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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 골목길 산책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오순도순 다정한 마을
성북동 사람들 이야기
2014.1

성북동 언덕에 떠오른 해는 2014년에도 여전히 탐스럽고 현란합니다. 서울 부촌의 상징인 성북동을 찾아가 담장 높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좀 덜 사는 아랫동네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앞으로 살고 싶은 성북동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서울의 근현대사를 겪은 동네답지 않게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군요. 사람들도 그렇고요. 또, 성북동만큼 문화유산이 많은 동네도 드뭅니다. 서울시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기도 했지요. 1월호에는 먼저 성북동 사람들 이야기를 싣습니다. 성북동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2월호에 찾아갑니다



-정한모, <성북동 골짜기> 중에서

성북동 산에서 맞는 아침 해돋이는 장관이다. 동쪽을 향해 활개를 펴고 있는 듯한 성북동 산 중턱에 오르면 아침 안개가 바다처럼 동부 서울의 지붕들 위에 깔리고, 그 위로 탐스러운 얼굴처럼 빛나면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돋이의 현란한 아름다움은 바다의 그것에 못지않은, 오히려 그 배경이 오밀조밀 단순치 않아 더욱 아름다운 것이었다.



빨래하고 메주 쑤던 산동네

“도성 북쪽 성북동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백성을 살도록 해주십시오.”
영조 41년(1765년)에 김한구와 홍봉한은 어영청 북둔을 설치해 도성을 방위하고, 백성이 살 곳을 마련하고자 조정에 그 뜻을 올렸다.
그러나 백성을 이주시키긴 했지만, 산이 깊고 농지가 적어 백성이 살기가 막막했다.
조정에서는 백성에게 직물을 빨거나 삶아서 볕에서 바래는 마전 기술을 익히게 하고, 도성의 면·베·모시를 포백하는 일감을 받도록 했다.
또 메주를 쑤는 훈조막을 두어 마전 일을 하기 어려운 겨울에도 백성이 살아가도록 했다.
가마솥을 걸고 콩을 삶아 메주를 쑤던 곳은 ‘북적북적’ 메주 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여 북적골(지금의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이 생기면서 골짜기와 길에도 이름이 붙었다.
북적골 입구 개천에는 돌다리와 나무다리가 놓여 있어 마을 사람들이 ‘쌍다리’라고 불렀다.
1970년대 접어들어 철근으로 만든 다리로 바뀌었다가 성북천을 복개하며 지금은 쌍다리라는 지명만 남아 있다.
조선 왕조부터 대한제국, 일제감정기까지 1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성북동의 자연과 그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였다.
하얀 광목이 흐르는 개천을 따라 넘실대고, 풀밭에서 햇빛을 받으며 펄럭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직조 과정이 기계화되면서 사람의 힘으로 마전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1970년대 성북천 복개 공사로 빨래터마저도 사라졌다.
이상의 내용은 성북구청에서 발행한 <잊혀져가는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 3-성북동>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런데 성북동을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북동의 이런 역사를 훤히 꿰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북동 주민은 모두 역사학자?
“그럴 리가요. 다들 오래 살다 보니 주워들은 얘기도 있고, 경험한 것도 있고 해서 마을해설사 정도는 돼요.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는 동네, 초등학교 교가를 아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동네가 바로 이곳 성북동이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이 있고, 오래도록 정을 나누며 함께 산 이웃이 있으며, 그 흔한 아파트 한 채 없는(문화유산 옆에 아파트를 세우지 않은 자신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북동 주민이 많다) 성북동. 이곳 토박이인 최성수 시인은 주민의 자긍심이 서울의 어느 동네보다도 높은 곳이 성북동이라고 말한다.



서울깍쟁이? 푸근한 시골 인심


어르신이 많이 사는 성북동은 그래서인지 시골 못지않게 정이 많고 인심이 푸짐한 곳이다.
김장을 하면 고무장갑 들고 가서 함께 버무려주고, 김치전을 부치면 평상에 들고 나와 오가는 동네 사람들과 한 점씩 찢어 먹는다.

‘디미방’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진하 씨는 주민의 이 같은 살뜰한 정에 반해 아예 성북동으로 이사를 온 케이스.
“음식점을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곳을 발견했어요. 가게를 열고 처음에는 무척 초조했지요.
그런데 찾아오는 손님을 보고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손님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물김치가 맛있게 익었다고 가져다주시는 손님, 신분을 숨기고 옛 동료들과 송년회를 치르고 가시는 어르신, 벽에 예쁜 그림과 멋진 글을 써주신 예술가, 늘 맛에 격하게 감격하는 젊은 오빠들…. 이런 분들이 단골손님이니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주방을 맡고 있는 아내 배서영 씨는 그분들의 마음 씀씀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몸에 좋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된다고 말한다.
참고로 디미방에서는 시원하고 깔끔한 소고기국밥, 매콤한 제육볶음, 담백한 빈대떡이 인기가 많다.

