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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탐방 · 서울의 오래된 것들
시간을 다듬는 곳
성우이용원
2014.4




흔히 ‘6백년 고도’라 불리는 서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옛 모습들이 남아 있을까. 외세의 침략과 한국전쟁, 이어지는 개발지상주의의 현실은 옛 서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놓았고, 안타깝지만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도시의 풍경은 가까운 근대의 풍경마저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 없어지기 전에 시간의 켜가 쌓인 풍경을 찾아 스케치북에 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만리동 고개에 있는 이발소를 찾았다.

서울역에서 마포구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가 만리동 고개다. 서울에서도 비교적 늦게 개발의 손길이 닿은 이 부근은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해주는 여러 풍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성우이용원’은 낡고 생경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월 속에 뒤틀어진 문을 열고 들어 서자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 이남열 씨가 가운데 이발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한다. 테이프로 터진 부분을 여기저기 붙인 낡은 이발의자에 앉았다.

“적당히 깎아주세요.”라고 주문을 해본다.

창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이발소 거울에 반사되어 실내를 비추니, 편안함에 절로 눈이 감긴다.1927년 시작된 이발소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3대에 걸친 가업이 되었다. 벌써 90년이 다 되어간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사람으로는 두 번째로 이발면허증을 딴 전설의 인물이다. 그에 걸맞게 성우이용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이다. 시간을 거스 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멈출 수는 있다는 듯 가게 안 곳곳에는 30~40년은 족히 된 옛 물건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이에서 머리를 맡긴 채 풍경 속에 빠져든다.

사각사각 경쾌하게 움직이는 가위질 소리, 멀리 생선을 파는 트럭의 마이크 소리, 고양이의 하품 소리, 골목 행인들의 웅성거림…. 가만히 눈을 뜨고 바라본 거울 속 낡은 창틀에 내리쬐는 햇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리라. 창밖의 풍경은 시간이 흘러가며 계속해서 변해 왔지만,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만큼은 늘 같은 조각으로 이발소 안을 보듬었을 것이다. 나는 그 햇살 아래 느긋하지만 신중하게 머리를 만지는 이발사를 바라본다. 그는 마치 천천히 시간을 다듬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글 일러스트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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