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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만드는 평화, 서울시도 함께합니다

남과 북이 만드는 평화, 서울시도 함께합니다>
2018.05

문화

문화 만화

남북 이야기

남과 북이 만드는 평화, 서울시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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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기대가 커진 가운데 앞으로 도시 간 교류도 활발해지기를 기원하며
과거 서울과 평양 간에 개최한 경평축구와 남북한 동물 교류 역사를 돌아본다.


경성과 평양의 대결, 경평축구

1935년 4월 13일 열린 경평전 당시 양팀 선수들과 경평전에 사용한 축구공


“널은 운동장에 빽빽이 드러찬 수 천 관중은 일진일퇴하는 백열된 육박전에 열광되어 우레가튼 박수 소리가 수시로 ‘그라운드’ 일대를 진동하엿더라.”


‘제1회 경성·평양 축구 대항전’은 1929년 10월 경성 원서동에 위치한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조선일보사 주최로 처음 개최했는데, 당시 7,000여 명의 관중을 모은 현장의 열기를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3차전으로 치른 첫 경평전에서 평양이 우승을 차지했다. 서울역사편찬 원이 발간한 <서울의 축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사 운동부 기자 이원용과 경성의 변호사 최정연이 두 도시 축구 단의 라이벌 관계를 이용해 경평전을 개최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2회 대회는 1930년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1회 대회와 동일한 장소인 경성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개최했는데, 이 대회에서부터 한국 축구의 선구적 인물 김용식, 한국 최초의 국제 심판 김화집, 항일 투사로 활동한 채금석 등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3회 대회를 1931년 평양에서 치를 예정으로 광고까지 준비한 상황이었으나, 대중의 집합적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대회 자체를 불온하다고 규정한 일제 때문에 열지 못했다.


이후 1933년 1월에 평양축구단, 5월에 경성축구단이 공식 창단했고, 그해 4월 6일부터 8일까지 평양 기림리 공설운동장(현 김일성경기장)에서 평양군 주최로 3회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경성 선수들이 치른 첫 평양 원정 경기다.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주권적 제약이 있던 시기인데도 2만여 명의 관중이 모일 정도로 경평축구는 많은 인기를 끌었고, 식민지 설움을 쏟아내는 분출구이자 근대도시 시민의 일상적 문 화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9월, 조선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사가 후 원한 경평전이 정동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렸는데, 공식 명칭은 ‘조선체육회·조선체육계사 공동 주최 경평축구전’ 이었다. 또 10월에는 경성군과 평양군이 공동 주최한 ‘제1회 경·평 대항 정기 축구전’이라는 대회명을 붙인 경평전이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이듬해(1934년) 4월에는 경성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실시해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을 적용한 축구 대회로 기록된다.


경평전은 1935년 4월에 열린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직후인 1946년 서울운동장(경성운동장의 새 이름)에서 다시 열렸으나, 이후 1947년에 예정된 경평전이 무기한 중단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1990년 10월 11일에는 평양에서, 10월 23일에는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대 회’가 열렸고, 2002년 9월 5일과 8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02년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으나, 단발성 행사로 끝나 양 도시 간 열린 축구 정기전이던 ‘경평전’의 역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서울대공원과 평양 중앙동물원의 동물 교류

남한의 서울대공원과 북한의 평양 중앙동물원이 동물 교류 를 시작한 것은 1999년 1월 22일이다. 당시 북한의 한국호랑이, 붉은여우, 은여우, 반달가슴곰 등 4종 7수가 서울동물원으로 들어왔다. 2006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동물 교류를 했는데, 그 기간 동안 북한에서 남한으로 들어온 동물은 11종 43수이고, 남한에서 북한으로 보낸 동물은 18종 50수다. 동물 운송은 2001년 3월 3차 시기까지는 해로 선박을, 이후에는 육로 차량을 이용했다.


2차 시기인 1999년 10월 26일에는 남한의 하마, 바라싱거, 라마, 꽃말, 과나코가 북한으로 갔고, 북한의 붉은여우, 삵, 풍산개가 남한으로 왔다. 이후에도 다양한 동물을 상호 기증·교환·구입 등의 방식으로 교류했다.


2001년 3월 21일 3차 시기에 들어온 조선범(북한에서 부르 는 시베리아호랑이 이름) 수컷 라일이는 생을 다하고, 자손 8마리가 현재 서울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2004년 7월 28일 4차 교류 때 평양동물원으로 간 암컷 백호 베라는 출산했다 는 소식도 들려왔다. 2005년 4월 14일 5차 시기에는 반달가 슴곰 8마리가 들어왔는데, 환경부에서 진행하는 반달가슴 곰 복원을 위해 지리산으로 보내졌다. 그 이전인 1999년 1월 과 2001년에 한 쌍씩 들어온 반달가슴곰은 각각 번식해 2 세대인 쓰리와 아라리, 3세대인 아웅이와 다웅이로 이어졌 다. 북한에서 말승냥이라고 부르는 늑대는 총 세 차례에 걸 쳐 5마리가 남한으로 들어왔는데, 현재 자손 네 마리가 서울동물원 늑대사에 있다.


2004년 7월 28일 평양으로 가는 청계와 베라

남북 간 동물 교류는 2006년 12월 29일에 남한의 사자와 북한의 여우를 상호 교환한 이후 중단된 상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멸종 위기에 있는 토종 동물을 보전하기 위한 동물 교류가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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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송영미사진홍하얀

경평축구 자료 출처 <서울의 축구>(서울역사편찬원) 동물 교류 자료 제공서울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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