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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한양, 불타는 유럽

기획 · 역사 속 평행이론

불타는 한양, 불타는 유럽
2017.06

서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조선의 변화

15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서고 200년. 새로운 수도가 정해지고 198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한양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해 4월, 15만 대군을 태운 일본 전함이 부산 앞바다를 까맣게 물들이며 조선을 침공한 지 불과 17일 만의 일이다. 불길은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뿐 아니라 노비 문서를 보관하는 장예원을 비롯한 관청, 일부 왕족의 집까지 모두 집어삼켰다. 세상에, 어떻게 부산에 발을 디딘 지 고작 17일 만에 일본군이 한양까지 점령했느냐고? 물론 아니다.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었지만 이때는 아직 한양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궁궐과 관청을 집어삼킨 불은 백성이 일으킨 것이다.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한양을 떠난 날, 분노한 백성은 왕조의 상징인 궁궐에 불을 질렀다. 왕이 백성을 버리자 백성도 왕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3일 후, 일본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한양을 점령했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대로다. 한양을 떠난 선조는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도망친 후 중국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나, 명나라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렇게 왕이 버린 나라를 살린 것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백성이었다. 그해 6월 2일 당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순신은 연전연승했고, 의병으로 전쟁에 뛰어든 조선의 백성은 관군과 힘을 합쳐 일본 육군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명나라 군대까지 가세하면서 조선은 한양을 빼앗긴지 1년 만에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전쟁은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한반도를 집어삼켰다. 임진왜란은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1598년까지 7년 가까이 한양을 비롯한 전 국토를 초토화했다.

사마르칸트

유럽 30년전쟁, 근대국가 시대 열다

전쟁의 불길이 한양과 한반도를 휩쓸 무렵, 다른 나라들도 전쟁 중이었다. 특히 유럽이 그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년 전, 전직 해적 두목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지중해를 호령하던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파했다. 이 틈을 타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던 네덜란드는 독립을 선언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지금의 독일에 해당하는 신성로마제국은 영원한 앙숙인 오스만튀르크와 수십 년째 틈만 나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 대륙의 양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는 신교와 구교가 대립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내전 중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딱 20년 후,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전하는 30년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30년전쟁이 한창이던 1636년, 조선도 다시 한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동아시아의 절대 강자로 떠오른 청나라 황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것이다. 7년 가까이 이어진 임진왜란과 달리, 병자호란은 두 달 만에 조선의 항복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피해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른바 ‘양란’을 거치며 조선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유럽 또한 30년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맺은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 새로운 근대국가 시대로 접어든다. 조선의 수도 한양과 근대국가로 태어난 유럽 각국의 수도 또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구완회(작가)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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