디미방 취재를 하고 나오는데, 배서영 씨가 한 곳만 더 소개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커피 전문점 ‘콩집’이다. 주인 최장호 씨가 장인 정신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수지 타산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맛에만 집중해 같은 요식업을 하는 사람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고. 그리고 ‘사람은 진국인데 안타깝게도 노총각’이라며 커플 매니저 노릇도 자처한다. 혹시 <서울사랑> 독자분 중 커피를 좋아하는 올드미스가 있다면 한번 가보시라. 적어도 커피 맛에는 반할 테니까. 옆집 노총각 혼사 문제까지 걱정하는 사람들, 이것이 그들이 누누이 말하는 성북동의 정인가 보다.



도둑촌이라 불리던 윗동네


그런데 이쯤에서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성북동은 서울의 비벌리힐스로 불리는 부촌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한성대입구역부터 쌍다리까지 동네 모습은 부촌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성곽 아래 북정마을은 오히려 달동네에 가깝다.
도대체 어디가 부촌이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으로 올라가니 비로소 성북동 부촌이 제대로 보인다.
선잠단지에서 선잠로를 따라 작은형제수도회, 성락원, 길상사까지 그리고 삼청터널과 연결되는 대사관로를 따라 북악산 쪽으로 으리으리한 저택과 대사관저가 들어서 있다. 양옥, 한옥, 빌라 등이 오밀조밀 모인 아랫동네와는 전혀 딴판이다.

사실 윗동네가 부촌의 상징이 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 권력자의 본산이었다.
청와대가 가깝다는 이유로 권력자들이 먼저 이곳에 터를 잡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기업 총수와 부자들이 권력의 주변으로 모여들어 부촌이 형성된 것이다.
높은 담장과 밀실 정치, 대원각과 삼청각의 연회는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했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도둑촌’이라 불렀다. 지금은 서로 질시하지 않고 정답게 어울려 잘 산다.
성북동에 대한 자부심이 잘사는 윗동네와 조금 덜 사는 아랫동네를 서로 통하게 만든 것일까?



조용한 주민이 조용하게 살고 싶은 곳


성북동 토박이 박용선 씨는 성북동 마을 이야기를 담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에서 지난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모습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다른 동네에 비하면 예전 모습 그대로예요.
그만큼 평온했다는 얘기죠. 그런데 그런 우리 동네에도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장간첩 김신조가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내려온 때였어요.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총소리가 사방에서 들렸고, 헬기로 대포를 실어 나르는 모습도 보였어요. 초등학교 때였는데 정말 무서웠지요.”
그 후 성북동은 또 50년 가까이 조용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카페, 문화 공간, 음식점 등이 복잡한 삼청동 대신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고 한양도성길이 개방되면서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지도를 들고 기웃거리는 일본인 관광객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재개발사업도 마을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재개발 여파로 외지인이 들어오며 주민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요.
문화 유적지 옆에 아파트를 세울 수 없다는 주민들과 아파트를 지어 돈을 벌려는 외지인들이 팽팽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죠.”

이런 바람에 삼청동이나 북촌처럼 동네가 휘청거리지 않을까 우려한 사람들이 마을 지키기에 나섰다.
최성수 시인 같은 마을 토박이들, 그리고 신입 주민이지만 애착은 토박이 못지않은 카페 ‘티티카카’ 주인 김기민 씨 같은 젊은 사람들이다.
최성수 시인은 성북동을 사랑하는 주민 모임 ‘성북동천’ 멤버들과 함께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라는 동네 잡지를 만드는데, 성북동의 트렌디한 변화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람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냈다.
김기민 씨는 독거 생활자의 식사 모임 ‘성북동 부엌’을 만들어 매주 목요일 포틀럭 파티 형식으로 모임을 한다.
식사에 소홀하기 쉬운 독거 생활자의 건강한 밥상을 성북동에서 차려보자는 취지다.

성북창작센터 입주 작가 최영환 씨는 9개월 동안 자전거 방송국을 끌고 다니며 주민들을 인터뷰해 ‘동네스토리닷컴’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영상을 중계하기도 했다.
동네 주민과 함께 공동체 삶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낸것이다.
최성수 시인과 김기민 씨에게 성북동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했더니 “조용한 사람들이 가만히 사는 동네”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뿌리 깊은 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성북동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보탠다면 성북동은 앞으로도 이 모습 이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중세 시대 모습을 간직한 채 몇백 년을 사는 마을들처럼 말이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일러스트 문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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