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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 트렌드

용도는 쓰기 나름, 카멜레존
2020.02

시간과 공간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서로 만나고
합쳐진 카멜레온 공간들, 그 매혹의 사차원 세계로 들어가봤다.

공간의 2단·3단 변신을 시도하는 카멜레존

용산구 경리단길에는 낮과 밤에 전혀 다른 야누스의 모습을 연출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플라워 숍이자 칵테일 바 ‘플라워 진’이다. 플라워 숍과 칵테일 바라는 ‘신묘’한 조합은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처음 이곳에 플라워 숍을 열 때부터 이런 형태의 복합 매장을 구상했 어요.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진(Gin)에 장미꽃 추출물이 들어간다는 점에 착안해 꽃과 칵테일을 결합한 거죠.”
2014년부터 6년째 매장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서현 대표는 말한다. 플라워 진은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는 플라워 숍으로, 오후 8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장미를 비롯해 라눙쿨루스와 히아신스 향기가 감도는 칵테일 바로 백팔십도 변신한다. 달라진 가게의 분위기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용도와 분위기를 바꿔 2단·3단 변신을 시도하는 카멜레존이 늘고 있다. 시간대별로 고객 선호도를 파악한 전략을 구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한 공간에 전혀 다른 두 업종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카멜레존도 있다.

낮에는 플라워 숍, 밤에는 칵테일 바로 변신하는 플라워 진.

카멜레존(Chamelezone)

카멜레온(Chameleon)과 존(Zone)의 합성어로, 상황에 맞춰 용도를 바꾸는 현대의 소비 공간을 카멜레온에 빗댄 말.

다용도 공간에서 다양한 소통과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

토요일 오전, 두 자녀와 함께 을지로에 있는 ‘아크앤북’을 찾은 장연주 씨는 서점의 진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갈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곳은 서점과 카페, 레스토랑, 쇼핑 공간 및 다양한 문화공간까지 갖추고 있어 굳이 다른 곳을 찾지 않아도 되니 아주 편리해요.”
세탁하는 동안 카페를 즐길 수 있는 ‘론드리 프로젝트’를 오픈한 이현덕 대표는 “저 또한 저렴한 빨래방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있었어요. 빨래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길었고요.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옷의 때와 함께 마음의 때도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카페와 술집, 작은 책방과 문학 토론의 장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용산구 한남동의 ‘초능력 카페’, 일명 ‘다시서점’도 기존처럼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기능을 담았을 때 생기는 ‘단절’에 주목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나눠 마시는 이들은 공간에 놓인 시집을 읽거나 문학 토론을 벌이며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잇는다. 다양한 용도가 혼재된 카멜레존이 제공하는 편리함 이면에는 공간 고유의 기능인 ‘소통’과 ‘힐링’이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서점의 진화를 보여주는 아크앤북.

운영자와 사용자의 니즈가 만난 접점, 카멜레존

“창업하고 싶은데 솔직히 비싼 임대료를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공간을 공유할 사업 파트너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마포구 상수동에서 선술집으로 쓸 만한 공간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을 찾은 김민석 씨는 말한다. 그의 경우처럼 점포 공유에 관심을 가지는 창업 희망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아직 생소한 영업 형태인 공유 매장을 구하는 창업자는 시간대와 업종에 맞춰 매물과 창업자를 연결해주는 업체를 통해 매장을 얻는 경우가 많다. 원래 영업을 하던 가게 업주가 새 임차인과 ‘인센티브 매니저’ 계약을 체결해 틈새 창업을 맡기고 대신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지급받는 식이다. 점포 공유 연결 업체 마이샵온샵의 정병철 대표는 “요즘에는 한 달에 약 40건의 점포 공유 창업 상담 문의가 들어옵니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부터 장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력단절 여성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요”라고 말한다.카멜레존의 출현은 자영업자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고자 시간대를 정해 가게를 나눠 쓰는 점포 공유 전략으로 틈새 창업에 나서면서 부쩍 두드러졌다. 한 공간을 여러 가게가 나눠 쓰는 ‘숍인숍’ 방식에서 나아가 영업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으로 임대료 상승에 대응하게 된 것이 카멜레존 붐의 배경이라는 인식이다.

론드리 프로젝트는 세탁하는 동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카페 공간을 갖추었다.

불확실성이라는 정체성을 담은 우리 시대의 공간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에 큰 위기가 찾아왔어요. 새로운 콘셉트의 새로운 공간이 요구되고,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출현한 것이 카멜레존이죠.” 다시서점의 토론방 운영자이기도 한 시인 최소연 씨는 말한다. 오프라인 공간의 변화라 할 수 있는 ‘한 지붕 세 간판’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홍대 앞과 건대 입구, 대학로 등 대체로 운영자와 이용자가 젊은 대학가다. 을지로나 종로, 강남역 등 회사 밀집 지역에서도 낮에는 카페지만 저녁에는 식당으로 변신하거나, 평범한 식당에서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술집으로 낮밤을 바꿔가며 변신하는 카멜레존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업주 입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이 극대화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함과 다양한 만족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기존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소비층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공간의 용도를 더 이상 한 가지로 한정 짓지 않게 되었다는 것, 다양한 정체성을 조화롭게 아우른 공간을 ‘여기 뭐하는 곳이지?’라고 묻지 않고 신개념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 거기에 카멜레존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이현덕 론드리 프로젝트 대표의 이야기처럼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정된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극복한 카멜레존은 이 시대의 정체성을 그 어떤 곳보다 뚜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구매한 책을 바로 읽을 수 있는 공간부터 카페와 식당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아크앤북.

카멜레존에서 만난 사람들

변호성(32세)

“카페와 서점, 카페와 술집을 겸한 카멜레존을 주로 이용하고 있어요.
굳이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되어 편하고, 그만큼 비용도 절약할 수 있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민상(39세)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는 편인데요,
세탁하는 동안 아무 일 없이 기다리는 대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서울시 카멜레존

서울혁신파크

겉보기엔 일반 공공건물과 다를 게 없지만, 그 안에는 특별함이있다. 버려진 장난감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자원과 환경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재생동’, 스타트업 기업의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업 방향을 구상하는 오픈 스페이스 ‘상상동’을 비롯해 시민을 위한 책방, 목공 가구와 제품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는 목공 작업장, 음식을 맛보고 배우는 체험장까지 건물마다 다양한 공간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업과 연구 공간, 배움터 등 32개 동의 건물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시민의 꿈과 열정을 키워주는 공간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야말로 서울에서 가장 매혹적인 카멜레존이 아닐까.

  • 주소 은평구 통일로 684
  • 영업시간 월~토요일 오전 6시~밤 12시
  • 전화 02-389-7512
  • 홈페이지 innovationpark.kr

문화비축기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석유 비축 기지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며 몰라보게 변신한 문화비축기지. 해체된 철판을 재활용해 다시 조립한 신축 건축물은 강의실, 회의실, 카페테리아 등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을 위한 전시·이벤트·세미나 등이 다양하게 열리며, 주변에는 매봉산과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을 아우르는 생태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카페도 갖추고 있다.

임지영 사진 인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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