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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2가동 해방촌

기획 · 서울형 도시 재생 지역을 가다 ⑦
피란민 정착촌에서 타향살이 설움 잊는 해방구로 탈바꿈
용산2가동 해방촌
2016.08

해방촌 매달 도시 재생 지역을 찾아가 역사.문화자원, 사는 모습, 주민 이야기, 도시 재생활동 등을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딱 4년 전, 2012년 7월에 해방촌을 취재했다.
그 당시 아이템은 서울의 떠오르는 골목 여행. ‘함석집과 햄버거 가게의 아름다운 동거’가 주제였다.
그 후 경리단길이 방송에 심심치 않게 소개되면서 제2의 가로수길로 폭풍 성장했고, 덩달아 해방촌도 서울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유명해지면 어떤 식으로든 변하게 마련이다. 지난 4년 동안 해방촌은 어떻게 변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해방촌을 찾았다.

 

경리단 앞 교차로에서 해방촌 오거리까지 이르는 신흥로를 따라 올라갔다. 초입부터 가게가 눈에 띄기 시작해 언덕 꽤 높은 곳까지 줄지어 들어섰다.“가게가 많아지니까 임대료가 너무 올랐어요. 외지인이 임대업을 하려고 집을 많이 구입했거든요.” 해방촌의 대표 맛집인 카사블랑카의 주인 나시리 와히 드 씨(모로코)는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는 가게도 많다”며 “특히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을 땐 안타깝다”고 했다. 대표적인 곳이 인디고. 해방촌 2세대인오상석 씨가 운영하던 일명 미국식 백반집으로, 해방촌에서 제일 처음 문을 연 외국인 대상 음식점이었다. 임대 기간과 임대료 문제로 해방촌 아랫동네의 상징적인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흥로 초입의 한신옹기

일제강점기에 신사에 참배하기 위해 만든 108 계단

서울의 대표 낙후 지역 중 하나인 해방촌이 도시 재생을 통해 쾌적하고 안전한 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또 해방촌의 대표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니트 산업이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임대료와 땅값 상승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어 상인이나 토박이 주민 모두 걱정이 많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

해방촌은 남산 아래 용산2가동을 말한다. 해방과 한국전쟁 통에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과 피란민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엄마 손 잡고네 살 때 해방촌으로 피란 온 이춘경 씨는 해방촌의 옛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레이션 박스, 판자 등을 주워다가 언덕배기에 손바닥만 하게 집을 지었어요. 일명 ‘하꼬방’이지. 남산 3호 터널이 뚫리면서 막혔지만, 그 당시엔 남산에서 계곡물이 흘러 내려왔어요. 참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
해방촌에 정착한 1세대는 대부분 남대문시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불법 담배를 만들면서 억척스럽게 살았다. 돈을 모으면 환경이 좋은 한남동이나 후암동, 보광동쪽으로 이사를 갔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요꼬 공장(니트 스웨터공장)’을 찾아 해방촌으로 왔다. ‘요꼬’는 1960∼1980년대 해방촌의 주력 산업이었다.“봉제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고, 싼 중국 옷이 들어오면서 거의 다 문을 닫았지요.”
신흥시장에서 수선집을 하는 임광해 씨에 따르면 서울올림픽 영향도 컸다고 한다. 도시 환경 미화라는 미명 아래 강제적으로 철거와 재건축을 시행해 양옥집이나다세대주택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번듯한 집을 짓자 해방촌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태원, 한남동 등에서 살던 미군들이 임대료가 싼 해방촌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미군 용산기지 이전으로 미군이 많이 떠난 지금은다양한 국적과 직업의 외국인이 해방촌을 찾고 있다.

해방촌 사람들

신흥시장이 부활했으면 좋겠어요

이춘경(신흥상회 대표)

“처음에는 시장도 없었지. 광주리에 물건을 담아 물물교환하던 공터였어요. 5·16 군사정변 이후에 지금의 시장이 생겼죠. 시멘트건물 여러 채 지어 지붕을 이어 붙인 게 신흥시장이에요.”
제수용품을 파는 신흥상회의 이춘경 씨는 신흥시장이 처음 생길때부터 장사를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됐다. 시장 골목에는 노점상이 가득했고, 저녁 장 볼 시간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요꼬’ 공장 때문이었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지.그 사람들이 전부 여기서 장을 봤으니까 바글바글했죠. 그런데 ‘요꼬공장’이 없어지면서 장 보러 오는 사람도 줄고,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또 줄고….”
손님이 줄면서 가게도 하나 둘씩 사라졌고, 지금은 토박이 몇몇이 운영하는 낡은 가게 몇 곳만 남아 있다. 빈 가게는 살림집으로 개조해세를 놓기도 했다. “이대로 가면 문을 닫아야 할 시장을 서울시에서새로운 공간으로 꾸며준다니 고맙지요. 멋진 커피 가게도 생기고,예쁜 양초 가게도 생기고, 해방촌 4평학교 같은 문화 공간도 생기고…. 뭔가 바뀌는 것 같아 기분은 좋네요.”
해방촌의 부흥과 쇠락을 함께한 신흥시장. 그 시장에서 청춘을 보낸이춘경 씨는 신흥시장 부활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때는 해방촌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대표 낙후 시설이 된 신흥시장은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저 멀리 N서울타워가 보인다.

