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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나의 서울

골목에서 마주하는 비밀 정원
2020.03

추억에 기억을 더하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예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나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를 찾아 동네 마실 다니듯 서울 답사를 시작한 게 벌써 30여 년 전이다. 조경설계를 하면서 내가 다뤄야 하는 도시 공간을 좀 더 알아야 했기에 서울 도시 공간 답사는 꼭 필요하기도 했다. 오래 살았으면서도 전에는 모르던 서울을 답사를 다니며 알게 되었고, 이제까지 무심하게 생각하고 보았던 부분도 객관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유럽과는 다른 우리만의 독특한 도시와 가로(街路) 풍경에 매료되어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없어져가는 골목길과 옛 모습에 집중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조경가의 눈으로 특별하게 도시를 보기 시작하면서 녹색 공간, 그중에서도 골목길의 숨은 정원에 관심을 가지고 계단, 지붕과 옥상, 버려진 땅 등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우리만의 특색 있고 매력적인 정원을 답사하며 기록했다. 이미 존재하지만 버려진 것처럼, 또는 숨겨진 것처럼 찾아야 하는 나름 보석 같은 ‘도시의 비밀 공간’인 소시민의 정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니면 다닐수록, 찾으면 찾을수록 골목길에 놓여 있는 화분 한두 개부터 옥상 전체까지 크고 작은 비밀 정원이 서울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들은 다양한 식물과 특정 장소에 어울리는 나름의 공간구성 등에서 볼 때 모두 우리만의 독특하고 자랑할 만한 ‘조경가 없는 진짜 조경 공간’이었다 .

나는야 정원 탐험가

숨어 있는 비밀 정원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런 정원은 일부러 멀리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골목길 어디에선가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다. 흔하디흔한 장미나 철쭉, 매발톱, 나리는 물론이고 희귀종이나 보호종으로 깊은 산 또는 식물원에서나 찾을 수 있는 미선나무, 털개회나무, 큰꽃으아리, 현호색, 족두리, 두메양귀비, 새우난, 깽깽이풀까지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사라진 것 같은 정원은 식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이름 없는 소시민 동산바치(정원사)들에 의해 도시 구석구석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변두리 재개발을 앞둔 소위 불량 주거지역의 골목길, 옥상, 지붕 위 등에서 오랫동안 정성을 듬뿍 쏟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가까운 시일 내에 없어질 운명의 소외되고 낙후한 지역일수록 아름답고 오래된 미래의 정원이 많이 존재하는 건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에 따라 하찮고 볼품없을 수 있지만 지나가며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남아 감동을 주는, 아직 찾지 못하고 보지 못한 소박한 비밀 정원이 서울에는 너무도 많다. 서울은 거의 모두가 습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삭막한 콘크리트의 회색빛 도시만은 아니다. 적어도 골목길 곳곳에 비밀 정원이 존재하는 이유만으로도. 서울은 구경하면 할수록 다양하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만화경과 같은 도시다.

비밀 정원에 찾아온 봄

서울의 비밀 정원을 구경 다닌 지난 시간도, 앞으로 구경 다닐 시간도 나에게는 화양연화(花樣年華)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따스한 봄날 자기만의 비밀 정원을 찾아 어머니 품 같은 자연에서 작은 위로를 얻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동네 동산바치들의 내면의 소박함과 우아함을 느끼고 함께할 수 있어 서울 비밀 정원 답사 길은 늘 행복했다.

가장 한국적인 게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음은 최근 모든 분야의 한류열풍에서 확인되고 있다. 스티로폼 박스와 버려진 고무 ‘함지박’ 화분이 이처럼 효율적으로 그리고 조형적으로 재활용되는 서울 골목길 정원 사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본질을 따르고, 대자연의 기본과 원칙에 오래 순응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박한 우리 정원의 참모습이 아닐까 한다. 가장 한국적이고 서울스러운 골목길 비밀 정원을 ‘서울정원박람회’를 통해 동네 동산바치가 만든 작가 정원으로 세계에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 왔다. 봄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 없이 자연의 선물로 매년 찾아오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봄은 아니다. 이 봄날, 비밀 정원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자그마한 화분 하나라도 나만의 비밀 정원을 만들어 자신만의 봄을 즐겨보면 어떨까?

김인수

김인수
<서울 골목길 비밀정원:동네 동산바치들이 만든 소박한 정원 이야기>, <서울 풍경>, <세계의 정원> 등의 저자이자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를 운영하는 건축·조경 전문가. 도시를 기록·보존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직접 사진과 글로 기록을 하며 조경과 정원 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글·사진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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