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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 은행나무

기획 · 아름다운 시절 ⑨
서울의 터줏대감
방학동 은행나무
2016.11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것들을 소개합니다.
서울 시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대화해보세요.

 

역사와 함께한 ‘할아버지 나무’

안녕하십니까, 도봉구 방학동에 살고 있는 은행나무 영감이외다. 이 늙은이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와주다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사실 600년쯤 살다 보니 그 일이 그 일 같고, 한참 전 일이 바로 어제 일어난 것처럼 기억이 까무룩해 잘 말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나를 심은 건 아마도 1460~1510년인 조선 전기쯤이었을 것이오. 원래는 ‘800년을 산 할아버지’, ‘1,000년의 신령’ 등으로 불리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 했는데, 요새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겨 내가 600살쯤 되었단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700년을 산 ‘서울 문묘 은행나무’ 선생이라더이다. 아쉽냐고요? 건강만 하다면야 100년, 200년쯤 누가 더 오래 산들 어떻겠습니까? 어쨌거나 내 키는 25m, 둘레는 10.7m쯤 되는데, 이는 성인 남성 10명이 손을 맞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에 내 나이 남짓한 친구가 몇 있는데, 파평 윤씨들이 살던 원당골의 샘과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의 묘에 있지요. 모두 물 맑고 흙 좋은 고을에서 자란 덕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험한 마을의 수호신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신령하다고 여겼습니다. 고령의 은행나무에는 전해오는 전설도 많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그러한 이유로 경복궁을 증축할 때 징목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베지 말 것을 간청하여 지금 이 자리에 계속 남을 수 있었고, 바로 이때부터 ‘대감나무’라 불리기 시작했지요. 또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내게 징조가 나타난다 하여 더 영험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곤혹스러운 일도 많았답니다. 내 기둥에서 옆으로 뻗은 줄기가 남성의 성기와 여인의 젖꼭지를 닮았다 하여,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바라는 집에서 찾아와 이 유주(乳柱)를 잘라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찾아와 아들을 점지해달라며 비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젖이 마른 산모는 튀어나온 가지를 바라보며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오. 한 여인은 기도를 드리던 어느 날, 내 근처에서 왕의 모습을 한 이를 보았는데 그가 기도를 들어주어 아들을 낳았다고 말해 내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더욱 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홀로 남겨진 ‘부부 은행나무’

사람들은 내게 영(靈)이 깃들어 오래 산다고 했지만, 내가 건강하게 몇백 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아내인 암나무가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동물에 암수가 있는 것처럼 은행나무에도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은행나무의 열매는 암나무가 맺고, 나와 같은 수나무는 꽃가루를 날려 암나무 열매를 여물게 하지요. 내게서 200m 떨어진 곳에 나의 암나무가 있었고, 함께 태어난 우리는 500년을 넘게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가을이면 고릿한 냄새의 열매를 떨구고 황금빛 잎을 날리며 우리의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지요.
‘부부 은행나무’라 불릴 정도로 금실이 좋았지만 1990년 방학동 인근에 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암나무는 벌목되어 내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왜 나만 남겨둔 것일까요? 홀로 남은 나는 암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에 막혀 뿌리와 가지조차 제대로 뻗을 수 없었고, 갑자기 찾아온 외로움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방학동 주민들이 이 노거수(老巨樹)를 다시 살리려 했고, 결국 주변 빌라 한 동을 철거해 내가 편히 뻗을 곳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또 몇 번의 외과 수술을 받으면서 지금처럼 양호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도 나는 가을이면 노란 열매를 떨구며 흐드러지던 암나무가 무척 그립습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3호로 거듭나다

1968년에는 서울특별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로 추정되었지요. 1960년대에 시작된 도시 개발로 벌목될 위기도 있었고, 현대에 들어오면서 내게 제(祭)를 올리던 은행나무제도 사라져버렸으나 방학동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2013년에는 잊고 있던 내 나이가 600년쯤 된다는 것을 밝히면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승급해주기도 했지요. 요새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도는 듣지 않지만, 내 앞에 모여 마을 축제를 하고 윷놀이와 음악회 등 잔치를 벌여 참으로 즐겁습니다. 혼자 남은 외로움도 달래주고요. 그저 오래 잘 살았다는 이유로 이 은행나무를 아껴주고 믿어주니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큰 나무는 바람을 많이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꼽으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러지고 흔들리고 곪았던 날들이 더 큰 나무로 뿌리내리게 해주어 지금까지 여러분 곁에 있을 수 있는 거겠지요.
여러분의 삶도 주저앉고 싶은 날이 계속되겠지만 여러분을 믿고 있는 이들을 보며 더 큰 나무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땐 언제든 이 방학동 은행나무를 찾아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황금빛 잎으로 옷을 입지만 열매는 열리지 않는 수나무이다.

1991년 지구의 날을 맞아 시민 환경 단체가 방학동 은행나무와 북한산을 살리자는 호소를 하고 있다. 방학동 주민과 환경 단체의 노력으로 죽어가던 은행나무를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

글 김승희 자료 제공 도봉구 문화공보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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