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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밸리와 가리봉동

기획 · 서울형 도시 재생 지역을 가다 ⑪
첨단 융·복합 통해 비상과 상처 치유를 시작하다
G밸리와 가리봉동
2016.12

G밸리와 가리봉동 일대 : 매달 도시 재생 지역을 찾아가 역사·문화 자원, 사는 모습, 주민 이야기, 도시 재생 할동 등을 소개합니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수출의 10% 이상을 책임지며 산업화 전진기지 역할을 하던 구로공단과 공단 노동자들 삶의 터전이던 가리봉동.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일명 G밸리로 변신을 거듭하는 동안 가리봉동은 반대로 점점 쇠퇴해갔다.
도시 재생 사업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가리봉동과 G밸리를 찾아가본다.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중략) … 서른일곱 개의 방 중 하나, 우리들의 외딴 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구로공단 ‘공순이’ 출신인 소설가 신경숙이 <외딴방>에서 묘사한 가리봉동 ‘벌집’의 모습이다. 벌집 p혹은 닭장집으로 불리던 쪽방은 1970~1980년대 ‘수출 역군’이라는 미명 아래 청춘을 착취당한 언니와 오빠들이 지친 몸을 누이던 유일한 안식처였다.
1~2평 남짓한 작은방 하나와 부엌으로 이루어진 쪽방이 무려 30~40개나 들어찬 건물도 있었다.
“월세 부담을 덜려고 2~3명이 방을 함께 쓰는 사람도 많았어요. 좁아터진 방에 2~3명이 자니 똑바로 누울 수나 있었겠어요.”
당시 무궁화슈퍼를 운영하던 박일안 주민협의체 대표는 ‘그렇게 억척스럽게 돈 벌어서 오빠 동생 대학교 보내고 부모님께 생활비 보낸 여공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들 덕분에 우리나라도 이만큼 잘살게 된 거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일명 깔딱고개라 불리는 가리봉고개 부근에는 아직도 벌집이 많이 남아 있다. 가리봉시장과 연결된 가리봉고개는 구로공단에서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잠자리나 시장, 음악다방을 찾아 넘던 고개로, 꼭대기에 오르면 가산디지털단지의 마천루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 가리봉동의 낙후한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벌집은 공단 시절의 삶과 문화가 담긴 가리봉의 지역 유산이다.

일명 깔딱고개라 불리는 가리봉고개. 언덕에 오르면 가산디지털단지가 보인다.

산업화 전진기지에서 첨단 지식 산업 메카로

지금은 G밸리로 불리는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첫 국가 산업단지로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으나 ‘구로공단’으로 더 많이 불렸다. 1967년에 1단지,1968년에 2단지, 1973년에 3단지를 조성했으며, 1977년 대한민국 수출액 10억 달러 중 10%인 1억 달러를, 1980년대 중반까지는 10% 이상을 책임진 ‘산업화 전진기지’였다. 그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산지’,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했다.

1970년대 당시 구로공단에는 밤낮으로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공장에서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 때문에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동 조건과 환경이 열악했다. 1970년대 초 구로공단에서 기능공 생활을 했던 박노해는 시집 <노동의 새벽>에 당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노동 해방 운동의 불씨를 지핀다. 당시 대우어패럴 노조 간부들을 당국이 구속하자 이에 항거해 5개 노조가 동맹 파업에 동참하면서 지지 연대 투쟁으로 확산됐고, 이는 노동운동 단체와 민중운동 세력의 지지 연대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이문열의 <구로 아리랑>이다.

수출 주역이던 구로공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섬유·봉제 산업이 쇠퇴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꾸며 전환기를 맞았다. 정부 주도 아래 정보 통신 기술(ICT) 중심의 벤처 타운 으로 변신을 꾀하면서 공장 자리에 현대식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벤처기업이 대거 입주했다. 2016년 현재 1만여 개 업체에 16만여 명이 근무하는 우리나라 첨단 지식산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G밸리는 구로구 구로동, 금천구 가리봉동·가산동의 영문 공통 이니셜 ‘G’에 강남의 테헤란밸리를 넘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와 희망이 담긴 ‘밸리’를 합성해 만들었다.

산업화 전진기지에서 국내 IT 산업 메카로 자리 잡은 G밸리가 다시 한 번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문화·주거·복 지를 결합한 첨단 융·복합 산업 단지로 발돋움하려는것이다. ICT 업체가 밀집한 G밸리 1·3단지는 사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융·복합을 통해 제조업을 고도화한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마리오아울렛·W몰 등 대형 패션 아웃렛이 밀집한 2단지는 패션 산업 메카로 발전시킨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 속의 중국, 새로운 문화도 형성

구로공단이 상전벽해의 변신을 거듭하는 동안 그 배후 지역인 가리봉동은 시간이 비켜갔다. 2003년 뉴타운으로지정된 후 10년간 건축 허가가 제한됐고, 공단 노동자들이 떠난 후 싼 숙소를 구하는 중국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 가 찾아들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3월 기준 구로구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 3만1,529명 중 중국인(중국 동포 포함)은 2만9,931명으로 가장 많았다. 주민의 80%가 중국계 사람인 셈이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가리봉시장으로 이어지는 우마길은 연변 거리라고 보면 됩니다. 직업 소개소, 음식점, 노래방, 생활용품점 등 모든 가게가 중국 동포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죠.”


