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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둘레길 문화읽기
높은 덕은 낮고 가까운 곳으로 흐른다
고덕·일자산 3-1 코스
2015.8

서울 둘레길 서울둘레길 고덕.일자산 3-1코스 (광나루역~고덕역)

둘레길이 지나는 광진교는 보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강가에 서면 그리운 것들은 모두 강 건너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차산 보루 위에 선 고구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강 건너남쪽 들판도 그렇게 탐나는 땅이었을까. 오랜 세월 한강의 물줄기가 쓸어 모은 기름진 퇴적물들이 켜켜이 쌓인 그곳. 아차산을내려와 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며 묻는다. 정말 그리운 것은 멀리만 있을까.

암시생태공원에서 바라본 강건너 아차산과 광나루 지역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암시생태경관보전지구와 나란히 걷는 둘레길

광진교 남쪽으로 한강의 역사를 건너다




광나루는 오래도록 한강 중·하류의 요충지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세운 아차산 보루성에서 강 건너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으로 전진하는 길목이었으니, 강을 건너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백제 개로왕도강 건너 아차산 아래로 끌려와고구려군에게 목이 베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곡선을 관리하는 좌도수참(左道水站)을 두고 강을 건너는 사람과 물자들을 살폈다. 그러나 1936년 광진교가 놓이면서부터 북적이던 나루터와 강수욕장으로 사랑받던 광나루 주변 모래톱들이 서서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광진교는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다음으로 오래된 다리인데, 이전에 하루 광나루에서 발동기선으로 실어 나른 화물차나 버스, 손수레가 수백 대에 다다랐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 폭파된 옛다리는 1952년 미군이 복구한 다음 1994년에 철거될 때까지 강을 건너는 숱한 사연들을 묵묵히 받쳐주었다. 둘레길은 2003년 준공된 새 다리가 2009년 걷고 싶은 다리로 단장한 길 위로 지난다.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일은 아무리 느릿느릿 늑장을 부려도짧게만 느껴진다. 강물은 교각 아래로 동에서 서로 흐르고, 둘레길을 걷는 건각들은 북에서 남으로 강을 건넌다.

광진교 남단에서 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램프 아래 능소화가 먼저 반긴다. 자전거 길과 나란히 뻗은 강변 산책로에는 접시꽃이한창이다. 능소화는 자유자재로 뻗은 넝쿨 위에, 접시꽃은 하늘향해 창처럼 꼿꼿이 선 줄기 위에 매달려 있다. 굽은 넝쿨이든 곧추선 줄기든 꽃을 피우는 길은 태양을 향해 한결같이 뻗어 간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가 쫓는 뜨거운 길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둘레길과 강물 사이에는 거대한 초록 띠처럼 울을 두르고 있는 암사생태경관보전지구가 있다. 다리 위 높은 길에서 낮은 강변으로 내려왔지만 사람 키만큼 높이 자란 갈대와 억새, 물억새 군락에 가려 강물은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거진 수풀 너머에는 길게 무리 지어 늘어선 수양버들 숲이 있다. 물길은 해가 저무는 서쪽 하구를 향해 늘 똑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둔치에 뿌리내린 나무와 풀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겨 이리저리 흔들린다. 강물을 거슬러 걸으며 물가에 뿌리내린 생명에 대해 생각한다. 강물과 함께 살지만 끝내 강물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무른 땅을 움켜쥐고 있을 뿌리의 안간힘은 눈물겹다.


4. 3-1코스 둘레길은 걷기에도 좋고, 자전거 타기에도 좋다 5. 서울 암사동 유적에 복원된 신석기인들의 움집과 빗살무늬토기

선사마을에서 서원마을까지, 고대에서 현대로 걷는 마을길




강변에서 올림픽대로 밑으로 가로지른 터널을 빠져나오면 암사동이다. 암사동은 강변의 바위 절(巖寺)터로부터 불린 이름인데, 삼국시대 절 백중사(伯仲寺)에 대해 &;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남아 있다. 절이 있던 곳은 강물을 내려다보는 푸른 벼랑 위로 숱한 풍류객들을 불러 모은 절경이었다고.

둘레길은 강동구도시텃밭을 지나 선사마을로 이어진다. 강변에 세운 절터는 역사책 속에 있지만 땅 위에 구덩이를 파고 바닥을다져 놓은 고대인의 집터는 ‘서울 암사동 유적’ 움집으로 복원되었다. 신석기인들은 한강 둔치에 우거져 있던 억센 갈대와 억새를 엮어 집을 지었다. 스쳐 지나온 길 위의 풀들이 어두운 동굴에서 강가로 나온 선조들을 비바람으로부터 따스하게 지켜준 것이다.

