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문

서울사랑

서울사랑

검색 검색 모바일 메뉴



1963년 2월 1일 실내 경기장으로 개관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제 1회 동남아여자 농구대회가 열린 장충체육관

기획 · 아름다운 시절 ③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 경기장
위풍당당, 장충체육관
2016.04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서울의 오래된 건축물과 장소를 소개합니다.
서울 시민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대화해보세요.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 경기장

안녕하십니까? 장충체육관입니다. 첫 회에는 내 나이 두 배에 가까운 단성사 형님이 나와 소개를 했다 들었는데, 지난번에는 무려 종로의 터줏대감 피맛골 영감님이 등장하셨다면서요?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한참 어리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의 대소사를 지켜본 산증인으로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1955년 6월, 나는 농구장을 주목적으로 한 육군체육관으로 개관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붕이 없어 여름이면 코트 플로어가 햇빛에 달구어져 매우 뜨거웠습니다. 경기를 하던 사람들은 작전 타임마다 농구화 바닥을 찬물에 적신 뒤 신고 뛰곤 했죠. 1959년, 서울시가 운영을 맡으며 몇 년간 민머리로 살아온 나를 대대적으로 변신시켰습니다. 건축가 김정수, 최종완 등은 당시 한국 건축 기술 여건상 실현하기 어려웠던 지름 80m 철골 트러스돔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내 머리에도 지붕이 얹혔습니다. 더불어 나는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 경기장이라는 수식을 얻었지요.

1965년 3월 6일 김기수 선수는 동양 미들급 챔피언 권투 경기에서 일본 선수 후지야마를 상대로 4회 KO 승을 거두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 번호 CET0052850


스포츠의 성지

사실 나는 농구장으로 태어나 농구의 메카로 여겨졌지만,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만능 경기장이었습니다. 농구를 비롯해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 탁구, 체조, 씨름, 배구 등 국내외 유명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던 한국 실내 스포츠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1966년에는 대한민국 프로 복서로는 처음으로 복싱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김기수란 친구의 우승을 함께했는데, 그는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라는 상대 선수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박치기왕’ 김일이 미국의 마크 루니를 이겨 세계레슬링연맹(WWA)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 했고요. 김일은 당시 전 국민의 영웅이었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그랬죠. 그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내 어깨가 더 으쓱해지곤 했는데, 그가 박치기로 거구의 외국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걸 보노라면 짜릿함이 배가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함성과 열기는 내 지붕을 다시 날려버릴 것처럼 치솟기도 했는데, 아무튼 내가 본 경기 중 가장 열렬했다고 생각합니다.

1975년 3월 27일 현역 시절 라이벌로 유명했던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의 프로 레슬링 경기.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 번호 CET0054671


역사를 담다

동년배 친구들은 나를 역사의 증인이라 말합니다.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 내가 있었으니까요. 나는 1972년과 1978년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진 현장입니다. 이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유신헌법상으로 치러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단체에 대통령 선출권이 부여되었습니다. 19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이 보장되는 지금과는 다르죠. 아무튼 정부는 선거를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속한 이들을 소집했고, 소집 장소가 바로 장충체육관, 나였던 것이죠. 이렇게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역사의 중앙에 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향한 많은 이의 노력도 볼 수 있었고요.

1972년 12월 23일에 행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선거의 모습.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 번호 CET0027051


새로운 삶, 장충의 부활

1980년과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굵직한 이벤트가 나와 함께했지만, 내가 어릴 때 느낀 특별함은 점차 희미해져갔습니다.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문화·예술 공간을 책임질 후배들이 늘어나면서 내 정체성도 정말 모호해지더군요. 88 서울 올림픽과 명절에 벌어진 씨름 대회를 제외하고는 1년에 체육 경기가 있는 날은 손꼽을 정도였고, 점포 정리 상품을 처분하기 위한 곳으로 쓰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자 사람들은 노후된 나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세우려 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죠.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친구들 덕분인지 나는 서울의 역사로 잔류할 수 있었고, 2012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환골탈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1월 17일, 나는 마침내 젊은 친구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폼 나게 다시 우뚝 섰습니다. 스포츠 경기는 물론이고, 각종 공연과 국제회의를 열기에도 안성맞춤인 서울의 新명물로 거듭났지요.

1987년 4월 22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응원 경연 대회. 장충체육관에서는 유도와 태권도 경기가 열렸다.
출처 연합뉴스

(사진 위, 아래)장충체육관 재개관을 기념하고자 개최한 시민 사진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
새롭게 태어난 장충체육관의 미래지향적인 외부 모습과 다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내부 시설물을 엿볼 수 있다.
금상을 수상한 박경식의 ‘장충동에 내려앉은 UFO’(위 사진)와 은상을 수상한 강태수의 ‘새롭게 태어난 장충체육관’(아래 사진).





글 김승희 자료 제공 국가기록원, 연합뉴스, 장충체육관 홍보팀

  • 0 조회수 1305