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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맞춤 신발
송림수제화
2015.6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맞춤 신발 송림수제화 중구 수표로


‘수제화’란 손으로 직접 만든 신발을 말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직접 만들어야 수제화라고 할 수 있을까? 가죽을 비롯하여 밑창 등 여러 재료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해도 정해진 규격의 신발을 손으로만 만들었다고 수제화라 부르기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결국 기성화에 자기 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신기 위해 수제화를 찾게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발의 형태를 직접 떠서 맞춤 신발을 제작하는 ‘송림수제화’의 시스템이야말로 진정 ‘손으로 만든 신발’이란 호칭이 들어맞을 듯하다.

허영호 대장이 북극해 탐험과 에베레스트 등반에 사용했던 신발들을 사인을 곁들여 사진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신발은 서로 나누어 보관 중이기에 한 짝씩 뿐이다. 그는 "송림의 신발이 없었다면 그간의 극한 도전을 수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송림수제화에 영광을 돌렸다. (특수 제작한 북극해 탐험 신발은 현재 중소기업중앙회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벽에는 수많은 상장과 감사장이 걸려 있다. 한눈에 연륜이 느껴질 만큼 빛바랜 종이 빛깔이 인상적이다. 단기 4282년(1949년) 당시 이기분 서울시장으로부터 받은 우량상이나 1974년 한국산악회 회장으로부터 받은 감사장 등이 눈에 띈다.신발을 만드는 중간 과정에서도 매장에 들러 신발을 신어보며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친다. 간혹 멀리서 오는 손님들의 원성이 없지 않지만, 편한 신발을 위해선 몇 번이라도 오가는 수고를 가내하여야 한다며 다독이곤 한다.3층 매장의 풍경. 52m2(16평) 남짓 되는 크지 않은 매장이 신발들로 가득하다.맞춤 신발이 꼭 필요한 장애인에게 신발을 선물해주고 있다.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이 매장을 밝힌다.




1936년 개업한 ‘송림수제화’는 올해로 창업 80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은행 근처 승마화로 유명한 ‘상동제화점’에서 일했던 고(故) 이귀석 옹이 을지로3가 부근에 새로 문을 연 송림화점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는 항상 ‘고객 한 명에 맞춘 완벽한 하나의 신발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수작업을 고집하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작은 가게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전쟁 후 개발한 등산화는 명실상부한 송림수제화의 대표 상품이 되었다. 1대 이귀석 사장은 편안한 등산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만든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며 신발 상태를 점검했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고객들이 보낸 100여 통의 감사 편지를 유산으로 남기며 “고객들을 결코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대를 잇는 정신이 단순히 기술 이전만은 아니라는 소중한 철학까지 물려준 것이다.

그 열정은 함께 신발을 만들었던 조카에게 자연스레 이어졌다. 2대 고(故) 임효성 사장이었다. 최고의 재료만을 고집했기에 직접 피혁점이나 공장을 다니며 가죽을 골랐다. 그리고 좋은 것을 발견하면 그보다 더 좋은 품질을 주문했다고 한다. 평생 작업장에서 본드 냄새를 많이 맡아 나중에는 냄새를 못 맡을 정도가 되었지만, “내 생에 여한이 없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신발 만드는 일을 사랑했던 장인이었다. 이제 송림수제화는 2대 임효성 사장의 아들 임명형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발을 내디딘 지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신발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오로지 편한 신발을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발에 대해 배우고 조언을 구하며 여러 신제품을 개발했다. 지금은 고객의 발 모양만 봐도 사이즈뿐만 아니라 왜 발이 아프고,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또 어떤 신을 신어야 좋은지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실로 경지에 이르렀다는 표현이 맞을까. 하지만 그는 “제 직업이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라며 겸손하게 답할 뿐이다. 4대를 이어갈 아들들도 한창 기술을 익히며 준비 중이다. 두 아들 모두 대학에서 제화패션학을 전공하고 있어 100년을 넘는 수제화의 역사는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신발은 몸, 바로 그 자체입니다.발이 불편하면 모든 게 불편하다는 의미다. 보통 신발 한 켤레가 완성되는 데는 최소 4~9일 등산화는 10~15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요즘은 주문이 많아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평일 오전 9시 30분에 열고 오후 7시에 닫는다. 일요일만 쉰다. 3대 임명형 사장(53)1960년대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수제 등산화도 볼 수 있다. 고객이 수리를 위해 가져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송림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훗날 신발 박물관도 겸한 매장을 학장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한다.3층 매장 옆 작은 공간에 3대 임명형 사장의 작업실이 있다. 이곳에서 신발들의 최종 점검부터 여러 마무리 작업이 이루어진다. 송림에서는 사장도 직원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을 다 할 줄 안다고 한다. 시자구터 모든 걸 배워왔떤 전수 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직원 통솔도 원활할 수 밖에 없다.제작도구들은 족히 20~30년은 훌쩍 넘은 것들이 대부분이다.망치 구두용 특수ㅏㅇ치로, 원단을 다듬거나 못질 할 때 사용한다. 원단을 순천 번 두드려야 할 때도 있다.컴퍼스 족형에 마게 종이를 자르는 패턴을 만들 때 사용된다. 패턴에 따라 가죽을 잘라 가피가 만들어진다.고수레 목형에 갑피(신발의 겉가죽)을 씌울 때 사용하는 도구로 신발 제작에 필수품이다. 가죽을 당길 때 지렛대 역할을 하도록 아래턱 부분이 튀어나와 있다.펀치 고리의 구멍이나 끈 구멍 등을 뚫을 때 사용한다. 종류만큼이나 정말 다양한 펀치들이 있다.



