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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 골목길 산책
남산 아래 첫 동네, 함석집과 햄버거 가게의 아름다운 동거
'해방촌'
2013.8

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배 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큼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철호는 때에 절어서 마치 가죽끈처럼 된 헝겊이 달린 문걸쇠를 잡아당겼다. 손가락이라도 드나들 만치 엉성한 문이면서 찌걱찌걱 집혀서 잘 열리지를 않았다. 아래가 잔뜩 집힌 채 비틀어진 문틈으로 그의 어머니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자! 가자!” 한국전쟁의 비극과 인간성 상실을 고발한 소설 <오발탄>에 묘사된 해방촌의 모습입니다.

북에서 빈 몸뚱이로 내려온 피란민이 산등성이에 게딱지 같은 판잣집을 지어 살던 곳, 그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온 1세대와 2세대가 대부분 떠나간 지금, 해방촌은 많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외국인이 동네 주민이 되었고, 영어 간판을 단 레스토랑과 맥줏집이 즐비합니다. 오래된 마을이 좋아서 찾아와 둥지를 튼 젊은이들도 있지요.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윗동네와 코즈모폴리턴 시티 같은 아랫동네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해방촌을 찾아가봤습니다.

▲ 보성여중 ·고 운동장에서 내려다본 해방촌. 판잣집 대신 다세대주택과 빌라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콩밭. 영화를 만들던 김석 씨가
해방촌의 매력에 빠져 정착하면서 연 가게다.

판잣집과 요코 공장
해방촌은 남산 2호 터널과 3호 터널 사이의 아랫동네인 용산 2가동의 대부분을 말한다. 원래 일본군 사격장이 있던 곳인데, 해방과 한국전쟁 통에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과 피란민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피란 온 사람들이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판자, 시멘트 부대, 함석 같은 걸 주워다 얼기설기 엮어서 판잣집을 지었지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온통 판잣집, 함석집투성이였어요.
해방촌길(현 신흥로) 쪽에나 좀 번듯한 집들이 있었지요. 그곳은 큰길 옆이라 쌀집, 연탄 가게, 이발소, 약국, 국숫집 같은 가게가 많았거든요.”
해방촌에서 나고 자란 2세대 오상석 씨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유대감만큼은 집성촌 못지않게 강했다고 회상한다. 같은 곳에 고향을 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해방촌에 터를 잡은 1세대들은 남대문이 가까운 이점을 살려 주로 장사를 많이 했다. 지게꾼으로 시작해 노점을 하고 가게를 열고… 그렇게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도 새로 지었다. 강남 붐이 일면서 강남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고, 타계한 사람도 많다.
전쟁 직후 들어온 미군 부대를 보며 자란 2세대들은 그 때문인지 많은 수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래서 현재 해방촌에는 토박이 주민이 그리 많지 않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방촌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산업화 과정 속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요코’ 공장에서 스웨터를 짜며 고단한 서울살이를 했다.
“이름이 공장이지 주택 지하에서 했지. 그래도 스웨터가 남대문에서 잘 팔려서 수입은 괜찮았는데, 중국산 옷들이 들어오면서 다들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이 집들도 옛날 집이 아니야. 88 서울 올림픽 때문에 다 다시 지었지.”