선사마을에서 ‘서울 암사동 유적’ 담장을 따라 걷는 길에는 풀로 엮은 움집과 산처럼 우뚝 솟은 아파트의 대비가 뚜렷하다.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를 쓰던 신석기인과, 플라스틱과 컴퓨터에 의지하는 현대인 사이는 얼마나 먼가. 다시 먼 훗날, 현대의 주거 형태를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선다면 후손들은 해설판 위에 지금 우리 모습을 뭐라 설명할까.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좁은땅 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위태로운 주거 형태를 보며 의아해 하지나 않을까. 문자가 없던 시대에도 누구나 자기 손으로 충분히 살 집을 지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선사마을에서 이어진 곳은 서원마을이다. 낮은 울타리와 마당 안으로 주차장을 들인 집집마다 빨간 우체통들을 나란히 세워 놓은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차가 없는 골목은 쾌적하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안에는 토마토며 상추가 자라는 작은 텃밭과, 그네나 평상을 놓은 잔디밭과 장독대가 정겹다. 새로 지은 고급주택들도 보이지만, 대부분 1979년 그린벨트 내 취락구조정비지구로 조성된 이후에 지은 80년대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갈하게 가꾼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있어 더욱 정감 어린 마을이다. 서원마을은 뉴타운식 재개발의 대안으로 시작한 휴먼타운사업의 성공 사례라고 한다.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아니더라도 울타리 밖으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마음을 내면 분명 마을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생각만큼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라 생각하며 다시 마을과 마을 사이로 길을 잇는다. 서원마을을 통과한 둘레길은 그린벨트 내 비닐하우스들 사이를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오르며 흙을 밟는다. 옥수수, 고추, 오이, 가지, 호박 등 한여름 밥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푸성귀들이 실하게 여물고 있는 밭둑을 따라 걷는 조붓한길이다. 흙길이 끝나는 곳에서 잠시 뒤를 돌아본다. 이런 고즈넉한 풍경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이제 초록 병풍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강 건너 아차산을 일별하고, 고개를 넘어갈 때다. 고개 너머에는 암사동의 또 다른 전원마을인 양지마을이 기다린다. 등 뒤로 아차산은 멀어지고 이제 길은 고덕산자락으로 향한다.

고덕산 지락에 내려온 둘레길이 지나는 샘터근린공원 초록빛이 짙게 깔린 고덕산 지락길

낮은 산 높은 덕, 고덕산 울창한 숲길을 따라




고덕동의 야트막한 동네 뒷산이 고덕산이다. 산은 낮지만 이름에 품은 뜻은 높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권력에 기대지 않고 망한 나라의 선비로 평생 지조를 지키며 산 이양중을 기리며, 그가 살던 마을과 산자락을 고덕(高德)이라 부른 것이다. 이양중은 훗날 구암서원에 모셨는데, 앞서 지나온 서원마을이 바로 구암서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구암서원은 백중사가 있던 자리에세워졌다. 절이 있던 자리를 서원이 차지하는 것이 조선에서 성리학의 힘을 보여준다. 구암서원은 숙종 때 왕의 친필 현판을 받은 사액서원이었다가 고종의 사원철폐령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덕동 둘레길은 고덕산 남쪽 기슭에 길게 뻗은 아리수로를 따라 걷는다. 재건축 중인 옛 고덕 시영아파트 공사장 높은 담장 아래로 한참을 걸어야 해서, 한여름 뙤약볕 아래 피하고 싶은 구간이다. 그래서 고덕산자락 숲으로 들어가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참나무 가지가 드리운 초록 그물 아래 숲길은 순하고 청량하다. 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고덕산 정상까지 올라가보면,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지나온 길의 피로도 씻어줄 것이다. 낮은 산정에서 유장한 강물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고덕산의 작은 선물이다. 더 큰 선물은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고덕산 자체라고 여겨졌다. 산길을 걷는 동안 강물과 나란히달리는 올림픽대로 위의 자동차 소음이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부서져 들려왔기 때문이다. 고덕산이 천연 차음벽이자 공기정화기 역할을 하며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울창한 숲에는 도심에서 희귀종이 돼버린 참새가 떼 지어 날아다녔다. 그래서 고덕산에서 빠져나와 산자락과 아파트 숲 사이에 위태롭게 남아 있는 논밭의 풍경마저 반갑고 고마웠다. 참새에게도 사람에게도, 낮은 산의 덕은 여전히 높아 보였다. 흔하디 흔한 참새 떼가 그리워질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처럼, 그리운 것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길은 샘터근린공원을 지나 일자산으로 향한다.

김선미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쓰고 있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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