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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기획 · 나의 서울

서울, 시간 속을 걷기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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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간 속을 걷기



선유도공원

선유도공원

민주인권기념관

민주인권기념관

윤동주문학관.

윤동주문학관

간만에 서울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서울로7017을 걸었다. 적당한 봄볕에 바람까지 산들거리니 걷는 맛이 꽤 좋았다. 좋은 도시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걷는 맛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영화의 무대는 파리, 9년 만에 우연히 만난 남녀가 도시를 산책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 속 공중 보행로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의 일상적 풍경은 꽤 인상적이었다. 100년 넘은 폐선 고가철도를 나무와 풀이 우거진 멋진 산책로로 바꿔 쓰는 파리 시민의 일상. 과연 예술의 도시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고가도로 보행로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난 막연히 영화 속 그 산책로를 떠올렸다. 비슷한 한국 영화에서 서울의 빌딩 숲 사이를 거닐며 한가로이 데이트하는 연인의 풍경을 상상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과거의 시간을 없애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덧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덧댄 것이 아물고 새살이 돋으면 지금보다는 한결 더 편안한 풍경이 될 것이다. 내게 서울은 늘 알 듯 모를 듯한 도시다. 차를 타고 휙휙 다니다 보면 다 뻔한 것 같은데, 천천히 살펴보면 새로운 것이 여전히 많다. 걸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도시가 있는데 서울이 그렇다. 아마 60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도시라 그럴 것이다. 쌓인 시간도 많고, 시간 사이사이 남겨진 이야기도 많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연작 ‘한양진경’을 아시는지. ‘한양진경’의 여러 그림 중 ‘선유봉’(영조 18년, 1742년)이 있다.선유도의 원래 이름은 선유봉. 정선의 그림을 통해 본 선 유봉은 작은 봉우리다. 1925년 대홍수가 나자 일제는 홍수 방지 사업을 위해 선유봉을 채석장으로 사용했다. 이후 1960년대에는 한강 개발로 봉우리가 잘려 나간 선유봉이 섬으로 바뀌었다. 1978년 부족한 수도 공급을 위해 선유도에 정수장을 지었다. 현재의 선유도공원은 정수장의 구조물을 남겨 생태 공원을 덧입힌 것이다. 22년간 운영되다가 폐쇄된 정수장을 재활용해 공원으로 만든 것이 2002년, 이 후 17년이 흐르다 보니 이젠 제법 수풀이 우거진 숲 냄새진득한 공원이 되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뼈대에 수생식물 이 조화를 이룬 파격은 압축된 수십 년의 시간과 훨씬 더이전의 역사까지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공원을 걸으며 겸재 정선의 그림을 떠올리고,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진 봉우리를 상상하고, 고도성장기의 정수장을 추억해본다. 장소는 하나인데 머물고 있는 시간은 짧지 않아 쌓인 이야기가 적잖이 깊다. 생각하며 걷는 산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장소에 남겨진 시간이 모두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일례로 1호선 남영역 바로 옆 깔끔한 검은 벽돌 건물, 일명 남영동 대공분실은 아픈 시간을 담고 있다. 공포정치가 일상이었던 시절 치안본부 대공 수사관들이 쓰던 건물이었는데, 잠깐 경찰청인권보호센터로 쓰이다가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이 되었다. 인권을 압살하던 공간이 인권을 지키는 공간이 된 것이니 도시의 시간이란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관 조형의 비례, 색감, 감각적 창호 배열은 실력자의 솜씨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으로, 1960~1970년대 국내 건축을 대표하던 건축가다. 안팎으로 수준 높게 설계한 집의 구성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훌륭하게 설계한 공간에서 자행된 끔찍한 사건의 기억이 일종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청운동 언덕에 소박하게 놓인 작은 집은 잔잔한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한 예술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집의 이름은 윤동주문학관. 오랜 시간 버려졌던 동네의 수도 가압장을 시적 감수성이 충만한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마치 시인이 파놓은 깊은 우물 같다는 느낌이랄까. 좋은 시를 읽을 때 느끼는 희열을 건물로도 전달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후쿠오카의 독방 내음이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공간 내부의 더럽고 낡은 질감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시인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인을 대신해 삶이 무 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방문자에게 묻는다. 눈 오거나 비오는 날 그곳에 가면 완벽한 적막을 만날 수 있다 .

서울 이곳저곳을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다 보면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상상하기 힘든 사건과 사연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유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에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래된 이발소, 다방, 여관, 해장국집, 유서 깊은 책방과 골목 등 서울이라는 도시가 미래 세대에 넘겨주고 싶은 모든 흔적이 서울의 유산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대상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내적으로 닮는 것이다”라고. 좋은 도시는 결국 닮고 싶은 대상과 장소를 많이 갖고 있는 도시가 아닐까. 보이는 것의 집착에서 벗어나 사라지는 것,보이지 않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때 도시는 좀 더 풍요로워 질 것을 믿는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간의 겹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산책자들의 도시, 두꺼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음미할 수 있는 서울을 늘 기대한다.

최준석

최준석
건축가. 직접 지은 자택 1층에서 건축사 사무소 나우랩(Naau Lab)을 운영하며
꿈도 많고 말도 많은 이들의 집과 공간을 설계 중이다. <서울 건축 만담>, <건축이 건네는 말> 등의 책을 펴냈고,
종종 여러 매체를 통해 건축과 도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글·사진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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