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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조선은행(현 한국은행)모습

기획 · 아름다운 시절 ④
국민 경제와 함께해온
한국은행
2016.05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를 소개합니다.
서울 시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대화해보세요.

1968년에 사용한 10원과 500원 화폐.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60131



일제강점기 은행에서 사적 제280호가 되기까지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시절’ 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한국은행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자세히 해본 적이 없어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군요. 어쩌다 제가 등장하게 됐는지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이 자리를 비롯해 사람들이 저를 보면 떠올리는 ‘어렵다’는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00여 년의 삶을 서울 시민과 함께했지만 사실 제가 어떻게 태어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는 이가 많기 때문이죠. 저의 전신은 일제강점기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1905년에 세운, 일본 제일(第一)은행 경성(京城) 지점이었습니다. 일본은 몇 해가 지난 1909년 한국은행을 설립해 경성 지점의 업무를 인계했고, 저는 이 한국은행 건물로 사용할 예정으로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11년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바뀌면서 1912년 제가 완공된 후에는 조선은행 본점으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설계를 맡은 이는 메이지 시대 신(新)건축의 권위자라 여겨지던 다쓰노 긴고였는데, 그는 화려한 돔 지붕이 특징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저를 탄생시켰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가 있죠. 바로 구(舊) 서울역사입니다. 아무튼 저는 유럽의 어느 성처럼 생기기도 했고, 160평 크기에 1,6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어 제가 태어난 당시에는 매우 큰 건물에 속했습니다. 이때는 일제 침략이 무엇인지 모르고 단지 화려하고 위엄 있는 제 모습이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조선은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이 서울에서 제일가는 은행으로 여기니 자신감이 넘치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건물 중 하나인데 말이죠. 아무튼 태어난 시기나 목적 때문에 저는 1981년 9월 25일에 사적 제280호로 지정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치기 어린 지난날의 모습을 반성하고자 저는 더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살아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손상된 한국은행을 재건하는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CET0030745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중심

1945년 광복이 된 이후에도 잠시 조선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1950년 ‘한국은행법’에 의해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설치되면서 저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한국은행 본점이 되었습니다.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을 위한 은행이 된 것이죠. 한데 이 기쁨도 잠시, 창립 2주 뒤인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저는 폭격을 맞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 현상을 수습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온 국민이 살기 위해 다시 일어서야 했기 때문이죠. 그 후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된 1960년대에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면서도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또 1970년대 세계경제 불황에 맞서 대내외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앞장섰고, 1980년대 후반에는 경제 부흥과 아울러 중소기업을 지원해 국가 경제가 골고루 발전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998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자 국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출처 연합뉴스



국가 경제를 위한 중앙은행

아직까지도 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은행과 정부의 은행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예금을 받지는 않으나, 여러분이 돈을 맡기는 은행과 세금을 내는 정부에 돈을 빌려주거나 예금을 받기도 하니 어찌 보면 여러분의 경제생활을 위해 제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반면 나라의 중앙은행이고 화폐를 발행하므로 돈이 가장 많은 은행이라 여겨져 제 인생에 어려움이란 없는 것같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97년에 발생한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긴급 자금을 빌린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모두가 성장만을 바라보고 달려나가던 때라 부채가 쌓이는데도 제동을 걸지 못했고, 이 때문에 많은 기업과 가계가 파산하며 고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황 속에서도 ‘금 모으기 운동’ 등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노력 덕에 약 4년 만에 빌린 자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해낸 것은 저의 자랑이며, 제가 여러분에게 평생 갚아야 할 고마움이기도 합니다.


       
제 앞에 시원한 분수대를 만들어준 것, 한국전쟁 때 생긴 상처를 모두 치료해준 점,
최근에는 저를 화폐박물관으로 단장시켜 여러분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해준 것도요. 노후한 저와‘별관’친구들을 새로이 꾸며준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제가 여러분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글 김승희 자료 제공 국가기록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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