긴 역사만큼 편안한 신발을 찾아 온 고객들도 다양했다.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 조순 전 서울시장 등 여러 정·재계 인사들이 이곳의 단골이었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 고(故) 고상돈 산악인을 비롯하여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손기정 옹도 북악산을 오를 때면 송림수제화를 애용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등정했던 산악인 허영호 대장도 빼놓을 수 없다. 비단 우리나라 고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송림수제화를 들르는 20년 단골손님도 있다. 매번 한국 여행의 목적은 ‘신발’로 여행 가방에는 수리할 신발로 가득하다. 한국에 도착하면 우선 매장부터 들러 수리를 맡기고 새로 주문도 한다. 그리고 여행 일정이 끝나면 그의 짐은 신발들로 가득해진다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어느 고객은 항공우편으로만 왕복 네 차례를 오가며 신발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쏟아붓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맞춤 신발의 활용은 기성 신발이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할 때 극대화된다. 사고를 당한 한 여대생은 이곳 신발을 신은 후에야 절룩거리며 걷던 발이 너무 편안해졌다고 감격해 했다고 한다. 그런 감사의 마음들이 일을 하는데 큰 보람이 되어 송림에서는 지금도 NGO 등에 수제화를 기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주 서울시 장애인복지시설 협회를 통해 맞춤 신발이 꼭 필요한 장애인들을 선정하여 신발을 선물해주고 있다. 진정 고객을 위한다는 신념이 이루어낸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결실이 아닐 수 없다. 큰 집에 살면서 빠른 차를 타고, 예쁜 신발을 신는 것은 돈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편안한 집과 편안한 차, 편안한 신발을 갖기 위해서는 노력과 더불어 철학까지 담겨 있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그 차에 누구와 함께 타며, 그 신발로 어디를 걸을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내딛는 누군가의 한 걸음에 이런 가게 하나가 오랫동안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기쁜 일이 될 것인가 하는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족형(Last) 고객의 발 형태를 본뜬 모형. 족형이 만들어지면 본격적으로 신발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어떤 것은 같은 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크기나 모양이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맞춤 신발이 곡 필요한 사람이라는 얘기다.오래된 부품통 옛 부품을 담는 통답게 꽤 오래된 낡은 깡통이 흥미롭다. 지금은 쓰지 않는 부품들일지라도. 수선 의뢰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루에보통 3~4건의 요청이 들어오는데 오래된 등산화라도 밑창만 갈면 계속 신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것도 자부심이 된다. 심지어 20번이나 고쳐가며 신은 고객도 있다고 할 정도다.재봉틀 갑피 원단을 접합하기 좋도록 만들어져있다.작업장 가득 늘어선 목형이 무척 인상적인 4층 작업장의 풍경. 모두 7명의 장인이 근무하고 있다. 최근 가까운 곳에 새로운 작업장을 꾸며 공간이 다소 여유로워졌다. 송림의 직원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제화 업계의 명장들이다. 개인 재화점을 하거나 유명 제화점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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