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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약, 노르만의 약진

기획 · 역사 속 평행 이론

서울의 도약, 노르만의 약진
2017.04

서울

고려의 남경, 서울이 떠오르다

서울과 한강을 놓고 벌어진 삼국 전쟁 최후의 승자는 신라였다. 진흥왕이 서울을 차지하고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운 지 100여 년만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통일 이후 서울은 한산주 지역으로 편입되었다가 757년 한양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150여 년 후, 다시 한번 서울의 주인이 바뀌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서울을 차지하면서 서울은 한양군에서 양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리고 1067년, 남경(남쪽의 수도)으로 승격하면서 서울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고려의 수도 개경, 고구려의 수도 서경(평양), 신라의 수도 동경(경주)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고려 시대에 서울의 도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예 남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남경에 궁궐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무신의 난이 일어나고 몽골이 침략하면서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남경천도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고려 말, 개혁을 이끈 공민왕은 다시 남경 천도(遷都)를 추진했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수도를 옮기려 한 것. 그런데 이번에는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으로 나라 살림이 궁핍해져 궁궐을 새로 짓고 수도를 옮기는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결국 공민왕은 남경 천도를 포기했으나, 그 뒤를 이은 우왕은 남경의 이름을 한양으로 바꾸고 천도를 단행했다. 무리한 천도를 추진해 결국 수도를 옮기기는 했으나,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점차 무너져갔으나 한양의 위상은 도약을 거듭했고, 마침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유럽

노르만 왕조의 시작,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추락

서울이 도약을 거듭할 무렵,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는 노르만족이 약진하고 있었다. 노르만(Norman)은 이름 그대로 ‘북방인’이라는 뜻. 바이킹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춥고 척박한 북유럽에 살면서 배를 타고 이곳저곳 약탈하며 근근이 먹고살았다. 그러다 프랑스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봉토로 받아 자리를 잡더니, 서울이 남경으로 도약하기 딱 1년 전인 1066년에는 영국을 정복하고 노르만왕조를 열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노르만족 일부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노르만족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서울이 도약하고 노르만족이 약진할 무렵, 독일에 자리 잡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위는 추락했다. 황제와 교황이 성직자의 임명권을 두고 충돌하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한 것이다. 눈밭에서 맨발로 서서 싹싹 빈 덕분에 겨우 파문은 면했지만, 이 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위는 추락했다.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1077년)이다. 서울의 도약과 함께 영욕의 세계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글 구완회(작가) 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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