1974년에 제작한 ‘수출의 여인상’

가리봉동에서 만났어요

주민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세요박일안(주민협의체 대표)

1986년에 무궁화슈퍼를 운영했어요.슈퍼가 잘되긴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문구점으로 바꿨지요. 가리봉동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살았는지 초등학교가 3부제 수업을 할 정도였으니 문구점도 잘됐죠.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30년이 흘렀네요. 뉴타운을 조성한다고 잔뜩 바람만 집어넣고 10년 이상 집수리도 못 하게 하더니 결국 무산되고 말았어요. 도시 재생 사업으로 마을을 살리겠다는데,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재건축, 주차, 치안, 도로 확장 등  문제가 가장 시급하니 그걸 먼저 해결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주민의 아픔을 먼저 치유해드리고 있습니다추진화(가리봉 도시재생센터 코디네이터)

뉴타운 사업 때문인지 외부인과 활동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민과 소통방을 만들어 그분들의 아픈 마음도 달래주고 거주 불편 사항 등의 민원을 해결하면서  주민들에게 도시재생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가리봉동 주민들의 주체적인 활동, 구로구와 연계 등도 주요한 사업이고요. 또 벌집을 매입해 주민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전시회나 이벤트를 여는 등 가리봉동만의 특별한 문화도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관심 없던 분들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고 한마디씩 거들어주시곤 해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거지요.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 구축도 중요합니다. 저희는주민과 중국 동포가 서로 합심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마리오아울렛, W몰 등 대형 패션 아웃렛이 모인 G밸리 2단지


구로문화재단 나기석 팀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새벽 인력 시장이 남구로역 주변에 매일 열리고 무도회장 성업,식당 방에서 목욕탕 의자 놓고 밥 먹기(좌식에 익숙치 않은 탓에) 등 연변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며, “이곳은 한국 속의 중국”이라고 말했다.
남루한 집에 역시 남루한 사람들이 사는 가리봉동은 G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낙후했다. <황해>나 <베테랑> 같은 영화에도 범죄의 온상으로 등장해 우범 지역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기석 팀장에 따르면 범죄율이 의외로 낮고 치안이 잘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중국 동포를 향한 우리의 차가운 시선이라고.

중국 동포와 뜻을 모아 살기 좋은 동네 만들기

주민 갈등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표류하던 뉴타운 사업이 지난 2014년 해제되고, 대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칙칙한 가리봉동에도 희망의 빛이 깃들고 있다. 가리봉 도시 재생 사업은 다문화 가정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도시 재생의 중심이 주민인데, 가리봉동 주민 대다수가 중국 동포이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 사업의 핵심 앵커 시설로 변신한 벌집.
가리봉동의 특색을 살린 전시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지난 11월 18~20일, ‘벌집 앵커 시설’에서 구로공단 봉제 산업의 상징물인 미싱을 통한 젊은이들의 문화 예술 체험 프로젝트 ‘가리봉봉 아지트(아z트)’가 열렸다. ‘벌집 앵커 시설’은 공단 시절의 삶과 문화가 담긴 가리봉의 지역 유산으로 현재 두 곳을 사용하고 있다. 도시 재생 주민 공모 사업 중 하나인 이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이 미싱으로 파자마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산업화 시절 근로자의 삶을 느껴보고 가리봉동 일대를 투어했다. 마지막으로 극단 ‘하하하’가 창작극 <구두닦이 소녀>를 공연했다.

가리봉동은 그동안 많은 아픔을 겪었다. 뉴타운 사업 때문에 주민 간 골이 깊어졌고, 10년이 넘도록 신축이나 집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중국 동포가 유입되어 슬럼화되기도 했다. 구로공단의 변신을 지켜보며 상대적 박탈감도 느꼈을 터. 하지만 도시 재생으로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과 중국 동포가 서로 뜻을 모으고 함께 노력한다면 새로운 꿈을 이루는 희망의 마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장에서 12시간 일하고, 야간학교에서 공부하고, 벌집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살았던 우리의 언니, 오빠들 시절처럼 말이다.

가리봉동에서 만났어요

‘이음’에 가치를 두고 작업했어요조하연(문화 예술 협동조합 ‘곁애’)

구로구에 터를 잡은 문화 예술 협동조합 ‘곁애’는 2008년부터 구로구 후미진 곳의 이웃을 비추는 일을 했습니다. 올해 초 구로 이야기를 담은 <동네방네 마을 그림책> 네 권을 발간하면서 가리봉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마침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파견 사업을 진행해 9명의 예술인을 가리봉동에 파견했어요. 이들은 주민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제작했고 연말 콘서트, 문패 제작, 현장 소통마당 외벽 꾸미기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올해는 도시 재생 주민 공모전에 선정되어 벌집 앵커를 거점으로 ‘가리봉봉 아지트’를 진행했고요. 다닥다닥 붙은 벌집처럼 가리봉 주민의 마음과 마음을 잇고, 지역의 다양한 자원도 이어보고자 ‘이음’의 가치에 방점을 두었지요.

가리봉시장 근처에 있는 연변 거리.
가리봉동 주민의 80%가 중국 동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홍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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