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5

특집 · 서울 2,000년 역사 도시

전문가 칼럼

2,000년 역사 도시 서울, 그리고 다시 200년 뒤

2016.12

특집 2000년 역사 도시 서울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던 1960년대,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좋은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의 생산지였다. 모든 새로운 소식과 새로 나온 물건은 서울에서 왔다. 좋은 물건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것, ‘뉴’와 ‘현대’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빈티지가 유행하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신제품’이 ‘중고품’보다 월등히 나은 선택이다. 서울은 현대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경제개발이 이루어진 1960년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인구의 60%가 넘는 사람이 서울 또는 그 언저리인 수도권으로 대거 이주의 물결을 이루어 정착해갔다. 이렇게 새로 자리 잡은 도시 서울은 기회의 땅이었다. 많은 사람이 시골을 떠나 서울에 와서 사회적 상승 이동을 실현했다.
급속한 팽창과 발전의 깃발만 들고 달려온 서울의 인구는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정점을 찍었다. 이후 서울 인구는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한 반면 외곽의 수도권 인구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와 경제의 팽창 속도에 한계를 느낀 서울은 1994년 처음으로 하나의 역사를 지닌 도시로서 서울을 인식하는 ‘프레임’을 세우기 시작했다. 서울에 ‘역사 도시’의 개념을 세우기 위해 많은 일을 시도했다. 그 핵심은 ‘서울정도 600년’이라는 이름의 사업들이었다. 그해를 맞아 수많은 집필진과 자료를 집대성해 <서울 600년사>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것은 새로운 가치를 획득했고, 북촌 한옥지구에 대한 보존 정책도 형식적 차원을 넘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94년의 서울 정도 600년 사업은 자기 상실의 위기의식 속에서 역사성과 정체성을 돌아볼 필요를 절실히 느낀 자각의 시작과 같았다. 이제 우리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수도로 출발한 600년 전 신행정 수도 한성의 역사를 넘어 2,000년 전 백제의 도읍지인 위례성이 당시의 기준에서 상당히 큰 도시를 이루었을 가능성을 유적에서 발견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그 대표적 물증이다. 1925년 홍수 때 풍납토성의 서벽이 유실된 채로 발굴된 이래 1960년대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는 백제 건국 초기의 철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었고, 이후 1997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다시 대규모 유물이 발굴되어 성의 규모가 엄청났을 가능성을 입증했다. 풍납토성 하나만 해도 둘레 길이가 4km에 달하는 큰 규모였으며, 당시 백제가 이미 상당한 규모의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수립한 증거로 추정한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서울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한 600년 역사뿐 아니라 한강 유역으로 영역을 넓힐 경우 2,000년 전으로 도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유서 깊은 도시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도시의 역사성이 갖는 가치를 제대로 짚어보기 위해서는 오히려 200년 후의 서울을 묻고 싶다. 200년 후의 서울은 어떤 곳일까? 아름다운 꿈의 도시? 한반도는 통일되어 있을까?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국제적 이주민을 많이 받아들여 이제 단일민족의 도시가 아닌 글로벌 다문화의 역동적 도시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그 모든 위기 앞에서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환골탈태를 거듭하는 더욱 생명력 있는 도시가 되어 있을까? 그것은 당신의 손에, 나의 손에, 우리 손에 달렸다. 내가 이 도시의 뿌리 깊은 위기들을 그저 방관하듯 지나치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끌어안으며 씨름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2,000년 역사 도시 서울이 나에게 던지는 진정한 도전이다.

 

송도영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녔다. 프랑스에서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이민과 도시화 현상을 공부했고, 귀국 후 공간과 문화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서울의 공간과 문화를 연구한 책들을 썼고, 이주와 다문화, 도시공간 현상을 연결시켜 공부하고 있다.

 

글 송도영 교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관련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