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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완공한 경성역(현 문화역사서울 284)

기획 · 아름다운 시절 ⑤
세월과 이야기의 정거장
옛 서울역사
2016.06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를 소개합니다.
서울 시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대화해보세요.

제국주의의 관문, 경성역

안녕하세요. ‘옛 서울역사’입니다. ‘구(舊) 서울역’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지금은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저는 ‘옛 서울역사’로 불리는 것이 좋네요. 날이 갈수록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긴 해도 ‘문화역’이라는 수식어는 어딘지 모르게 요즘 친구들 같아 올해로 아흔아홉인 나로서는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는 아주 보통 이름, 여러분이 스쳐 지나가며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옛 서울역’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지난 회에는 ‘한국은행’ 선배가 이야기를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외관을 지닌 우리 둘은 그 시작도 닮았는데요, 저의 전신 또한 일제강점기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1922년에 착공해 1925년에 준공한 경성역(京城驛)이었습니다. 사실 간이역으로 쓰던 ‘남대문역’이 시초이긴 하지만, 지금 모습은 조선을 거쳐 만주까지 이어지는 침략과 수탈의 경로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이 세운 경성역이었던 것이죠.

나를 설계한 쓰가모토 야쓰시는 한국은행과 도쿄 역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제자였고, 이러한 연유로 나와 도쿄 역 그리고 한국은행은 모습이 매우 닮은 것이라 합니다. 1923년에 일어난 일본 간토 대지진 때문에 공사 비용이 감액되기도 했지만 지하 1층, 지상 2층의 대규모로 지어 도쿄 역에 이어‘동양 제2역’으로 불리는 등 당시로는 진기한 건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거대한 규모와 아름다운 장식, 정교한 마감 등은 서양에서 18세기 이후 유행하던 절충주의 양식을 따른 것입니다. 이는 사실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건립된 건물들의 공통점으로, 저와 같이 국적을 알 수 없는 생김새를 갖춘 것이 특징입니다. 화려한 모습에 비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외관 때문에 침략의 상징물로만 여겨진 것을 떠올리면,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고 지금처럼 문화 공간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24년 10월, 준공 당시 모습. 일본은 동경-부산-경성-만주-유럽을 잇는 국제 역으로 경성역을 기획했다.

중앙홀은 좌우대칭의 구조와 돔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등 18세기 건축양식이 잘 묻어난다.

위층에 있는 ‘서울역 그릴’은 당시 지식인들의 사교의 장이었다.

역사 내에 있던 매표소와 이발소.

역사의 정거장 ‘서울역’으로 개명

당시 내부 모습을 설명하자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둥근 돔과 이를 받치고 있는 석재 기둥이 특징인 중앙홀, 조선인이 주로 이용한 3등석 대합실, 일본인을 위한 1·2등석 대합실, 여성 승객을 위한 부인 대합실, 귀빈과 수행원을 위한 귀빈실 및 귀빈 예빈실, 대한민국 최초의 양식당이자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사교 중심지던 서울역 그릴 등이 있었습니다. 경부선·경의선·호남선·전라선·장항선 등 대한민국을 오가는 노선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었기에 식당과 이발소 같은 다양한 점포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지나간 자리이니만큼 기억나는 일도 많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에서 해방되던 날에는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내 앞을 가득 메우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또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에게 살충제 DDT를 뿌리는 일도 있었고, 1947년 경성역에서 서울역으로 개명되는 기쁨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폭격을 맞아 부서지고 훼손된 일은 한국은행과 또 하나의 비슷한 점이기도 하네요.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의 인구 증가와 함께 교통 문제 해결책으로 1972년에 준공했으나,
현재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통해 보행자를 위한 길로 재단장하고 있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66317

경제개발과 함께 많은 사람이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역은 명절마다 귀성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38568

시간이 담긴 ‘문화역서울 284’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과 산업 근대화로 서울로 모여드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당시 지은 ‘서울역 고가 도로’는 나를 감싸고 만리재에서 퇴계로로 뻗어나가는 모양새였고,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한 이들은 나와 서울역 고가도로를 처음 마주하고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내 앞은 집회의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80년 5월 15일, 10만여 명 이상의 대학생과 시민이 내 앞에 모여 군사 정부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다 해산한 일은 ‘서울역 회군’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100여 년이 채 안 된 시간 속에 내가 역사의 흐름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과 바람이 강인하고 빠르게 뻗어나가는 철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어려울 땐 하나 되어 고통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바로 내가 만나온 여러분이고,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입니다.

비록 늘어나는 여객으로 인해 신(新)서울역사에 철도 수송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지만, 덕분에 제 일대기가 담긴
‘ 문화역서울 284’로 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함께하고, 슬픔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역사(驛舍)로서의 삶도 의미가 있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의 추억이 머무는 장소로 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근대화의 역사(歷史)가 달려와 쉬는 곳, 앞으로의 역사가 될 문화와 예술이 일어나는 곳,
문화역서울 284로 떠나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글 김승희 자료 제공 국가기록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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