여유로운 모습을 찾게 되어 다행스럽다. 이런 전쟁 후의 과정들을 묵묵하게 지켜보며 한자리에서 가게를 꾸려온 세탁소 아저씨를 만났다. 올해로 45년 된 일광세탁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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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76) 사장  미를 갖추어 주는 곳이 바로 세탁소라는 의미다. 세탁이란. 한 사람의 미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사실 기계가 발달하여 세탁은 어느 업소나 거의 비슷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림질과 수선은 여전히 손맛과 기술을 더 요구한다. 현재 수선은 부인의 몫인데, 재봉틀을 좁은 것으로 바꾸면 부인의 일도 늘어나게 될지 몰라 일부러 바꾸지 않았다. 현재의 스팀다리미는 15년 전에 바꾼 것이다. 스팀다리미의 탄생으로 이제 옷감이 타거나 늘어붙는 고민에서 벗어났다. 세탁소의 스팀다리미는 증기보일러에 직접 붙어 있다. 손수건으로 손잡이를 감쌌다.



낙산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일광세탁소는 급한 경사의 어느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종갓집에서 태어나 이른 결혼으로 일찍이 3남매를 두었던 김영필 사장은 제대 후 다니던 여학교 사무직 봉급이 가족을 건사하는데 마땅치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30대에 들어서며 서울로 상경하였다. 마침 신당동에서 세탁업으로 자리를 잡았던 처남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결국 그의 인생을 결정해주었다. 그는 처남의 세탁소에서 속성으로 일을 배울 수 있었고, 한 세탁소 직원이 입대하게 되어 나온 세탁소를 운 좋게 이어받았다. 그 세탁소가 바로지금의 자리에 같은 건물로 그대로 이어져 온 일광세탁소가 된 것이다.

올해로 45년을 세탁업에만 종사한 그는 낙산의 변화를 가깝게 보아왔던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세탁소에는 빨래와 다림질이 필수였던 와이셔츠가 많이 들어와야 돈이 되었는데 낙산이라는 동네가 워낙 판잣집 일색의 낙후된 동네였는지라 벌이가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세탁업은 옷을 망가뜨릴 수 있는 업종이기에 특히 단골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이 바뀐 세탁소가 신임을 쌓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맡긴 옷을 가져가지 않아집에 찾아가 보면 이미 이사를 하고 없던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아직 세탁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지라 세탁업은 호황을 누렸다. 염색한 군복도 인기가 있었다. 주변에서 염색할 군복들을 모아 큰 염색 업체에 맡겼는데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리 어렵지 않아 보여 나중에는 직접 염색을 겸하기도 했다. 그는 검은색으로 염색한 군복들을 길거리에 쭉 걸어놓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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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대 밑에서 30년 가까이 쓰던 옛 전기다리미를 꺼내 보여주었다. 더 오래전에는 연탄을 피우고 그 위에 지속적으로 다리미를 올려놓아 사용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실로 열과 가스 때문에 힘들고 피곤한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에 비하면 전기다리미의 탄생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출이 올라가자 드라이클리닝 기계도 들여놓으며 가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발전하는 시대의 변화는 어쩔 수가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옷감의 종류도 많아지고, 주의사항이 늘어남에 따라 일은 더 까다로워졌다. 기계가 많은 부분을 대신해주기도 했지만, 기술적인 한계도 함께 늘어났다. 세탁업계 전반으로 옷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도 점점 많아졌다. 곳곳에 세탁소도 많이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매출도 나빠져만 갔다. 가정에 세탁기나 다리미, 재봉틀 등이 보급된 건 결정적인 변화였다. 특히 가정용 스팀 다리미의 보급은 옷감이 눌어붙거나 타는 염려로부터 다림질 초보자를 해방시켜주었다. 세탁업에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세탁소에는 기술적으로 가정에서 해결할 수없는 일들만 넘어오게 되었다. 물세탁이 되지 않는 모직 종류나줄어들 수 있는 합성섬유, 패딩 같은 것들이다. 나아가 세탁업의 대기업화도 문제다. 빨래방과 같은 체인점도 늘어나면서 영세업체는 자연스레 설 자리가 줄어들고 말았다. 그래도 깨끗한 옷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손님을 보는 일은 그에게 여전히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손님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모두 소중한 단골들이라며 중시했다.


일광세탁소란 이름은 햇빛처럼 하얀 세탁물을 뜻한다고 한다.




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가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트로트 가요가 흘러나왔다. 무덥던 여름도, 세탁소 앞 경사를 힘겹게 오르던 할머니의 한숨도, 리어카 가득 박스를 담아 내려가던 아저씨의 땀방울도, 마치 가락진 트로트 가락에 맞추어 덩실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오래된 동네 풍경은 더욱 예스럽게 포장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빨래를 하던 옛 풍경들은 동네 냇가나 우물가가 배경이었다. 이웃 아낙들이 모여 담소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던 그런 정이 담긴 곳.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을 듯한 그 모습은 빨래라는 수고스러움이 가져다주는 역설이기도 했다.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침구를 빠는 풍경을 묘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청류가 흐르는 강가에 모여, 발로 밟아 빨래를 하는 것은 즐거운 레크리에이션이라며 빨래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다.

세탁은 분명 깨끗해지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진 작업이다. 깨끗한 옷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예로부터 깨끗하게만들고, 다려 놓고, 수선한 옷을 입을 그 어떤 이를 상상하는 기대심리가 세탁에는 담겨 있나 보다. 나는 트로트가 구수하게 풍겨 나오는 이 작고 푸근한 가게에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스팀에 둘러싸여 다림질을 하는 그의 흥겨운 뒷모습을 보며 무더운 여름의 오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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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미래유산 홈페이지 futrueheritage.seoul.go.kr  서울시는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남길 만한 소중한 근현대 서울의 문화와 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해 지원 합니다. <서울의 오래된 것들> 칼럼은 서울시 선정 미래유산을 중심으로 꾸며집니다. 이장희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연이 있는 나무 이야기>가 있다. 지난 연재 순서 1. 성우이용원 2. 동헌팔방 3. 수도약국 4. 종로양복점 5. 중앙탕 6. 낙원떡집 7. 무교동 북어국집 8. 공씨책방 9. 불광대장간 10. 서울기상관측소 11. 윤극영 가옥 12. 정신여학교 세브란스관 13. 서울YMCA 14. 이문설렁탕 15. 송림수제화 16. 금성부동산 17. 일광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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