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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백일떡에서 백순 잔치떡까지
‘낙원떡집’
2014.9

아래 내용 참조

lt; 백일떡에서 백순 잔치떡까지 '낙원떡집' - 종로구 낙원동 gt;- '낙원' 이라 하면, 지극히 도회적인 삶에 익숙해진 탓인 걸까. 으레 녹음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자연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종로구 한가운데 자리한 낙원동이란 곳의 지명을 보면 낯선 물음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유래를 살펴보면 비슷한 맥락이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근처에 자리한 국내 최초의 도심 공원인 탑골공원을 도심 한가운데 낙원처럼 여겼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악기상가와 더불어 떡집 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곳에 우리나가에서 가장 오래된 떡집이 있다.- 원래 길 건너편 쪽에 있다가 개발에 밀려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낙원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떡집이 수도권에만 4백 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떡집의 대명사처럼 굳어진 셈이다. 영업시간은 아침 8시부터 밤10시까지, 1년 중 쉬는 날 없이 문을 연다.- 낙원떡집에서는 누가 와서 떡을 찾더라도 특별히 다르게 만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와도 가판대에 놓인 떡을ㅇ 내준다. 어느 떡이나 담긴 정성은 모두 같다는 의미다. 일본에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떡 가게도 있다고 하낟. 28대 째 가업을 계승해 온 비결을 묻자 그저 '정성뿐' 이라는 대답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정선들이 앞으로 천년 후에도 가게를 존속시켜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출연했던 사진들을 담은 액자들이 쭉 걸려 있다.- 어머니와 혼례 준비로 떡을 맞추러 온 젊은 총각의 모습이 풋풋해 보인다.- 나무로 만든 돈 통은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골동품으로 여저히 떡값을 챙기는 귀중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쪽에서 인절미를 잘라 바로 고물에 묻혀준다.- 30년 이상 떡을 썰어 온 칼. 칼날도 칼자루도 닳아 홀쭉해졌다. 그래도 이만한 칼으 없다며 떡을 썰어 보인다.- 가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누구를 그림으로 담을까 고민하다 결국 4대 게승자인 김승모(44세) 씨를 선택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어릴 적 떡을 빚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고생스러운 시간들로 떠올린다. 떡 만드는 일을 도와드리며 자란 그는 이렇게 일구어 온 가게를 포기할 수 없어 떡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미 몇 년 전 인사동에 점포 하나를 더 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까만 봉투에 떡을 담아 주던 걸 로고도 서로 만들고 봉투도 찍어내 브랜드화 했다.- 마지막 포장 단계, 뒤로 쌓아 놓은 쌀이 인상적이다. 낙원떡집은 좋은 재료로 떡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국산 쌀과 국산 ㄹ참기름을 고집하는데, 특히 인기 있는 쑥떡의 재료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라는 쑥으로 공수해 온단다.




낙원동에는 1960년대까지 낙원시장이 있었다. 지금은 낙원상가 지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는 형국인 이 재래시장은 과거에는 궁궐을 비롯해 고관대작이 많이 살던 북촌과 가까워 다른 시장에 비해 물가도 높았고 품질도 좋은 물건들이 많이 거래되던 곳이었다고 한다. 시장에 떡집이 들어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을 텐데 낙원시장이, 특히 전국에서도 떡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때는 경술국치로 조선 왕조가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궁궐을 나온 많은 상궁과 나인들이 호구지책으로 이 근처에 터를 잡고 궁중 떡을 빚어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궁중 떡을 맛보려던 많은 서민들이 몰려들었고, 떡집은 무척 호황을 누렸던 것 같다. 이때 낙원떡집의 창업자라 할 수 있는 김사순 여사는 본래 타고난 손맛을 갖고 있었는데, 상궁들 거처를 오가며 떡 빚는 일을 거들면서 그 비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919년 즈음 본인의 가게를 시작한 것이 낙원떡집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손맛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 중에도 떡을 빚어 팔 정도로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후 딸 김인동 씨를 거쳐 다시 손녀딸 이광순 씨까지 3대째 떡 맛은 변함없이 이어졌고, 지금은 증손자인 김승모 씨가 4대째로 가업을 내려받을 준비로 분주하다.

10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낙원떡집의 맛은 널리 퍼져갔다. 초대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에서 주문하는 대부분의 떡을 공급했는가 하면, 까다롭기로 소문난 조계사의 떡도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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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떡공장이 있다. 공장에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며,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매일 떡을 만든다. 그날 만든 떡은 다음날로 넘기지 않고, 그날 모두 처분하는데 남는 것은 주위 여러 곳에 기부한다. 그래서 손님 중에는 '오늘 떡이냐?'고 묻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고 귀띔한다. 가게에서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못 신기하다. 못 그린 다른 기계도 많다.- 아주 오래전에는 돌절구에 떡메로 직접 떡을 치기도 했단다. 한 시간을 치면 쓰러질 정도로 고된 일들이었지만, 지금은 기계가 대신 해주는 작업이 많아졌다.- 방아기계, 송편기계, 대형 냉장고, 보일러 그림- "과거에 정말 주문이 많았을 때에는 주문서로 벽을 도배할 정도였다니까요." 덕을 배달하는 이창근 씨가 보자기에 포장된 떡상자를 오토바이에 싣고 있다. 하지만, 세월은 변하고 패스트푸드에 많이 길들여진 현 세대들은 빵을 즐겨찾는데다 기계식 떡이 보편화되면서 어디에나 떡집도 많아져 예전 같은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걱정도 많다.


정·재계 인사를 비롯해 원로 연예인들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많은 이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오랫동안 떡을 팔다보니 실수도 없지 않았다. 언젠가 칠순 잔치에 돌잔치 떡을 보내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칠순 노인은 앞으로 더 많이 살라는 뜻으로 그냥 받겠다며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백일떡을 해갔던 집의 아이가 커서 혼인떡의 주인공이 되어 찾아오는 것을 보며 일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단다. 한평생 고객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 오래된 가게의 멋이 아닐까! 5년 후 가게의 백년을 맞는 날에 백순 잔치의 떡을 맞추러 오는 누군가도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난 가게를 나서며 가장 인기가 많다는 떡 몇 개를 사들었다. 그리고 근처 탑골공원에 앉아 가만히 떡을 음미했다. 공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더위가 물러가고 추석을 재촉이라도 하듯 입추가 지난 가을 하늘이 드높기만 하다. 마침 허기가 느껴지던 차에 맛보는 떡 맛, 진정 꿀맛이었다. 그래,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그늘 아래, 바로 여기가 낙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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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래된 것들 연재순서 1.성우이용원 2.동헌필방 3.수도약국 4.종로양복점 5.중앙탕 6.낙원떡집 , 이장희 : 다양한 매체에 글과 그림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lt;서울의 시간을 그리다gt;, lt;사연이 있는 나무이야기g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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