더위를 식히려고 골목으로 나온 해방촌 토박이 할머니들

해방촌의 역사는 돌고 돈다

신흥로 초입에 카페 거리가 형성되면서 해방촌 아랫동네는 버터 냄새 가득한 다국적 마을로 변했다. 하지만 윗동네인 해방촌 오거리 쪽은 아직도 1980년대 달동네모습 그대로다. 해방촌성당 옆에서 미로처럼 이어지는비탈길, 신흥시장의 후미진 뒷골목, 가파른 108계단,다닥다닥 붙어 있는 비좁은 오래된 양옥집…. 서울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었다. 재개발 바람이 비켜간 탓이다. 주거 환경 개선 위주로 해방촌 재생 사업이 시작되고 있는데 서울시 도시 재생 주민 공모사업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 활기를 띄고 있다. ‘푸르고 예쁜 골목 만들기’를 비롯해 ‘옥상 별빛 음악회’, ‘다문화 아이들과 전통 음식 만들기’, ‘해방촌을 테마로 한작품 제작’ 등을 주민들이 제안했고 현재 시행 중이다.또 한때 해방촌의 상징이었으나 오랜 기간 방치된 채 제 기능을 잃어가는 신흥시장을 밝고 쾌적하며 개방된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주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처음에는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실향민과 피란민들의 안식처였다가, 산업화 시절에는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오르내리며 고단한 타향살이를 시작한 동네였다가, 이제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은 이방인들의 둥지가 되고있는 해방촌. 언제나 힘없고 돈 없는 서민의 보금자리로, 해방촌의 역사는 돌고 돈다. 그 해방촌에서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든 주민이 다 함께 어우러져 잘 살수 있도록 상권 부상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의 부작용에서 하루빨리 해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47년 세운 해방교회는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해방촌에는 다양한 국적과 직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해방촌 사람들

적어도 한글은 떼게 해줘야지요

김현옥 대표(더 스페이스)

“해방촌에는 정말 다양한 국적과 직업의 사람이 사는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아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리가 없잖아요. 학교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공부를 가르치고 숙제도 봐주고 있어요.”
2012년부터 외국인 가정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는더 스페이스(The Space)의 김현옥 대표. 그녀 역시 해방촌 주민이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려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집에 사는 외국인이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더라고.세탁기가 고장 나도, 보일러가 고장 나도 애프터서비스를 신청하기 어려워 그대로 사는 이웃을 돕다가 아이들 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걸 깨닫고 교육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중학생이 되어도 한글을 다 못 떼는 아이들이 있어요. 고등학교는30% 정도만 졸업하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공간이 없어서 교회, 분식집 등에서 했다. 그러다 이동숙 씨를 만났다. 해방촌 꼭대기에서 컵닭떡볶이집을 운영하는 이동숙 씨는 흔쾌히 공간을 빌려준 것도 모라자 등·하교 시아이들 지킴이 역할도 한다. 지금까지는 사비를 털어 봉사 활동을했는데, 다행히 해방촌 주민 공모 사업에 당선돼 교재비, 간식비정도를 지원받는다. 봉사자도 늘었다.
김현옥 대표는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해방촌을 좋은 곳으로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더 스페이스를 거쳐간 아이라면김현옥 대표의 바람대로 해방촌에 대한 기억이 따뜻하지 않을까.



해방촌 핫 플레이스

남산 아래 이국적인 맛
해방촌 핫 플레이스는 신흥로 초입부터 언덕까지 약 500m에 밀집해 있다.
요즘 새로 떠오르는 곳은 해방촌 오거리에서
후암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1 오리올

1층은 이탤리언 비스트로, 2층은 칵테일바, 3층은 루프톱 등 각기 다른 콘셉트로 운영한다.
N서울타워와 어우러진 해방촌의 아름다운 아경을 보고 싶다면 강추.
문의 02-6406-5252



2 카사블랑카

모로코 샌드위치 전문점.
바게트에 모로코식 크로켓이나 양고기, 새우로 속을 채우고 소스와 향신료를 뿌린 샌드위치는모로코 가정식을 재현해 만들었다.
문의 02-797-8367

3 해크니

당근 케이크는 호두와 시나몬을 넣어 고소하며 풍미가 좋다.
벨기에 다크 초콜릿을 넣어 진한 맛을 내는 다크 베이비 케이크도 인기..
문의 02-794-2668

4 자코비버거

수제햄버거집. 쇠고기 패티 두 장과 치즈, 베이컨, 달걀 등을 층층이 쌓아 만든 갓버스터버거가 유명하다.
일반 햄버거보다 3배가량 더 크고 맛도 좋다.
문의 02-797-8367

5 르 카페

해방촌 3세대인 한명덕 씨가 운영하는 로스팅 카페.
최근 로스팅 랩실을 갖추어 좀 더 전문적이고 섬세한 맛의 커피를 맛볼수 있다.
부드러운 맛으로 정평이 난 곳.
문의 070-8899-2335

6 더백푸드트럭

베이컨 등 모든 식재료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홈메이드 베이컨과 리얼 BBQ쿠바노 파니니, 시그너처 수제 버거가 유명하다.
문의 www.facebook.com/the100foodtruck

7 꿈&펀

스테이크와 간장크림치킨파스타가 인기.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과일을 듬뿍 올린샐러드가 사이드 디시로 나온다.
양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가격에 또 놀라는 곳.
문의 070-8227-1940



글 양인실 사진 문덕관, 윤종섭(램프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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