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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종로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서울 YMCA
2015.4

종로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서울 YMCA 종로구 종로

경복궁 앞 세종로 사거리에서 동쪽을 향해 뻗은 길이 종로다. 동대문을 향해 나 있는 이 길은 서대문을 잇는 새문안길과 함께 육의전 등 시전이 자리하고 있어 일찍이 상업의 중심지로 계획도시였던 한양의 주요한 도로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종로1가 부근에 있는 종루에서 도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종을 쳤기에 이름도 종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유서 깊은 종로도 보신각종을 제외한다면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질 않아 안타깝다. 그래서 종로2가에 위치한 서울YMCA 건물의 존재는 더욱 의미 있게 보인다.

가톨릭회관(옛 성모병원)과 느낌이 비슷한데 모두 모더니즘을 표방한 김정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1960년 공사가 시작되고 자금 부족으로 3층으로 임시 완공을 거친 후 1967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종로타워상층부와 하층부 사이에 공간을 비워둔 인상적인 이 건물은 '낭비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특이한 디자인이다. 그 때문에 종로 도심의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비난이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민족자본으로 1931년 이 자리에 완공된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화신백화점이 도로확장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창문이 많지 않은 이쪽이 대강당1923년 일제 강점기 시절 옆 건물 자리에 김상옥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종로경찰서가 있었다.예전 회관의 기공 연도를 적은 영친왕의 친필 정초석이 한국전쟁에도 살아남아 현광 입구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보자!3.1독립운동기념터서울YMCA는 3.1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거점이었다. 이에 앞서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2.8 독립선언 역시 일톤 도쿄YMCA의 한인 유학생들에 의해 개최되어 의미가 남다르다.1층 식당 야외에는 1914년 YMCA의 평생교육기관을 졸업한 학생들이 세운 기념비가 유리 상자 안에 담겨져 있다. 특히 영친왕이 직접 썼다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관 이라는 글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훼손되었던 흔적이 역력한데 이는 전쟁 이후 증폭되었던 좌우익의 이념대립의 결과라고 한다.1908년 만들어진 이전 회관의 모습. 한말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매천 황현은 회관이 완공된 모습을 보자 “그 집의 높기가 산과 같고, 종현의 천주교당(명동성당)과 함께 남가 북에 우뚝 마주서서 장안의 제일 큰 집이 되었다”고 말했다. 완공된 이후 YMCA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만남의 광장이었고, 동서 교류의 현장이었으며, 토론과 논단의 장소로 여러 운동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는 ‘기독교청년회’를 말한다. 1903년 미국인 질레트의 지도로 발족하였는데 신앙운동뿐 아니라 계몽운동과 토론, 체육, 농촌운동 등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역사 속에 묵직한 페이지를 채워온 모임이다. 창설되던 때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지금의 서울YMCA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황실의 협조와 미국인의 기부로 완공된 3층의 벽돌 건물은 종로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패주하던 북한군에 의해 회관이 파괴되면서 지금의 건물이 다시 세워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 그렇게 새로 선 회관은 조금씩 변해가는 종로의 한복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남아 오늘날에 이른다.

건물의 설계는 장충체육관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등을 맡았던 건축가 김정수 씨가 했는데 그는 한국 건축의 모더니즘을 표방한 건축가다. 바깥으로 노출된 기둥 사이에 3개의 수직 부재를 경쾌하게 뻗어 내리고 그 사이를 유리창으로 채운 알루미늄 커튼월 공법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층간을 이루는 타일은 멀리서 보면 흡사 한옥의 문창살처럼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전면부에 배열되어 있다. 5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변 건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종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회관(옛 성모병원)과 느낌이 비슷한데 모두 모더니즘을 표방한 김정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1960년 공사가 시작되고 자금 부족으로 3층으로 임시 완공을 거친 후 1967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종로타워상층부와 하층부 사이에 공간을 비워둔 인상적인 이 건물은 '낭비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특이한 디자인이다. 그 때문에 종로 도심의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비난이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건 민족자본으로 1931년 이 자리에 완공된 최초의 백화점이었던 화신백화점이 도로확장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창문이 많지 않은 이쪽이 대강당1923년 일제 강점기 시절 옆 건물 자리에 김상옥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종로경찰서가 있었다.예전 회관의 기공 연도를 적은 영친왕의 친필 정초석이 한국전쟁에도 살아남아 현광 입구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보자!3.1독립운동기념터서울YMCA는 3.1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거점이었다. 이에 앞서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2.8 독립선언 역시 일톤 도쿄YMCA의 한인 유학생들에 의해 개최되어 의미가 남다르다.1층 식당 야외에는 1914년 YMCA의 평생교육기관을 졸업한 학생들이 세운 기념비가 유리 상자 안에 담겨져 있다. 특히 영친왕이 직접 썼다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관 이라는 글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훼손되었던 흔적이 역력한데 이는 전쟁 이후 증폭되었던 좌우익의 이념대립의 결과라고 한다.1908년 만들어진 이전 회관의 모습. 한말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매천 황현은 회관이 완공된 모습을 보자 “그 집의 높기가 산과 같고, 종현의 천주교당(명동성당)과 함께 남가 북에 우뚝 마주서서 장안의 제일 큰 집이 되었다”고 말했다. 완공된 이후 YMCA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만남의 광장이었고, 동서 교류의 현장이었으며, 토론과 논단의 장소로 여러 운동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내 수영장을 비롯해 직접 들어가서 보지 않는다면 종로 한복판에 있다고는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실내 돔 체육관, 그리고 유도장, 강당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미 장충체육관을 설계했던 건축가 김정수에게 이 공간들은 도심지의 복합 체육시설로 또 다른 고민과 과제를 안겼을 것이다. 당시 한국 건축 기술의 현실을 직시하고 손수 도입해 온 기술을 실패를 거쳐 가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그였기에 더없이 즐거운 작업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 장충체육관이나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옛 원자력병원)처럼 리모델링을 거쳐 건축가의 흔적이 희미해진 것과 달리 큰 변화 없이 시간을 담아온 이 건물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아마도 지나온 날들보다 더 많은 날들을 거듭하며 행인들을 맞을 이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에서 깊은 역사의 발자취를 가진 이 공간이 역사도시로서 서울의 미래가 될 것이리라. 나는 다시금 동대문을 향해 종로를 걷기 시작했다. 무성한 그늘을 드리울 종로의 플라타너스가 아직은 말쑥한 봄빛 가지를 드리우며 천천히 내 위를 따랐다.

서울시는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남길 만한 소중한 근현대 서울의 문화와 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합니다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연재 순서1. 성우이용원2. 동헌필방3. 수도약국4. 종로양복점5. 중앙탕6. 낙원떡집7. 무교동 북어국집8. 공씨책방9. 불광대장간10. 서울기상관측소11. 윤극영 가옥12. 정신여학교 세브란스관



이장희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연이 있는 나무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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