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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서울, 세계 무대에 오르다

기획 · 역사 속 평행이론
2000년 서울
세계 무대에 오르다
2017.02

서울

‘600년 수도 서울’에서 ‘2000년 역사 도시 서울’로

‘2000년 역사 도시 서울’이란 말은 아직 입에 붙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서 중 최고로 오래되었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百濟本紀)’에 2000년 서울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는데, 이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이었다”고.
하남위례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지금의 서울 지역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이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 그 무렵 백제의 유물이 발굴되면서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현재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풍납토성을 하남위례성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보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 역사는 새로 쓰는 법. 이제는 ‘600년 수도 서울’ 대신 ‘2000년 역사 도시 서울’을 기억해야 할 때다.

로마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다

서울이 막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무렵,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우선 이 시기 로마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기 딱 13년 전인 기원전 31년, 그 유명한 악티움 해전에서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커플을 꺾고 승리했다.
흔히 클레오파트라를 ‘콧대 높은(?) 미녀’로만 알고 있는데, 그녀는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였다. 당시 세계의 제국으로 떠오르면서 이집트를 압박해오던 로마의 칼끝을 피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함으로써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되었다.

중국

한나라가 저물어가는 격동의 시대

로마가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한나라는 쇠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성제는 한나라의 12대 황제로, 주색에 빠져 신하들과 조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암군이었다. 결국 성제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한나라는 점점 힘을 잃다가 마침내 기원후 8년, 왕망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한나라의 신하였던 왕망은 ‘신(新)’이라는 글자 그대로 새로운 신나라를 세웠으나, 건국 15년 만에 한나라 왕족 유수의 손에 목숨을 잃고 나라마저 사라졌다. 유수는 광무제가 되어 한나라를 복원했으니, 왕망의 신나라를 사이에 두고 한나라의 역사가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는 것이다(그래서 <삼국사기>에 ‘전한 성제’라고 썼다).

구완회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과 역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크레이지 허니문 604>, <조선 사람의 하루> 등이 있다.

글 구완회(작가) 사진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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