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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사무실
정신여학교 세브란스관
2015.3

종로구 김상옥로

전쟁과 더불어 지속된 개발지상주의는 역사 도시라는 서울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옛 건축물의 흔적들을 지워 왔다. 그나마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들도 일제 강점기에 외국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자선사업가이자 한국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인 세브란스의 기부로 만들어진 정신여학교의 세브란스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제 이곳을 사용하던 학교는 강을 건너 잠실로 이사를 갔고, 용도가 사무실로 바뀐 이 건물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사무실이 되어 옛 정신여학교의 추억만 조용히 전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아래 내용 참조

- 이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본관 건물이 1912년 세워진 정신여학교의 세브란스관이다. 세브란스가 한국에 기부한 돈으로 세워진 건물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붙였는데 당시 세워졌던 종합병원이나 한국 최초의 의과대학은 모두 사라졌고,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 이것뿐이니 지금의 가치로 수천억 이상을 기부한 그의 의미들이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없어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신관 뒤쪽으로 거짓말처럼 커다랗고 오래된 체육관이 건물들 사이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 뒤로 조금 삐져나와 보이는 것이 터줏대감 회화나무다. 전보다 수세가 나빠져 이제 건물 너머로 겨우 보일 정도가 되어버렸지만 학교에선 더없이 상징적인 존재였기에 교목도 회화나무로 정해지기도 했다.- 난방 굴뚝이 보이는 관리소- 벚꽃 가득한 봄의 풍경은 그야말로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알고 보면이 벚나무들은 학교가 이전된 후 새로 심은 것들이다. 학교가 떠난 지도 어느덧 30여 년이 훨씬 넘었으니 새로운 나무들도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잡고 늘어선 것이다.- 복도와 게단을 걷노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발밑을 따른다. 나무 복도를 열심히 광내고 닦았을 학생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다.- 나무 한 그루가 전해주는 깊이감이란...- 두터운 나무 창틀이 그대로 남은 창. 쏟아져 들어오던 봄 햇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겠지.- 세브란스관의 옆 모습. 철근과 콘크리트를 쓰지 않은 나무 골조식 벽돌 건물이라는 점이 놀랍다. 그동안 큰 변형 없이 보강 공사만 몇 번 해온 것이 전부라고 한다. 백두산에서 공수해온 나무를 썼다는 말도 있고, 홍콩에서 제작된 벽돌을 사용하여 일본 건설사가 시공했다는 말도 있다. 현재는 부동산개발업과 임대업을 하고 있는 대호흥상의 소유로 대호빌딩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과거 1980년대 이전 서울의 도심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학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구 분산 정책과 부족한 녹지를 해결한다는 정책하에 학교들은 사대문 밖으로 옮겨져 갔다. 학교가 가고 남겨진 장소는 공공도서관이나 박물관이 들어서 문화 발전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빌딩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문제들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종로5가 부근 연지동에 있는 옛 정신여학교 건물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떠나고 남은 건물은 사무실이 되었고, 일부 부지에는 육중한 고층빌딩이 위압적으로 들어섰는가 하면 운동장은 주차장이 되었다. 하지만 여느 도심의 풍경과 다를 바 없을 듯한 이곳에도 옛 흔적들은 끈질기게 남아 과거를 말해 주고 있다. 그 속삭임이 반가워 나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풍경들을 담았다.

정신여학교의 시작은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의료 기관이었던 제중원의 여의사 애니 앨러스(Annie.J.Ellers)에 의해 정동에 첫 여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당시 고아가 된 여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출발한 정신여학당은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1890년 지금의 종로구 연지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정식 사립학교 인가를 받게 된 이후 당대의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하며 근대여성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정신여학교의 굳건한 독립운동의 열의는 그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1926년에는 6·10만세운동에 참가하여 30여 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왔고, 1939년에는 국어말살정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교장이 해직되고 학교가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광복 후 다시 문을 열고 오늘날 강남으로 옮기기 전까지 그런 역사의 흔적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아래 내용 참조

- 건물들 뒤쪽으로는 중학교로 사용하던 건물들과 근사한 모습의 서양식 선교사 사택들이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거대한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그 풍경의 변화는 하늘을 가리고 역사를 희미하게 만들어 갈 뿐이다. 그 사이에 자리한 체육관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만 같다. 이곳은 현재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공연 연습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지붕은 골함석판으로 덮여 있는데 세월의 흔적까지 얹어 놓은 듯 온통 녹 투성이다. 원래 본관의 지붕도 골함석판이었던 것을 훗날 동판으로 교체한 것이라고 한다. 골함석판은 과거 군용 막사의 지붕에 많이 쓰여 익숙한데 그래서인지 이 체육관은 막사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내부는 서울에 이만한 연습 공간도 많지 않을 듯이 넓고 높았다.-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로 만든 전신주 가로등도 보인다.- 고동형(34세) 뮤지컬 '난타'에도 출연했던 배우다 : "이 곳으로 오는 느낌이 마치 코흘리개 시절 동네 형들에게 혼나러 가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사무실 안까지 수도가 들어와 있지 않아 아쉬워 하는 입주회사가 있었는데, 과거 학교였던 특성 때문이다. 대신 곳곳에 수돗가가 있는데 그 오래된 느낌은 왠지 친근하기만 하다.



난 건물 주변을 둘러보며 학교였을 때의 흔적과 만나며 어떤 편안함을 느꼈다. 본관과 신관 사이에는 학교보다 훨씬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꿋꿋하게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화분에 심어 놓은 커다란 화초 같아 측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긴 역사를 묵묵히 내려 보며 버틴 여러 시대의 증언자로서 애써 말을 참고 있는 듯 든든해 보이는 것은 오래된 나무가 갖는 매력이 아닐까.

아마도 나무의 목격담 가운데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은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보내던 역할을 했던 항일여성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이 학교에서 회합을 다졌는데 한 간부의 배신으로 일경의 대대적인 수색이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수색을 피해 조직원들의 신상명세가 담긴 비밀문서와 태극기,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국사 교과서와 공책을 묻어 놓았던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였다는 것. 나는 잠깐 동안 나무를 보며 다가오는 봄의 오후를 느꼈다. 신학기가 시작된 교정 가득 피어났을 봄꽃들은 여전히 화려했고, 학생들의 재잘거림 대신 흐르던 도심 한복판의 자동차 경적 소리는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새잎을 틔울 회화나무를 올려다보며 과거를 이어주는 고마운 연결고리에 이내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정신여학교 세브란스관을 나타낸 약도 그림



서울시는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남길 만한 소중한 근현대 서울의 문화와 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합니다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연재 순서 1.성우이용원, 2동헌필방, 3수도약국 4종로양복점, 5중앙탕, 6낙원떡집, 7무교동 북어국집, 8공씨책방, 9불광대장간, 10서울기상관측소, 11윤극영 가옥

이장희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연이 있는 나무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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