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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미래유산

미술의 대중화를 이끈 서울의 화랑
2020.02

한국 미술 문화 발전의 초석을 닦은 4개 화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새롭게 선정됐다.

오늘날 서울은 시민 누구나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전시회를 찾아 쉽게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문화도시다. 하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시민이 일상에서 미술을 접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서울에 시립미술관이 들어선 것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국공립 미술 시설조차 없던 시절,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미술 문화를 이끌어온 것은 바로 ‘화랑’이었다. 1970년대에 산업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상업 화랑은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좋은 작가를 육성하고 미술 관련 국제 교류에도 힘쓰는 등 공공의 역할을 대신해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세대 화랑은 한국화랑협회를 결성해 미술 시장의 올바른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미술계를 발전시키고자 뜻과 힘을 모았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를 개최하는 등 미술 문화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미술 시장을 함께 일궈나갔다.
서울시는 이처럼 시민에게 미술이 낯설었던 시절부터 전시를 통해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화랑들 중 4개 화랑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각각 고유색을 지닌 예화랑, 샘터화랑, 조선화랑, 통인화랑이 그 주인공이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동시대 작가 및 미술 애호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해가고 있는 화랑들을 찾아 개관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다양한 한국 고미술품을 전시한 통인화랑

다양한 한국 고미술품을 전시한 통인화랑.

서울미래유산

서울미래유산

서울시는 미래 세대에 전할 가치가 있는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발굴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보전을 지원해오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은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조사와 심의를 거쳐 선정한다.

비하인드 컷

1920년대 통인화랑의 근간인 통인가게 앞거리

1920년대 통인화랑의 근간인 통인가게 앞거리.

1978년 인사동에 처음 둥지를 튼 예화랑

1978년 인사동에 처음 둥지를 튼 예화랑.

1979년 조선화랑에서 열린 김훈 전시회

1979년 조선화랑에서 열린 김훈 전시회.

1986년 샘터화랑에서 열린 손상기 개인전

1986년 샘터화랑에서 열린 손상기 개인전.

예화랑

강남에 예술을 꽃피우다

1978년 인사동에 처음 개관해 1982년 강남으로 이전한 후 강남 지역 미술 문화를 선도해온 화랑이다. 개관 기념전으로 <근대명가서화전>을 열어 한국 최초의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강남으로 이전한 후에는 신사미술제를 주도하고 신사문화축제, 강남문화 축제 등을 통해 대중과 함께 예술을 호흡했다. 그 맥락은 화랑미술제와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꾸준한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2세대 김방은 관장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예화랑을 이끌고 있다. “옛 서화에 뿌리를 둔 예화랑의 역사성을 유지하면서 전시의 기획적 측면에 더욱 중점을 두고 갤러리 밖에서의 다양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어요.” 기업과 예술을 연결해 각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진행하는 컬래버레이션이 그 대표적 예다. 공공장소에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도 지속해오고 있다. 그는 백남준 타계 10주년인 2016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대규모 특별전 <백남준 쇼>를 개최하기도 했다.

위치 강남구 압구정로12길 18
문의 02-542-5543

예술과 세상을 연결하는 김방은 관장

“예술 없이 살 수 없는 예술가들에게 갤러리가
‘집’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샘터화랑

시대정신 담은 예술을 지키다

1978년에 설립된 샘터화랑은 1980년대의 많은 민중미술관련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며 민중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화랑이다. 특히 1984년 손상기 초대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의 전속 갤러리로서 많은 작품을 소개해왔다. 손상기 작가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공작도시’ 시리즈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주로 그려온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다. 개관 당시부터 샘터화랑을 이끌어온 엄중구 관장은 손상기의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의 작품 활동을 전폭 지원했다. 또한 엄 관장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정립한다는 사명감으로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이강소, 전혁림 등 진정성 있는 거장들의 전시를 개최해왔다. 동시에 유망한 국내외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도 힘써왔다. 파리 FIAC, 아트 마이애미, 아트 토론토, 뉴욕 아시안 컨템퍼러리 아트페어(ACAF) 등 주요 국제 아트페어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며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위치 서초구 고무래로8길 4
문의 02-514-5122

통인화랑

선대의 미술품을 계승하다

1974년 개관해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인사동의 화랑이다. 1924년 ‘통인가구점’이라는 골동품 가게로 시작해 이후 ‘통인가게’로 상호를 바꾸었고, 1973년 지금의 7층 규모 사옥을 지어 당시 인사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1970~1980년대 통인가게는 골동품 애호가와 다양한 문화예술인의 사랑방이었다. 현재의 통인화랑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복합 공간이다. 1층은 통인가게, 지하 1층과 5층은 기획전시장, 4층은 통인의 근간인 각종 고미술품이 진열돼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박서보를 발굴한 화랑인 만큼 지금의 통인화랑을 이끄는 이계선 관장 역시 미술사에 기록될 좋은 작가를 찾아 육성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2002년부터 6년간 뉴욕 통인 갤러리를 통해 한국 현대 공예 작가 60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통인화랑은 한국의 미술품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소개하고자 계간지 <통인미술>을 발행한다. 사람들이 미술에 조금 더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1970년대부터 무료 음악회도 진행해오고 있다.

위치 종로구 인사동길 32 통인빌딩
문의 02-733-4867

‘흙 속의 진주’를 찾는 이계선 관장

“선대의 미술품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창조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 통인이 할 일이라 여깁니다. 돈을 버는 전시보다는
역사에 남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습니다.”

조선화랑

미술 시장의 역사와 함께한 권상능 관장

“1970~1980년대에는 사람들이 전시장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낯설어하고 어려워했죠.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다행이지만,
미술계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술시장의 발판을 닦다

내년에 개관 50주년을 맞는 조선화랑은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대표적 1세대 화랑 중 하나다. 1971년 조선호텔 안에 처음 문을 열었고, 1976년에는 현대화랑·명동화랑 등 12개 화랑과 함께 한국화랑협회를 결성했다. 지금까지 협회장을 총 세 번 역임한 권상능 관장은 손수 한국 미술 시장의 제도적 기초를 확립한 주역이다. 한국 최초의 미술품 감정 기구를 만들고, 청담미술제를 주관해 지역 미술제 정착에도 기여했다.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한 집 한 그림 걸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는 일찍이 한국 작가들의 국제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1983년 한불미술협회를 창립하고 <라르 비방 파리(L’Art Vivant Paris)> 서울전을 개최했으며, 1992년에는 현대미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카셀 도큐멘타>에 한국 국적자 중 최초로 참가한 육근병 작가를 후원했다. 1996년에는 14개 화랑을 이끌고 매년 10월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전시회(FIAC)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는 코엑스로 전시 공간을 옮겨 공공 미술에도 기여해왔다. 현재 는 잠시 전시장 운영을 중단하고 새 터전을 모색 중이다.

문의 02-6000-5880

전하영 사진 한상무 사진 제공 각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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