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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을 달려요

기획 · 나의 서울

저는 서울을 달려요
2019.11

바다

나는 러너다. 서울을 달린다. 아침에도 달리고 점심에도 달리고 저녁에도 달린다. 시간이 나면 늘 달린다. 집 앞 중랑천을 따라 달리고, 남산의 언덕을 달리고, 연남동과 이태원의 좁은 골목을 달린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 잠수교를 건넌다. 나는 나에게 두 발이 있으며, 달릴 의지가 있다는 점에 늘 감사한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연스러운 일을 지속할 수 있어서 기쁘다.

달릴 때 내 몸에 묻은 안 좋은 감정이 바람에 씻겨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슬프게 했던 일들은 저 뒤에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것들에서 벗어난다. 가끔은 거의 자유의 상태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호흡도 일정하고, 다리도 아프지 않고, 강물의 흐름 혹은 바람의 자세에 따라 흩어지거나 나아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어떤 것들을 피해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언제나 내가 정면에서 마주하고 싶은 사람, 그러나 마주 볼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 사람에게. 그건 바로 나다. 달 려서 내 안의 깊은 곳으로 간다. 깊이, 더 깊이 들어갈수록 눈이 아니라 몸의 감각과 감정으로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아, 이 상태와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내 안에 바다가 있고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깊이, 더 깊이 내려가며 풍요로움을 느낀다고 할까. 물은 따뜻하고 나는 물고기처럼 숨을 쉰다. 그때 내 안은 평화와 존경의 마음으 로 가득 찬다.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달리기는 다리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는 데, 나는 그 바다 안에서 비로소 그 말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달리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묻는 사람에 게 나는 “천천히 달리면 괜찮다”고 말한다. 그들은 ‘바다’를 모르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면서 나는 서울과 함께 변했고, 서울도 나와 함께 변했다. 그러니 초가을 저녁 잠수교를 달리며 바라보는 한강의 불빛들은 내 유년을 지나온 것이다.

풍경

내가 달릴 때 서울의 풍경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나로 인해 완성된 무엇 같다. 풍경이 저 혼자 저런 모습을 갖게 됐을 리 없다. 내가 바로 서울의 풍경이니까. 서울을 이루는 수많은 원소 중에 나도 포함돼 있으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면서 나는 서울과 함께 변했고, 서울도 나와 함께 변했다. 그러니 초가을 저녁 잠수교를 달리며 바라보는 한강의 불빛들은 내 유년을 지나온 것이다. 남산에서 보이는 고층 건물의 오래된 미소를 나는 하나하나 알아챌 수 있다. 오랫동안 연결돼 있었으니까.

가끔은 그런 풍경들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종종 정말 그렇게 해왔다는 생각도 든다. 은유 가 아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다 나의 바다에 꺼내놓기도 한다. 이것 역시 은유가 아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사람이 나에게 “달리기가 왜 좋아? 왜 굳이 그렇게 달려?”라고 묻는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비밀이어서 말할수 없다. 다만 나는 외로운 사람이고, 가끔 혼자 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사람을 만나면 조금, 아주 조금 외로운 감정이 사라지지만 그건 아주 잠시다. 그것이 궁극적인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나와 연결돼 있다고 느낄 때, 나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 지금의 나를 이룬 것들을 확인할 때, 역설적으로 더 큰 세상과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거듭, 나는 어떤 것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이유

내 10km의 기록은 47분, 하프코스 기록은 1시간 42분대, 풀코스 기록은 4시간 초반대다. 꽤 뛰는 편이지만, 아주 빠른 건 아니다. 나는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빨리 달리려면 빨리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도 그런 연습을 하던 때가 있었고, 매우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다쳐서 최근까지 아홉 달 가까이 쉬어야 했다. 나는 이제 빨리 달리고 싶지 않다. 빨리 달린다는 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다. 나는 그게, 적어도 나에게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먼 곳까지 가고 싶고 더 오래, 더 깊이 달리고 싶다. 이제 나는 결승선을 생각하며 달리지 않는다.

나는 달리다가 가끔 운다. 눈물의 의미를 알 때도 있지만 모를 때도 있다. 문득 누군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왜 보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애써 잊은 기억이 선명해지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기도 한다. 내 안의 작 은 감정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것이다. 그중 어떤 감정은 한 번쯤 돌봐야 하는 것일 텐데, 나에게 용기가 있을까?

나에게 러닝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말한 것 같다. 며칠 후에 외국의 유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42.195km를 뛴 다. 오랫동안 훈련을 못 했으니 이번 대회는 포기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지 못하는 건… 내가 이상해서겠지. 대한민국 서울의 평범한 러너가 다른 나라 도시를 달리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가? 물론 나에게. 낯선 도시의 풍경 속을 달릴 때, 아마도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서울의 풍경일 것이다. 그 그리움의 마음이 소중해서 기어코 가겠다는 건가?

이우성

이우성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며 등단한 시인이다.
‘미남컴퍼니’라는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16p’라는 콘텐츠 브랜드를 론칭했다. 러닝 크루 ‘ㄷㄹㅈㅇ’과 ‘N1RC’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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