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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장안에 없는 약은 이곳에 가서 찾았다는
‘수도약국’
2014.6



수도약국의 시작은 광복 직후인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약국을 개업한 임명용 씨는 일제강점기 때 약국에서 심부름을 하던 사환(使喚)에서 약종상 면허를 취득하고 인사동에 살며 약국을 개업한,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약업계의 1세대 인물이었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8월 15일에 개업날을 맞춘 것만 보아도, 당시 그에게 약국이 지녔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발 빠르게 여러 약들을 구비했던 부지런함 덕분에 당시 세간에는 “장안에 없는 약은 수도약국에 가서 찾아라!”라는 말이 나돌았고, 심지어 병원에서도 약을 찾아 이곳에 드나들었을 정도였다. 특히 조제가 유명하여 약을 잘 짓는다는 소문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약을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오래전의 이야기들도 의약 분업 시대와 더불어 포화 상태에 이른 약국, 그리고 의약품 판매의 규제 완화로 편의점에서도 일부 약들의 판매가 자유로워지면서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다.



현재 70년이 다 되어가는 약국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약사는 셋째 아들 임준석 씨다. 어릴 적부터 인사동 거리에서 자란 그는 한옥과 골동품 상점이 즐비했던 이 거리의 변천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가구점과 중국 사람이 직접 운영하던 중국요리 집이 여러 곳 있었다는 사실이나 지척에 자리했던 MBC문화방송 사옥 덕분에 여러 연예인들이 약국을 찾았던 일, 천경자 화백이나 천상병 시인 같은 문화, 예술 분야의 손님들이 다녀가던 일들을 회상하기도 했다.

1983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약국을 보듬어 왔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셈이다. 으레 약사나 의사는 모두 아픈 사람들만 대하지는 않을까 싶지만, 아직도 오랜 단골들은 다른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들고 오거나, 혹은 인사나 근황이 궁금해 이곳을 찾는다고도 한다. 아마도 이런 고객들로 인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의 역사는 풍성하게 채워져 갈 수 있는 것이리라.

나도 상비약으로 해열제와 파스를 구입했다. 아이의 몸에서 열꽃이 피어오르거나 여행이나 운동 후 지친 몸을 뉘었을 때 약의 필요성은 절실해진다. 언젠가 그런 날에는 다시금 수도약국에서 만난 친절한 약사의 이야기들을 곱씹어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글 일러스트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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