해방촌의 또 다른 이름, HBC
새색시 때 서울로 와 40년 넘게 해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미희자 할머니는 해방촌이 변해온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판자집과 함석집이 대부분이던 해방촌은 198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88 서울 올림픽 때문이다.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가려면 남산을 지나야 하는데, 남산 아래 첫 동네가 구질구질 볼썽사나웠던 것. 도시환경 미화라는 미명 아래 강제적으로 철거와 재건축이 시행됐다. 돈 있는 사람은 양옥집이나 다세대주택을 지었고 돈 없는 사람은 떠났다.
번듯한 집들이 들어서자 이태원, 한남동 등에서 살던 미군들이 월세로 들어왔다. 그리고 미군이 많이 떠난 지금은 영어 강사, 모델, 상인 등 평범한 외국인이 해방촌을 찾고 있다. 캐나다, 미국, 호주는 물론 러시아, 나이지리아, 인도, 필리핀 등 국적도 다양하다. 저렴한 임대료는 물론 오래도록 외국인이 드나들면서 닦아놓은 편리한 기반, 가령 가정식 브렉퍼스트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나 친구들이 모이는술집 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해방촌 입구의 고바우수퍼 주인은 “3~4년 전부터 외국인이 크게 늘어 이젠 손님의 80%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주민 10명당 1명은 외국인이다. 그래서 요즘은 해방촌을 HBC로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 표기한 해방촌의 약어다.
외국인이 바글바글한 해방촌 입구인 아랫동네와 달리 해방촌의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한 ‘해방촌 오거리’ 쪽의 윗동네에는 1980년대에 봤음 직한 집들과 구불구불한 골목, 가파른 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에 ‘오래된 동네가 좋아서’라며 찾아든 젊은이들이 있다. 학교 과제로 만들었다가 동네 명물이 된 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편집하는 배영욱씨,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콩밭의 김석 씨, 엄마와 아이가 찾아와 수다도 떨고 책도 읽는 종점수다방을 운영하는 황혜원 씨 등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려는 이 젊은이들로 해방촌에 색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지보다 더 현지스럽게
이제 해방촌 탐험을 시작해보자. 해방촌은 다양한 코스로 구경할 수 있는데, 배영욱 씨는 해방촌 입구의 신흥로에서 시작해 해방촌 오거리로 올라간 다음, 보성여고 길 혹은 한강로 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해방촌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란다.
고바우수퍼가 있는 해방촌 입구에는 신흥로를 따라 영어 이름을 단 레스토랑, 카페, 펍이 줄지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미국식 브런치와 샌드위치 등을 파는 인디고. 해방촌 2세대인 오상석 씨가 운영하는 일명 미국식 백반집이다. 해방촌에서 제일 처음 문을 연곳인데, 특징은 완전 외국 맛 그대로라는 것. 외국인이 가르쳐준 레시피대로 만들기 때문에 오상석 씨도 끝까지 못 먹는 음식이 많단다. 하지만 엄마 손맛이 그리운 외국인들은 환장한다고. 푸짐한 브런치 이외에 루이지애나식 스튜인 검보(gumbo)나 필라델피아식 샌드위치도 인기가 높다. 퓨전이 아닌 정통 미국식 맛을 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한다.
인디고에서 위로 조금 올라가면 해크니와 자코비버거가 나온다. 해크니는 유기농 재료로 만드는 홈메이드 케이크집으로 당근 케이크와 바나나 케이크가 인기 있다. 조각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큼지막하게 나온다. 크기에 놀라고 맛에 놀라며 마지막으로 착한 가격에 놀란다. 인디고의 오상석 씨 말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눈곱 떼고 슬리퍼 신고 와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대부분 음식 가격이 착하다고.
자코비버거는 수제 햄버거집으로 일명 내장 파괴 버거인 갓 버스터 버거가 유명하다. 2개의 두툼한 쇠고기 패티에 열다섯 가지 재료가 들어가 일반 햄버거보다 3배가량 더 크다. 물론 맛도 좋다. 하지만 1천 칼로리가 넘으니 다이어트 중이라면 메뉴판에서 구경만 할 것. 칼로리가 낮은 다양한 종류의 햄버거가 있으니 요기는 그것으로 하자.
자코비버거 맞은편에는 해방촌 3세대인 한명덕 씨가 운영하는 르 카페가 있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갈아서 내려준다. 주인장이 한국인인데도 외국인 단골이 더 많다. 르 카페 위로 모로코인 형제가 운영하는 카사블랑카가 있다. 대표 메뉴는 바게트 빵으로 만든 모로칸 샌드위치. 모로코 길거리 음식이라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 외에 다양한 카페와 영국식 펍이 즐비한 신흥로를 따라 오거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벽화로 예쁘게 단장한 신흥로 14길이 나온다. 요코 공장 얘기를 들려준 김미희자 할머니의 집도 여기에 있다. 벽에 그려진 보라색 꽃이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처럼 소박하다.
구슬땀을 흘리며 차선도 없고, 건널목도 없고, 신호등도 없으며, 인도도 따로 없는, 손바닥만 한 해방촌 오거리에 이르니 N서울타워가 지척에 보였다. 남산 아래 첫 동네답다. 오거리에서 후암초등학교 길로 내려가면 유명한 108계단이 나온다.
후암동 종점 로터리에서 올려다보이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대리석 계단으로 계단 위에 세운 신사에 참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해방촌의 오래된 속살을 보고 싶으면 다시 오거리로 올라와 해방촌교회, 보성여중·고 길로 내려가야 한다. 한때는 벅적 벅적했지만 지금은 어둡고 썰렁한 신흥시장 맞은편에 공동체 가게인 해방촌 빈가게와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콩밭이 나온다. 착한 커피로 갈증을 해소한 후 해방촌의 상징인 해방촌교회와 해방촌성당을 지나 보성여중·고교로 내려간다. 운동장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해방촌과 용산구 일대를 볼 수 있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 대부분의 집이 빌라로 바뀌었지만 해방촌성당 옆에서 미로처럼 이어지는 비탈길, 신흥시장의 후미진 뒷골목, 108계단의 가파른 골목에는 세월의 풍파로 낡고 쇠잔해진 함석집이 아직 몇 채 남아 있다. 해방촌을 떠나기 싫고 새집 짓는 것이 번거로운 1세대들이 사는 집이다.
살기 위해,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오르막길을 오르 내리며 고단한 타향살이를 시작한 동네,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터전, 과거와 현재가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는 곳, 그곳이 해방촌이다.





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참고 자료 <남산골 해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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