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문

서울사랑

서울사랑

검색 검색 모바일 메뉴

검색영역
검색
★ 주요키워드
제로페이서울
상생서울
서울풍경
90분서울여행
서울트렌드
취향의발견
동네방네
3·1운동100주년
서울생활정보
청년
50+
입력검색 취소


일본군 ‘위안부’ 역사 새로 쓰는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

인터뷰 · 탐방 · 서울이 만난 사람
일본군 ‘위안부’ 역사 새로 쓰는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
2018.03

아이콘

서울시와 손잡은 서울대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팀이
피해 조사 실태에 적극 나서며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사업팀은 ‘위안부’ 여성의 총살 기록과 최초 영상 자료, 소문을 입증하는 기록까지
수많은 발굴 자료를 통해 진실을 증명하고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서울광장 꿈새김판 앞에 모였다. 왼쪽 네 번째부터 강성현·박정애·전갑생·이정은 교수와 연구팀



1921년 12월 15일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태어난 박영심 할머니는 1938년 3월경, 일제의 ‘처녀 공출’로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무려 8년이나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속에서 하루 30~40명의 일본군을 상대하면서도 간신히 살아남은 할머니는 그 일은 내내 숨기고 살다가 1993년에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한을 풀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2000년에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윈난성 송산 ‘위안부’ 사진 속의 임신한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실체를 또 한번 증명했다.

1 연합군이 찍은 위안부 사진과 박영심 할머니.

연합군이 찍은 조선인 ‘위안부’ 사진. 임신한 여성이 박영심 할머니다.

그리고 17년이 흐른 지난 해 7월,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팀(이하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윈난성 송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위안부’를 촬영한 18초 분량의 흑백 영상을 발굴, 공개하면서 2000년에 소개한 사진과 문서 자료에 명확한 근거를 더했다. 영상에는 7명의 ‘위안부’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중 2명이 2000년에 발표한 4명의 ‘위안부’ 사진 속 여성과 동일 인물이었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발굴한 위안부 영상 화면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발굴한 ‘위안부’ 영상 화면. 1번 사진의 왼쪽 첫 번째·세 번째 여성과 이 사진의 왼쪽 첫 번째·세 번째 여성은 동일 인물로 추정한다.

박영심 할머니는 탈출 과정에서 사산해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사진과 문서 자료는 많았지만, 실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연구팀의 결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영상 발굴 5개월 후에는 남태평양 트럭섬(Chuuk Islands)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발굴했다. 트럭섬으로 끌려갔다고 증언한 고(故) 이복순 할머니로 추정되는 인물 사진과 문서 자료를 찾은 것.

조선인 위안부의 실체를 확인한 트럭섬 사진, 사진 속의 위안부는 고(故) 이복순 할머니로 추정.

조선인인 ‘위안부’의 실체를 확인한 트럭섬 사진, 사진 속의 위안부는 트럭섬으로 끌려갔다고 증언했던 고(故) 이복순 할머니로 추정된다.

트럭섬 자료를 발굴한 박정애 교수(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는 “당시 작성된 제적등본을 추적하고 가족 등 주변인의 확인을 거쳐 이 인물이 이복순 씨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며 “그동안 트럭섬에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를 봤다는 회고는 많았지만 실제 기록은 없었는데 이젠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1990년대만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존이 증거였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자 일본은 증언의 객관성을 의심하며 증거를 대보라는 식으로 회피하고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발굴한 자료들이 더욱 소중하고,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의 도움으로 조사와 연구에 날개를 달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은 2014년 9월 정진성 교수가 서울대 인권센터장으로 부임하면서 결성됐다. ‘위안부’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1년 단위의 연구 용역이 많다 보니 임시 프로젝트 성격이 라 자료 정리와 보관도 산발적이었습니다. 다음 연구자는 같은 일을 또 반복하는 거죠.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정진성 교수님의 노력으로 연구팀이 구성되었습니다.”

이정은 교수(창원대학교 사회학과)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정 타결 이후 여성가족부로부터 연구용역 체결이 갑자기 중단 되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지속적인 연구진행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울시의 지원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자료 발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여성정책담당관에서 연구팀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와 연구팀은 삼일절을 맞아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영상을 최초로 공개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 직전인 1944년 중국 텅충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학살된 후 버려진 모습을 담은 19초 분량의 흑백 영상으로, ‘위안부’ 학살을 분명히 인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연합군 보고 문서도 함께 공개했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은 현재까지 약 250건의 사진과 문서 자료, 1,000여 건의 관련 자료를 발굴·공개했다. 자료 발굴 작업은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격’으로 실로 고된 작업이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한 수많은 필름 릴(reel) 가운데 연관성 있는 수백 통을 추려내고, 한 통 한 통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희미한 흑백영상을 찾아내는데, 영상들은 중구난방으로 짜깁기 된 터라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연구팀은 각자의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며 호흡을 맞추고, 끈기와 열정으로 70년간 잠자고 있던 자료들을 속속들이 발굴해내고 있다. 1991년 당시만 해도 239명이던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는 30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일본 정부‧군의 공문서를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과 태국 등에서 조사‧발굴한 영문 기록 자료는 더욱 중요하다.

‘아픈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로 들어줬으면

“저희가 발굴한 자료가 관심과 분노를 유발하는 단발성 이슈로만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피해에 포인트를 맞춘 자극적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로 여기고 들어주세요. 전쟁이라는 폭력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또 정조 관념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말이지요.”

박정애 교수는 이어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와 ‘위드유’ 운동도 결국 ‘위안부’ 문제와 닿아 있다”며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하도록 발굴 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전쟁터에서는 일본군의 성 노예로, 해방 이후에는 가문의 수치라는 낙인이 찍힌 채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의 자료 조사·발굴·분석은 박제되어가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

손글씨로 참여해요
“내 마음은 지지않아”

서울시 대표 SNS(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 트위터)에서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를 잊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은 지지 않아” 손글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 시민은 물론 한지민, 다니엘 등 많은 연예인도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SNS에서 해시태그 ‘#내마음은지지않아’를 검색하면 시민들의 손글씨를 만나볼 수 있다.

“내 마음은 지지 않아”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로 유일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 청구소송을 낸 고(故) 송신도 할머니가 10년간의 재판에서 패소한 후 웃으며 말한 한마디이다. 서울광장 꿈새김판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손글씨로 참여해요 '내 마음은 지지않아'




서울시 홍보대사가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 영상 바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